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성어로 세상 읽기] (6) 이익 앞에서 의로움을 잊다 - 견리망의(見利忘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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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혁 에세이스트
입력 2024-01-02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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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혁 에세이스트
[유재혁 에세이스트]



전국의 대학교수들이 선정한 올해의 사자성어로 '견리망의', '적반하장', 그리고 '남우충수'가 각각 1,2,3위를 차지했다. 본고 이번 회차와 다음 회차에서는 1위로 뽑힌 견리망의와 우리에게 조금 낯선 남우충수 두 성어를 통해서 세상을 읽어보고자 한다.

친구의 주민등록증을 도용하여 휴대폰을 개통하고 억대의 전세대출을 받은 20대들이 구랍 26일 실형을 선고받았다. 돈 때문에 친구를 속이고 우정을 저버리는 세태를 보는 심정이 씁쓸하다. 이로움을 보자 의로움을 잊는다는 '견리망의(見利忘義)'는 자기 잇속을 차리려고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도리를 외면하는 행위다. 이 성어의 배경에는 피비린내 나는 고대 중국 권력투쟁의 역사가 있다.

견리망의의 출전《한서•번역등관부근주전漢書•樊酈藤灌傅靳周傳》에 이런 구절이 있다. ‘’當孝文時,天下以酈寄為賣友。夫賣友者,謂見利忘義也(효문제* 치세 때 세상은 역기(酈寄)가 친구를 팔아먹었다고 여겼다. 대저 친구를 팔아먹는다는 것은 이익을 보자 의를 잊는 것이다)."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 좀 더 알아보자.

한나라를 창업한 유방이 죽고 태자 유영이 즉위했다. 2대 황제 혜제(惠帝)다. 야심 많은 여후(呂后)가 유약한 아들 혜제를 대신하여 조정의 실권을 잡은 후 여씨 집안사람들을 왕과 제후에 봉하고 유씨 정권 찬탈을 꾀했다. 그 과정에서 허다한 공신들이 잇따라 살해되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여후가 죽자 창업공신 주발과 진평이 정권을 되찾기 위한 대책을 은밀하게 논의했다. 예나 지금이나 정변의 성패를 가르는 건 병권(兵權). 당시 병권은 여후의 조카 여록(呂祿)과 여산(呂產)의 수중에 있었다. 상장군 여록은 통일 대업에서 유방을 도와 큰 공을 세운 우승상 역상(酈商)의 아들 역기(酈寄)와 친분이 두터웠다. 이를 이용하기로 한 주발과 진평이 역상을 연금하고 여록이 병권을 내놓도록 꼬드기라고 역기에게 압박을 가했다. 

여록이 절친 역기의 회유에 넘어가 관할하던 북군의 군권을 끝내 주발에게 넘겨주었다. 북군을 손에 넣은 주발이 즉시 여산과 여록을 참수하고 여씨 일가를 도륙했다. 큰 공을 세우고 제후에 봉해진 역기는 친구를 팔아먹고 부귀영화를 누린 견리망의의 소인배로 만고에 오명을 남겼다.

의(義)는 도덕적 의리, 즉 도의(道義)다. 상인에게는 상도의가 있어야 하고 정치인에게는 정치도의가 있어야 하듯 무릇 인간이라면 지켜야 할 도의가 있다. 이로움을 보고 인간의 도의를 저버린 역기의 후예들은 세상 어디에나 늘 있다. 그럼에도 대학교수들이 새삼 견리망의를 2023년을 대표하는 사자성어로 선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견리망의를 추천한 김병기 전북대 명예교수는 "지금 우리사회는 견리망의의 현상이 난무해 나라 전체가 마치 각자도생의 싸움판이 된 것 같다", “정치란 본래 국민을 ‘바르게 다스려 이끈다’는 뜻인데 우리나라의 정치인은 바르게 이끌기보다 자신이 속한 편의 이익을 더 생각하는 것 같다”고 했다. 또한 개인 생활에서도 나만 잘살면 된다는 생각이 정당화되다시피 해 씁쓸한 사기 사건도 많이 일어났다며 “분양 사기, 전세 사기, 보이스 피싱 등 사회가 마치 견리망의의 전시장이 된 것 같은 느낌”이라고 덧붙였다. 

그렇다. 나라야 어찌 되건 말건 자기 진영만 쳐다보며 당리당략을 우선하는 선거공학적 논리, 민원성•선심성 '쪽지 예산'을 챙기고 나눠먹기식의 '깜깜이 예산'을 편성하여 나랏돈을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활용하는 행위, 차기 공천을 받기 위해 공천권자의 눈치를 보며 파당적 이전투구에 앞장서는 국회의원들의 행태야말로 이 시대 견리망의의 대표적인 모습들이다. 국민을 바르게 이끌어야 할 정치가 바르지 못하면서 국민이 바르게 살기를 어찌 기대할 수 있겠는가. 부당한 이득을 얻기 위해 남을 속이는 사기 사건이나 이른바 '내 새끼 지상주의'에 매몰된 학부모들의 교권 침해가 무시로 일어나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윗물이 흐린데 아랫물이 맑을 리 없으니 말이다. 

인간은 이기적 동물이라 했던가. 눈앞의 이익에 마음이 흔들리는 건 인간의 본능이다. 본능은 대체로 이성보다 힘이 세다. 그럼에도 인간은 본능을 억눌러야 할 때가 있고 또 그렇기에 동물이 아닌 인간 대접을 받는다. 이기적 본능을 억제한 이타적 행위가 인간을 인간일 수 있게 한다. 너나 할 것 없이 견리망의를 추구하는 사회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일상화된 사회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견리망의의 반대편에 '이로움을 보면 의로움을 생각한다'는 '견리사의(見利思義)'가 있다. 각계의 전문가로 영입된 민주당 일부 초선의원들이 정쟁만 일삼는 정치현실에 환멸을 느껴 차기 총선에 출마하지 않고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겠다고 선언했다. 요즘 보기 드문 견리사의의 예라고 하겠다. 반면에 젊은 시절 한때의 민주화 운동 이력을 밑천 삼아 정치권에 들어와 30년 가까이 과분한 혜택을 누리다가 도덕적 민낯이 드러나 퇴출 위기에 몰린 '86운동권 세대'는 견리사의에서 견리망의로 퇴행한 세대로 불려도 딱히 할 말이 없지 않을까 싶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취임사에서 용기있는 헌신을 다짐하며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나라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 '운동권 특권정치 청산'을 전면에 내걸었다. 선당후사가 아닌 '선민후사(先民後私)'를 실천하겠다고도 했다. 한마디로 견리망의하지 않고 견리사의하겠다는 대국민 선언이자 약속이다. '함께 하면 길이 된다'며 가보지 않은 길을 가겠다는 그가 현란한 말솜씨에 그치지 않고 실천을 통해서 새로운 정치에 대한 국민의 갈증을 해소시켜 줄 수 있을까?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일이다.


*효문제: 전한(前漢)의 5대 황제. 문경치세를 이끌었다.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사회학과 졸업 △제일기획 근무(1985~2008) △'한국산문' 등단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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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옛날이나 지금이나 초심을 잃지않아야할것 같네요. 그렇지만 이의 유혹이 너무나 매력적이어서 자신을 이기기 어려운듯하네요. 허상에서 눈뜨기란 바른 판단 참 어려워요. 사놓으면 왠지 이득일것같아 불필요해도 사재끼는것만 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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