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 칼럼] 중국을 기회로만 본 한국 기업들의 패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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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철 글로벌비지니스연구센터 원장
입력 2024-09-26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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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철 글로벌비지니스연구센터 원장
[김상철 글로벌비지니스연구센터 원장]
 

1992년 수교 이후 30여 년 동안 한국과 중국 양국 간의 경제적 대차대조표를 작성해 보면 어떻게 될까? 큰 틀에서 보면 서로에게 이익이 되었던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중국은 한국 기업이나 한국인과의 교류 확대를 통해 중국이 세계 경제의 중심으로 부상할 수 있는 잠재력을 키웠다. 한국은 중국이라는 큰 시장을 확보함으로써 자칫 후퇴할 수도 있는 한국 경제의 성장 동력을 지속해서 끌어 올려왔다. 문제는 지난 30여 년이 아닌 앞으로 닥칠 30여 년이다. 얼마 전부터 양국 이익의 균형점이 서서히 기울기 시작했다. 한국이 아닌 중국 쪽이라는 점에서 심각한 딜레마가 되고 있다. 이에 대한 시각도 분분하다. 이제 중국을 포기해야 한다는 측과 그래도 중국 시장을 포기할 수도 없다는 측의 공방이 매우 팽팽하다.
 
중국의 전략은 선명하다. 일부 수정이 되고 있기는 하지만 근본적인 방향은 크게 변화가 없다. 크게 보면 두 가지 전략이다. 하나는 뚜렷한 우월적 선도자가 없는 부분에 대한 집중적 투자와 지원을 통해 빠른 기간 내에 선두로 부상하는 것이다. 태양광·고속철·전기차·원전·로봇·AI 등이 과녁이다. 다른 하나는 한국 기업의 아성을 뛰어넘어야만 중국 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는 숨겨진 야심이다. 조선·가전·승용차·LCD(LED)·스마트폰·화장품 등에 이르기까지 셀 수 없을 정도다. 이러한 전략은 유효했고 실제로 절반 이상의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한국 기업은 중국 시장에서의 일시적인 승승장구에 만취하여 이를 외면했다. 설사 알았다고 하더라도 별 뾰족한 수가 있었겠는가.
 
시간이 갈수록 중국 내에서 한국의 위상이 빠르게 위축되고 있다. 기업은 빠져나가고 한국인 수가 줄어들면서 한국과 연관된 상권이 된서리를 맞은 지가 꽤 되었다. 한국에서 중국을 보는 시각보다 중국 현지에 남아 있는 한국 기업의 목소리는 더 애절하다. 중국에 팔 물건이 없다는 것을 현실적으로 토로한다. 반도체를 빼고는 중국보다 낫다고 할 수 있는 한국 상품이 없다. 10%를 제외한 90%에서 중국에 밀리고 있다고 고백하고 있다. 중국도 알고 세계도 알고 있는 사실을 한국만 애써 모르는 척했다. 아니면 알고 있으면서도 마땅한 대응책이 없어 쉬쉬하고 물밑에 숨겨두고 있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그러나 언제까지 이를 방치할 수 없는 일이다 보니 버스 지나간 한참 후 뒤늦게 호들갑을 떠는 꼴이다.
 
중국에 대한 그릇된 정보와 설익은 판단으로 현상을 왜곡하려는 자칭 중국 전문가 집단이 아직도 설친다. 그들은 끊임없이 중국과 할 일이 여전히 많고 더 섞여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내뱉는다. 실제로 이에 현혹되어 중국에 미련을 못 버리고 가능성이 작음에도 불구하고 무리수를 두는 기업이나 개인이 눈에 많이 띈다. 마침내 이에 대한 반작용이 서서히 수면 위로 올라온다. 중국을 잘 안다는 사람이 가장 위험하다는 지적이 마침내 나온다. 과거에만 집착하다 보니 현재와 미래에 대한 뚜렷한 정확한 진단과 솔루션을 내지 못하고 있음이 원인이다. 상황 변화를 인식하면서 중국 시장 진출과 관련한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내놓는 아이디어를 보면 고작 재탕 혹은 삼탕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수준이다.


중국을 보는 외눈박이 시각
 
중국의 부상이 위협이라는 인식은 소수에 불과하고 기회라는 인식이 다수였다. 대부분이 단기적인 달콤함에 빠져 매몰되어 장래에 닥칠 큰 위기에 대해 간과하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우려가 현실화하였다. 하지만 중국은 멀리 도망가고 있고, 중국의 두 번째 전략이 수정되고 있다. 한국의 벽은 이미 넘었다고 판단하고 이제 미국을 정조준한다. 미국도 중국을 상대하는 것이 버겁고 힘겨워하는 모습이다. 큰 내수 시장을 배경으로 규모의 경제를 무기로 단숨에 강자로 등장하는 중국 기업의 공세에 당황하고 있다. 속도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만만디((慢慢地·천천히)’는 사라지고 ‘콰이((快快·빨리빨리)’로 한국을 따라잡은 지 오래되었다. 우리가 낫다고 중국에 내세울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이미 진행 중인 미국 대선(大選)에서도 중국 견제는 최대 이슈다. 해리스나 트럼프 둘 다 중국에 대한 압박을 강화해야 한다지만 한풀 벗겨보면 상당히 다르다. 해리스는 바이든 현 정부 노선을 고수, 미국 홀로 중국을 상대하기 어려우므로 동맹과의 협력을 통해 공동 대응해 나가야 함을 주장한다. 반면 트럼프 진영은 미국 독자적으로도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오히려 동맹의 이익까지 빼앗아 미국의 이익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열변한다. 심지어 한국의 생산 시설과 일자리를 미국으로 가져오겠다고 공언할 정도다. 돌이켜 보면 트럼프 집권 시 중국의 승승장구가 계속됐지만 바이든 정부 들어선 미국과 동맹의 협공으로 중국을 적잖게 당황케 하고 있다. 중국이 내심 트럼프 당선을 기대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발등에 떨어진 불은 세계 시장 어디에서나 부딪혀야 할 중국산과 결코 피할 수 없는 경쟁이다. 한국 시장에서도 중국산의 상륙은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대책을 세우지 않고 무방비로 일관하다가는 소와 외양간을 다 놓치는 날이 의외로 빨리 올 수도 있다. 다행스럽게도 지구촌 곳곳에서 중국산의 무차별 진격에 대해 거부감이 강해지고 있는 분위기다. 시장이 초토화할 수 있다는 경계감이 확산한다. 이는 역으로 한국산에 새로운 기회가 되고 있음이 선명하다. 모처럼 생겨난 기회를 최대로 활용할 수 있는 전략과 전술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단편적인 중국 지식보다 글로벌 경제 전체를 종합적으로 조망하고 한국 경제의 살길을 찾아내는 절제적이면서 균형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중국과는 무분별한 정면 승부보다 중국 기업과 더 섞이면서 글로벌 공급망 내에서의 상호 협력 공간을 넓혀 나가야 한다.
 



김상철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경제대학원 국제경제학 석사 △Business School Netherlands 경영학 박사 △KOTRA(1983~2014년) 베이징·도쿄·LA 무역관장 △동서울대 중국비즈니스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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