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나는 나를 고용할 수 밖에 없었다"

  • 이범식 '가치와 같이' 대표

이범식 가치와 같이 대표 사진가치와 같이
이범식 '가치와 같이' 대표 [사진=가치와 같이]
나는 고압 전기감전 사고로 양팔과 오른쪽 다리를 잃은 중증장애인이다. 22세에 장애를 입은 뒤 가장 간절했던 바람은 사회로 복귀해 일하며 살아가는 삶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양팔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내 이력서는 수십 번 되돌아왔고, 받아주는 직장은 단 한 곳도 없었다.
 
결국 스스로를 고용하기로 결심했다. 1995년 사업을 시작했지만 결코 쉽지 않았다. 고통과 좌절의 연속이었고 IMF로 두 번이나 실패를 맛봤지만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끊임없는 자기계발과 공부 끝에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26년 만에 '가치와 같이'라는 중증장애인 1인 기업을 세웠다. '가치와 같이'는 기업과 공공기관, 학교 등을 대상으로 동기부여와 리더십, 인성 교육 등을 주제로 경험과 역량을 사회에 환원하고 있다.
 
자립을 위해 자영업을 선택했지만, 넘을 수 없는 벽은 곳곳에 있었다. 양팔이 없는 장애인은 신체를 돌보는 게 쉽지 않기 때문에 일상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선 반드시 보조인의 도움이 필요하다. 정부가 운영하는 '근로지원인 제도'는 오직 타인에게 고용된 중증장애인 근로자만이 대상이다. 나처럼 스스로 일자리를 만든 중증장애인 1인 자영업자는 대상이 될 수 없다.
 
'장애인기업활동촉진법'에는 중증장애인 기업인을 위한 ‘업무지원인 제도’가 있지만 예산은 한 푼도 배정되지 않았다. 현재까지도 시범사업 단계에 머물러 있으며, 선정된 일부 사람만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그조차도 지원을 받으려면 필요한 이유를 조목조목 입증해야 하는 치열한 경쟁구도 속에 있다. 이는 명백한 제도적 차별이다. 자영업도 고용의 한 형태라고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직업 욕구가 있다. 장애 정도가 직업욕구를 제한하지는 않는다. 
 
중증장애인이 스스로 삶을 개척하며 일하는 모습은 국가가 가장 장려해야 할 자립 모델이다. 그러나 지금 제도는 ‘누군가에게 고용된 사람’만 근로자로 인정한다. 대다수의 1인 중증장애인 기업가들이 사각지대를 마주하고 있다. 제도적 지원을 바랄 때마다 보이지 않는 존재, '투명인간'으로 취급 받고 있다. 
 
정부와 사회에 세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법제화된 '업무지원인 제도'를 시범이 아닌 상시제도로 전환해야 한다. 둘째, 1인 중증장애인 기업가도 고용정책의 수혜자로 포함돼야 한다. 셋째, 장애인 미고용 사업장에서 부과되는 고용부담금으로 조성된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기금'이 자영업 중증장애인에게도 실질적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야 한다.
 
중증장애인을 위한 사회보장제도는 조선시대보다 뒤떨어졌다. 조선 4대 임금인 세종대왕은 장애인들을 무조건 돕기보다는 공직에 임명하거나 ‘제도적 직업인’으로 수용했다. 반면 오늘날 자립을 위해 자영업을 선택한 중증장애인들은 제도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 
 
장애인도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일하고, 그 일을 통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진정한 통합은 말이 아니라 제도와 지원이 모두에게 적용됐을 때 시작된다. 사회의 당당한 주체로서 1인 중증장애인 기업가를 인정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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