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100 - 분양광고

[현장에서] 시진핑의 딜레마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이지원 기자
입력 2023-11-20 05:00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 방미 중 유화적 언사로 투자 유치 꾀해

  • 경기 악화 막고 권력 사수 위한 궁여지책

  • 경제철학 바꾸면 몰락…딜레마 속 최선책

플라잉 타이거, 아이오와주 그리고 판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15일(현지시간) 미국 기업가들과의 만찬 자리에서 한 말을 되짚어보면 미·중 우호를 상징하는 이 세 단어가 눈에 띈다. 과거 과격한 언사로 국익을 관철했던 ‘전랑(戰狼·늑대전사)’식 외교와는 거리가 멀어 보여서다. 시진핑이 미국을 향해 이처럼 유화적인 제스처를 취한 적이 있나 싶다.

플라잉타이거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중국을 돕기 위해 파견된 미군 부대이고, 아이오와는 시진핑이 지방관리였던 38년 전 처음으로 미국을 방문했을 때 인연을 맺은 곳이다. 시진핑은 연설에서 이를 언급한 것은 물론,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등 거물급 인사들과 함께 플라잉타이거 노병과 오하이오주 농부들을 만찬에 초대했다. 저녁 식사를 하면서 시진핑은 판다는 ‘우정 사절’이라며 양국 간 임대계약 종료로 중국에 돌아온 판다를 미국에 다시 보낼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도 했다. 

시진핑은 다음날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CEO 포럼에서도 “외국 기업에 더욱 따뜻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등의 달콤한 말로 미국 CEO들에게 적극적인 구애를 펼쳤다. 중국 경기가 연일 부진의 늪을 헤매고 있는 상황에서 이미지 쇄신을 통한 투자 유치가 절실했던 모습이다. 

하지만 ‘시진핑의 말’의 유효기간은 짧을 수밖에 없다. 순간의 달콤함으로 덮기엔 현재 중국의 사업 환경은 너무 쓰다. 중국 정부는 국가 안보를 이유로 지난 7월 반간첩법을 제정하는 등 중국 내 외국 기업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고 있다. 올초 미국 컨설팅회사 베인앤드컴퍼니와 기업실사업체 민츠그룹 등을 잇달아 압수수색했고, 최근에는 미국 컨설팅업체 크롤의 홍콩법인장인 마이클 찬과 일본 노무라그룹 산하 투자은행인 노무라인터내셔널의 중국투자은행 부문 회장 왕중허 등을 출국금지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중국 현지 기업가들 사이에서도 이런 불안감은 1978년 이후 처음이라는 말이 나온다고 한다. 1978년은 중국이 마오쩌둥의 철권 통치로 황폐해진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시장 개혁개방에 나섰던 해다.

결국 시진핑이 이번 방미에서 전랑 외교를 내려놨던 건 정책을 크게 손보지 않고 언사만으로 투자자들의 마음을 바꿔보겠다는 의도가 커 보인다. 그리고 이게 시진핑 입장에서는 최선의 선택이었던 셈이다. 

권력을 지키기 위해선 경제 악화를 막아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중국의 정체성과 다름 없는 경제철학을 포기해야 하는데 이 역시도 자신의 몰락으로 이어지는 딜레마에 빠졌기 때문이다.

 

이지원 기자
이지원 기자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