
이주비 대출 규제로 중견건설사의 위기감이 최근 커지고 있다. 중견사 수주에서 비중이 높은 소규모 정비사업장도 예외 없이 이주비 대출에 제한이 걸리면서다. 추가 이주비 조달 능력이 소형 정비사업 수주를 결정할 핵심 변수로 떠오르면서 자금 역량이 풍부한 대형건설사가 소규모 정비사업장까지 싹쓸이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30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올 들어 대형사(시공능력 1~10위)를 제외하고 전국에서 소규모 정비사업을 따낸 중견건설사 상위 10곳의 수주액은 약 2조3600억원으로 집계된다. 가로주택정비사업이나 모아타운 등 소규모 정비사업장은 주로 서울에 집중돼 사업성이 비교적 양호하고, 행정절차도 간단해 올해 들어 중견사의 수주 경쟁이 치열해지던 상황이었다.
동부건설의 경우 올해 3월 서울 중랑구 망우동 509-1을 시작으로 이후 2건의 모아타운과 가로주택정비사업 1건 등 총 5700억원 수준의 수주고를 기록했다. 코오롱글로벌도 1호 모아타운인 강북구 번동에 사업장을 비롯해 올해 소규모 정비사업장에서만 약 3600억원의 수주액을 달성했다.
그러나 지난 6·27 대책으로 소규모 정비사업장의 수주 판도 역시 크게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 정비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규제 이전에는 조합이 금융기관을 통해 주택담보대출비율(LTV) 50%까지 기본 이주비 대출이 가능했지만, 규제 이후 최대 6억원의 대출만 가능해져 예기치 않게 시공사의 추가 이주비 부담이 상당히 커졌기 때문이다.
특히 모아타운이나 가로주택 등의 소규모 정비사업이 서울과 수도권에 집중된 점 역시 중견 건설사의 자금 부담을 심화시키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올해 5월 기준 관내에서 진행 중인 가로주택정비사업장은 총 209곳에 달한다. 이 중 사업시행계획인가를 받은 사업장만 34곳이다.
A 중견건설사 관계자는 “이주비 대출 한도인 6억원은 서울 다수 사업장에서는 조합원 임시 거처를 위한 자금으로는 부족한 경우가 대다수”라며 “결국 도정법에 따라 소규모 사업도 시공사가 보증을 통해 거의 6%대 수준의 대출 금리로 추가 이주비를 조달해 줄 수밖에 없는 상황까지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향후 중견건설사들이 소규모 정비사업에 대한 신규 수주를 꺼리면서 소규모 정비사업 수주마저 대형사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중견사들의 금융 리스크가 확대되고 있는 상황에서 추가 자금 부담이 사실상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에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아파트 브랜드를 보유한 상장 건설사 34곳의 평균 부채비율은 지난해 말 203%로 집계됐다. 이는 2023년 137% 대비 큰 폭으로 상승한 수치다. 올해 1분기 기준 500대 기업 내 상장 건설사 18곳의 평균 부채비율도 262%를 넘겼다. 태영건설(769.38%)과 금호건설(645%)을 비롯해 코오롱글로벌(417.72%), HL디앤아이(277.98%), 계룡건설산업(226.56%), 동부건설(226.55%), KCC건설(216.10%), 한신공영(206.23%) 등이 200% 이상의 부채비율을 기록하는 등 중견사 상당수가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다.
B 중견건설사 관계자는 “4000가구 사업장만 되어도 요즘엔 약 2000~3000억원은 시공사가 신용보강을 통해 이주비를 마련해야 하는데 중견업체들은 조달 금리도 대형사에 비해 상당히 높다”며 “수주를 3~4건만 해도 이자만 수백억원을 추가로 각오해야 하는 판국에 굳이 무리해서 수주를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양지영 신한투자증권 자산관리컨설팅부 수석은 “추가 이주비가 결국에는 시공사 몫이 되면서 중견사 같은 경우 소규모 수주전에서도 더욱 불리해진 상황이다. 건설사별 양극화가 더 벌어질 수밖에 없다”며 “시공사의 현금 조달 능력에 따라 일부 시공사, 지역별로는 서울 상급지에만 수주가 집중되는 양상이 뚜렷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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