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세대·자연 보호 못하는 법체계 잇단 제동.."'헌법상 돌봄·배려 의무' 제시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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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소희 기자
입력 2023-11-29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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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구를 위한 법 上]

  • "온실가스 감축 목표 미비로 기본권 침해"…기후 헌법소원 4건

  • '법리적 설명' 관건…"탄소중립 위한 입법 의무 헌법서 찾아야"

사진청소년 기후행동 제공
환경 단체 ‘청소년 기후행동’이 2020년 3월 1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후변화 소송’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청소년 기후행동 소속 청소년 19명은 정부의 소극적인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내용의 헌법소원 심판청구서를 이날 헌재에 제출했다.  [사진=청소년 기후행동]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이를 법적으로 설명하자면 '돌봄·배려에 대한 헌법상 의무'라고 할 수 있다." (이재홍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기후위기를 악화시키면 미래 세대는 속수무책으로 결과를 감내해야 한다. 기후위기에 대한 결정권을 현 세대가 쥐고 있기 때문에 미래세대는 약자일 수밖에 없다. 탄소 배출량 제한 등으로 현 세대에 제동을 걸 수 있는 건 국가뿐이다. 따라서 국가는 기후위기 약자인 미래세대를 보호하기 위해 탄소중립 정책을 강화할 책임이 있다. 이를 법리적으로 설명하면 '돌봄·배려에 대한 헌법상 의무'다.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 17일 사단법인 선의 주최로 열린 '인간 너머의 지구법학'이란 국제 콘퍼런스에서 탄소중립기본법과 관련해 국내에서 진행 중인 기후 헌법소원의 전략으로 기존 법이 보호하지 못하는 존재에 대한 국가 책임을 강조하는 '돌봄·배려에 대한 헌법상 의무'라는 법리가 다뤄졌다.
 
독일 연방 헌재, 자국 정부 기후변화대응법 위헌 결정
국내외에서 진행되고 있는 기후 소송은 지구법학적 관점을 담고 있다. 생태사상가 토머스 베리가 처음 소개한 지구법학은 기존 법체계가 인간과 국가에 대한 권리와 책임만을 말하고 있어 자연, 미래 세대 등이 소외된다는 문제의식에서 시작됐다. 인간을 포함해 지구는 상호 연결된 '생태계'임을 강조하는 지구법학은 2015년 유엔 공식 문서에 처음 등장했다. 이후 전 세계 34개 이상의 국가에서 자연의 법적 권리를 인정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강금실 법무법인 원 대표변호사는 이날 콘퍼런스에서 "자연을 사물화하고 인간 이익 중심의 기술과 자본을 극대화할 수 있는 법인에 인격을 부여했다"며 "생태 파괴를 정당화하거나 방치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지적했다. 

기후 소송은 미래 세대, 자연 등을 보호하지 못하는 법체계에 제동을 걸면서 결국 자연과 인간은 연결됐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특히 2021년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의 독일 정부 기후변화대응법에 대한 일부 위헌 결정에서도 이 같은 논리를 찾을 수 있다. 독일 헌재는 2030년 이후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를 규정하지 않아 미래 세대 자유권이 침해될 수 있다고 봤다.

국내에서도 탄소중립기본법을 두고 4건의 헌법소원 재판이 진행 중이다. 2020년 청소년기후행동을 시작으로 서울 중학생 2명, 기후위기비상행동, 아기기후소송단 등은 탄소중립기본법을 두고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탄소중립기본법은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40% 감축, 2050년 탄소중립을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기후 헌법소원은 이 같은 NDC가 충분하지 않아 미래 세대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게 골자다. 2031년부터 2050년까지 구체적인 목표치가 없다는 점도 짚고 있다.

문제는 헌법소원 과정에서 어떻게 법리적으로 설명하느냐다. 이재홍 교수는 "헌재 결정은 기존 법리를 벗어날 수 없다"며 "헌법과의 접점을 찾지 못하면 헌법소원에서 승부하기 힘들다"고 진단했다. 지난해 '한·독 헌법재판관 세미나'에서 독일 재판관들도 기존 법리대로 판단한 결과임을 강조했다고 이 교수는 전했다.
 
'안정된 기후' 생활권 보장 의무, 미래 세대 확대는 '난관'
기후 헌법소원에서 가장 큰 관문은 '적법 요건'이다. "구체적인 NDC가 없어서 기본권 침해"라는 주장은 입법자가 입법 의무가 있음에도 그 의무를 이행하지 않거나(진정입법부작위) 불완전하게 이행하는 것(부진정입법부작위)을 다투는 '입법부작위'에 해당한다. 헌재가 진정입법부작위라고 볼 경우 '헌법상 작위 의무', 즉 탄소중립에 대해 국가가 입법해야 할 의무를 헌법에서 찾지 못하면 청구 자체가 각하된다. 기존 법리를 토대로 성인이 안정된 기후에서 생활할 권리를 보장할 국가 의무를 이끄는 건 쉽지만, 미래 세대까지 확대하는 건 난관이 예상된다.

이때 돌봄·배려에 대한 헌법상 의무를 적법 요건의 심사 척도로 내세울 수 있다. 미래 세대라는 기후위기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국가가 탄소중립에 대한 입법 의무가 있다는 주장이다. 이 교수는 헌법 전문에 명시된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란 문구와 헌법 34조 '청소년 복지향상 정책 실시 의무', 헌법 35조 '환경보전을 위해 노력할 국가와 국민의 의무'를 토대로 돌봄·배려에 대한 헌법상 의무를 도출해 낼 수 있다는 견해를 제시한다.

헌재가 부진정입법부작위 측면에서 쟁점을 다루게 되면 과소보호금지 원칙 위반 여부가 관건이다. 과소보호금지 원칙은 국가가 최소한의 보호조치를 하지 않았는지 여부를 따지기 때문에 위반을 입증해 내기 쉽지 않다. 이때 돌봄·배려에 대한 헌법상 의무를 강조할 수 있다. 

사법부는 구금처럼 전문성이 높은 분야일수록 과소보호금지 원칙을 더 엄격하게 바라본다. 소수자·약자에 대한 보호 역시 사법부의 전문 영역이기 때문에 기후위기 상황에서 약자인 아이, 태아 등 미래 세대를 보호하기 위해 사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논리다. 이 교수는 "사회 운동이 아닌 소송 국면인 이상 모든 주장이 헌법재판소 법리로 설명 가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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