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탈출하는 간호사들 上] "한국 간호사는 희망이 없어요"…신입도 '취업 이민' 떠난다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나선혜 수습기자
입력 2024-01-08 18:08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 취업 이민 준비하는 간호사 만나보니...국내 간호 현실은 '절망'뿐

  • 갑질·노동환경 등 신입 간호사도 못 버텨…해외 취업 준비

  • 미국行 준비하는 간호사 10년 전 比 5.6배↑…한국, 선진국 중 '유일'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해외 취업을 준비하는 간호사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회에서 보면 의사는 엄청난 필수인력이지만 간호사는 그렇지 않아요. 간호사가 의사에게 의료진으로서 처방에 관해 이야기하면 돌아오는 건 폭언과 불쾌감뿐이죠. 한국에서 더 이상 간호사로서 존중받을 수 없다고 생각해 호주로 떠나려 합니다.”-수술실 간호사 1년 차 오진수씨(가명·26세)
 
1960년대 말 파독 간호사의 모습이 60년이 지난 현재 다시 재현되고 있다. 과거엔 실업문제 해소와 외화 획득이라는 명분이었지만, 지금은 그때와 결이 확연히 다르다. 간호사로서 받아야 할 가치인 ‘존중’과 ‘더 나은 삶’을 위해 가족 품을 떠나 과감히 해외 이주를 택하고 있다. 심지어 최근 간호사들의 해외 취업 러시는 이제 갓 의료인으로서 첫발을 내디딘 신입 간호사들에게도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고 있다.

해외 취업을 준비하는 간호사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그들은 “한국 간호 현실엔 희망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전문성을 쌓을 수 없는 노동환경, 존중받지 못하는 병원 조직문화까지. “한국에서 더 이상 간호사로 살 수 없다”는 하소연이다.

신입 간호사로 일하며 고충을 토로한 오씨는 “현장에서 간호사는 의사의 시다바리(조수·したばり)로 불린다”며 “간호사도 의사와 마찬가지로 엄연히 전문 의료지식이 필요한 일이지만 현장에서는 의사와 환자 모두에게 평가절하당하는 일이 태반”이라고 씁쓸해했다.

9일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이 전국 4만8321명의 간호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2023년 보건의료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간호사 10명 중 4명이 의사로부터 갑질을 당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는 의사 업무를 간호사가 대신하기도 했는데, 절반 가까이 되는 48.1%가 해당된다. 
 
‘간호사’로서 존중 원해...해외 취업 10년 전보다 5배↑
실제 오씨와 같은 결정을 하는 사람들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미국간호사국가시험원(NCSBN)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1~9월)까지 미국 간호사 자격시험인 엔클렉스(NCLEX)에 응시한 한국인 수는 2712명이다. 이는 10년 전인 2013년(482명)과 비교했을 때 무려 5.6배 높아진 수치다.
 
미국간호사국가시험원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까지 미국 간호사 자격 시험인 엔클렉스를 응시한 한국인 수는 2712명이다 사진2023 NCLEX Fact Sheet 캡처
미국간호사국가시험원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까지 미국 간호사 자격 시험인 엔클렉스를 응시한 한국인 수는 2712명이다. [사진=2023 엔클렉스 통계 현황]

특히 한국은 비영어권 나라 중 엔클렉스에 응시하는 간호사 비중이 최상위권에 속한다. 지난 2013년 엔클렉스를 치른 상위 5개 국가는 △필리핀 △인도 △캐나다 △푸에르토리코 △한국 순이었다. 지난해 3분기까지 누적 응시 국가 규모를 보면 △필리핀 △인도 △한국 △케냐 △나이지리아 순으로 한국 비중이 더 늘었다. 10년 전과 비교했을 때 한국 순위는 2계단 올랐으며 선진국 중 유일하다. 

오씨 역시 현재 호주 간호사 면허를 취득한 상태다. 오씨는 “고개를 조금만 돌리면 해외에도 간호사가 필요하다는 것을 쉽게 알게 된다”며 “해외의 경우 우리나라에 비해 처우가 훨씬 좋다는 것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오씨가 호주행을 택한 이유는 간단명료했다. 간호사로서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서다.

만으로 6년 차, 일반 직장에서는 대리급으로 불리는 숙련 간호사 김수진씨(가명·28세)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최근 미국 엔클렉스를 통과하고 미국 병원과 근로 계약을 마쳤다. 남은 건 미국 영주권 심사. 그녀는 이 심사가 끝나는 2월쯤 한국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미국 간호사로서 삶을 택한 건 단순해요. 한국에서 일할 때마다 간호사라는 직업의 미래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선배 간호사들을 보면서 나도 오래, 열심히 일해야지 이런 생각을 하는데, 한국에는 이런 본보기가 되는 간호사가 거의 없어요." 
 
노동환경도 원인...간호사, ‘5일 중 4일’ 끼니도 제대로 못 챙겨
사진간호하는채널Joy 캡처
해외 간호사를 소개하는 유튜버 조이(JOY·예명)가 “한국 간호사는 간호 업무 외에 많은 일을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사진=간호하는채널Joy 캡처]

이들이 한국에서 탈출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다. 오랫동안 지적돼 온 간호사들의 ‘노동환경’이라는 만성적 문제 때문이다.

실제 간호사들은 밥 먹을 시간도 없이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의료노조가 국내 간호 현장을 조사한 결과, 현장에 있는 간호사들은 일주일에 평균 4회 정도로 식사를 챙겨 먹지 못했다. 

연장근로도 만연했다. 간호사 42.5%가 52시간 이상 근무하고 있었는데, 3교대 간호사의 경우 91.8%가 '자고 일어나도 기진맥진하거나 극도의 피곤함을 느끼며 깨어난다'고 답했다. 

병상 수는 많지만 일을 할 수 있는 간호사 수도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OECD 보건 통계 2023’에 따르면 우리나라 병상 수는 인구 1000명당 12.8개로 OECD 국가 중 가장 많다. 이에 반해 간호사 수는 인구 1000명당 4.6명으로 OECD 평균(8.4명)의 절반 수준이다. 
 
“숙련 간호사가 없다”=“일하는 간호사가 없다”
오래 일할 수 없는 열악한 상황, 결국 그들은 간호사로 '살기' 위해 해외 취업을 택했다. 

미국 영주권 심사만 남겨둔 6년 차 병동 간호사 이서진씨(가명·29세)는 "통상 수간호사 정도의 고연차 숙련 간호사가 적고, 신입 간호사가 가장 많다”며 “실제 가장 많은 인원이 필요한 중간 연차는 싹이 마를 정도”라고 했다.

이는 간호사 한 명당 최소 환자 12명을 보는 국내 여건상 중간 연차의 숙련 간호사가 얼마나 적은지를 보여주는 증언이기도 하다.  

그는 "숙련 간호사가 없는 건, 일하는 간호사가 없다는 말과 똑같다"고 말했다. 이어 "간호업계에는 만연하게 '간호사는 오래 할 일이 못 된다'는 말이 퍼져 있다"며 "주변에만 봐도 몇 년을 버티기는커녕 신규 간호사가 들어가는 족족 그만둔다"고 토로했다.

보건의료노조 관계자는 "급여를 포함한 한국 간호사의 근무 환경이 매우 열악해 간호사들이 해외든 어디든 현장을 많이 떠난다"고 설명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