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철스님의 가로세로] 땅에 묻은 삶은 계란에서 닭이 태어났다는 곳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원철 스님
입력 2024-03-26 07:00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원철 스님
[원철 스님]



이른 아침 소양강댐 주변은 물안개로 가득하다. 해가 뜨면서 차츰차츰 주변이 제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길가의 가파른 시멘트 벽 위에 길다랗게 세로로 덧댄 낡은 마루바닥재로 마감을 한 70년대 스타일의 간판이 보인다. 오래 전부터 지역사회에 전해오는 스토리텔링 3개가 꼰대세대도 읽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주먹만한 글씨로 촘촘히 박혀 있다. 만든지도 꽤 오래 되었고 바탕색마저 다소 바래긴 했지만 독해에 별다른 어려움이 없다. 왼쪽에는 짧은 이야기 두 편이 아래 위로 나란히 적혀있고, 오른 쪽은 긴 이야기 한 편을 써놓았다. 비교적 구성이 탄탄한 한천자(漢天子) 전설에 눈길이 오래 머물렀다.
 
마을 입구를 알리는 표지판
마을 입구를 알리는 표지판

한(漢)씨 성을 가진 총각이 부친과 함께 머슴살이를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가난한 살림으로 인하여 묘자리를 구할 수가 없어 남새밭에 가매장을 했다. 어느 날 스님들이 나타나서 하룻 밤 묵어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부탁한다. 총각은 자기 방에서 함께 머물게 했다. 부탁한 계란은 끓는 여물 솥에서 삶은 뒤 드시라고 갖다 주었다. 한 밤중이 되어 스님들이 길을 나서자 총각은 이상한 생각이 들어 몰래 따라갔다. 가리산 중턱에 이르자 그 계란을 땅에 묻고서 밤새 기다리는게 아닌가. 여명이 밝아 올 무렵 땅 속에서 수탉이 나오더니 홰를 치며 크게 울었다. “진짜 명당이로다.” 그 후 총각은 아버지 시신을 그 자리에 묻었다. 발복(發福)하여 천자(天子 임금)가 되었다.
 
구전(口傳)이라고 하는 것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전달하는 사람이 자기생각을 다시 보태고 윤색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 전설도 마찬가지다. 스님이 계란을 달라고 하니 당연히 먹는 줄 알고 삶아서 드렸다. 머슴총각의 사려깊은 배려심이 돋보인다. 그리고 스님은 날계란도 아닌 익힌 계란으로 병아리도 아닌 수탉을 만들어 내니 도력이 매우 높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그 땅은 알을 품고서 금방 닭으로 키울 정도로 생기와 생명력을 갖춘 명당이라는 사실도 넌지시 암시해준다.

명당이 되려면 터도 중요하지만 그 터를 사용하는 주인이 그만한 복을 지어야 한다. 이를 강조하기 위하여 스님의 3가지 처방과 함께 머슴총각의 드라마틱한 상상력과 행동이 더해지는 구조로 진화한다. 즉 첫째 금으로 된 관을 사용해야 하며 둘째 황소 백 마리를 재물로 바쳐야 하며 셋째 관을 땅 속에 묻을 때 철갑과 투구를 쓴 사람이 곡(哭)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듣고 머슴총각은 노란 귀리 짚으로 만든 두루말이 멍석으로 금으로 만든 관을 대신하여 아버지의 시신을 쌌으며, 솥뚜껑을 투구처럼 쓰고 하관(下棺)하면서 크게 울었고, 몸에서 피를 빨아먹고 황소만큼 자란 이(蝑) 백 마리를 잡아서 재물로 바쳤다는 내용이 추가 되었다.
 
한(漢)씨라는 성은 한(漢)나라를 연상케 한다. 그리하여 한씨 총각의 활동무대는 중국으로 바뀌었다. 짚으로 만든 북을 쳐서 소리나는 사람이 천자가 된다는 공고문이 나붙었다. 신라의 이사금은 떡을 물고서 남보다 많은 치아자국으로 인하여 왕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생각나게 한다. 거기에 모인 사람들이 차례대로 북을 쳤지만 누구도 소리를 내지 못했다. 한씨가 북을 치자 온 장안에 북소리가 울려 퍼졌고 총각은 천자(天子)로 추대되었다. 뒷날 천자 부친의 무덤이 너무 초라한 것 아니냐는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에게 강원도 가리산 지형이 너무 험하여 중국 황실에서 올 수가 없어 치산(治山 산소를 매만지고 다듬는 일)하지 못한 까닭이라는 설명이 보태지면서 현재와 같은 탄탄한 구조를 가진 이야기로 완성되었다.
 
가리산과 한천자의 묘를 알리는 공공안내판
가리산과 한천자의 묘를 알리는 공공안내판

구전의 배경인 ‘한천자 묘’는 이미 인터넷 검색을 해 두었다. 위치는 춘천시 북산면 물로리 58-1번지다. 인근에 은주사(銀住寺)라는 절이 있다. 소양강댐 나루터에서 배를 타고 물로리로 가는 방법도 있다고 한다. 육로를 이용하는 것이 더 쉬운지라 주소를 따라갔다. 홍천을 경유하여 다시 춘천으로 들어가는 경로다. 포장된 도로에 봄날임에도 불구하고 ‘월동장비 미착용시 진입금지’라는 안내문이 군데군데 있을만큼 가파르고 험했다. 지난 겨울 머물던 곳에서 밤새 내린 눈 때문에 길이 막혀 차를 움직일 수가 없었다. 오전내내 갇혔던 까닭에 그 날 일정 두 건을 펑크냈던 기억까지 되살아 날 정도였다.
 
마지막 표지판
마지막 표지판
 
가도 가도 목적지를 가르키는 표지판은 1도 보이지 않는다. 제대로 가고 있는가 하는 의구심이 계속 들만큼 굽이굽이 에스(S)자를 거듭거듭 그리면서 골짜기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얼마를 달렸을까. 고속도로 휴게소 알림판 크기의 ‘어서 오십시오. 물로리 한천마을’이라는 다소 생뚱맞은 모양의 입간판을 만났다. 생경함과 반가움이 교차하면서도 ‘제대로 가고 있구나’하는 안도감을 준다. 얼마나 달렸을까. 드디어 관공서 표준형 안내판 ‘가리산 방향’과 ‘한천자 묘’가 나타난다. 이내 비포장길이 시작되었고 ‘절골로’라는 도로명 답게 드문드믄 사찰들이 자리잡고 있다. 별장같은 민가들도 사이사이 보인다. 드디어 마지막 절인 은주사가 나타났다. 산신각을 참배하면서 오늘 일정을 무사히 마치게 해달라고 기원했다. 이제부터 묘까지는 본격적인 가리산(加里山) 등산길이다.
 
한천자 묘
한천자 묘
 
이 묘자리는 풍수연구가 사이에서 반드시 둘러봐야 하는 명당터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산삼을 캐는 심마니들도 방문인사를 빠뜨리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꿈을 이루기 위하여 많은 이들이 땀 흘리며 찾아오기를 마다하지 않는 곳으로 입소문난 곳이다. ‘기적의 천자길’ 따라 세워진 안내판 1.꿈-2.신념-3.기적(하늘이 돕다)-4.기적(기적은 계속된다)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를 따라가다가 숨을 몰아 쉴 무렵 마침내 목적지가 눈 안으로 들어왔다. 작은 계곡을 조심조심 건넜다. 곁에 ‘한천자 묘’라는 설명문과 안내판이 없었다면 그냥 지나칠 만큼 평범하고 소박한 한 무덤이다. 하지만 보통사람의 눈에도 그 터 만큼은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하긴 비범한 터에는 그 자리에 어울리는 전설이 따라오기 마련이다.



원철 필자 주요 이력

▷조계종 불학연구소 소장 ▷조계종 포교연구실 실장 ▷해인사 승가대학 학장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