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여성·다국적·친환경…'싸나이' 문화 탈피중인 한화오션 조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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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김혜란 기자
입력 2023-10-30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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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재론지 용접로봇
탑재론지 용접로봇 [사진=한화오션]
"현재 로봇 용접 작업자의 절반이 여성입니다. 여러분도 여기서 일하실 수 있어요."

지난 27일 찾은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옥포조선소) 용접/자동화 실험동(Welding/Automation Shop)'. 남성전유물로 여겨졌던 조선소에 '금녀(禁女)의 벽'이 허물어지고 있었다. 아직도 조선소에서 배를 진수할 때 '배를 (선주에게) 시집보낸다'는 말을 쓸 정도로 가부장적 문화가 남아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날 용접 로봇 소개를 맡은 강성원 로봇연구팀 연구위원은 "현재 조선소는 수작업 비중을 줄이고, 로봇과 자동화 장비를 확대하는 등 패러다임 시프트가 이뤄지고 있다"며 "작업 난도가 낮아져 현장 작업자 6명 중 3명이 여성으로 크게 늘었다. 이전에는 모두 남성 작업자였다"고 말했다.  

배는 블록(절단된 후판)이라는 레고 조각을 조립해 놓은 큰 덩어리라고 이해하면 쉽다. 블록과 블록을 이으려면 최대 4000번 이상의 용접 작업이 필요하다. 이전에는 100kg가 넘는 용접 장비를 날라야 해 시간도 오래 걸리고, 노동 강도도 높았다. 최근에 도입된 자동화 장비는 10분의 1 크기로 줄어들었다. 또 경력 30년의 숙련공의 '손맛'을 학습한 로봇 덕분에 비숙련자도 금방 현장에 투입될 수 있게 됐다. 

이날 한화오션은 세계 최초로 레일 없이 한 번에 용접이 가능한 '무레일 자동용접장치(EGW)'를 선보이며 눈길을 끌었다. 버튼만 누르면 50mm의 두꺼운 블록도 한번에 용접이 돼, 사후 그라이딩(연삭) 과정까지 없앴다. 기존 작업 시간보다 평균 3.5시간 줄여 원가 절감에 큰 역할을 한다. 

현장에 있던 관계자는 "중국 장비야 저렴할 수 있겠지만, 인부의 용접 실수를 덮고 가는 경우가 많다"며 "이런 사소한 실수가 모여 큰 사고로 이어지기 때문에 선주들이 우리의 자동화 장비를 선호하는 이유다"고 말했다. 현재 무레일 EGW는 HD현대, 삼성, HJ 등 경쟁사로부터 러브콜을 받을 정도로 인기다. 

장소를 옮겨 '스마트 야드실'에 들어가니 여의도 1.5배에 달하는 490만㎡(약 150만평) 조선소 부지를 옮겨둔 가상 세계가 펼쳐졌다. 권순도 스마트야드 연구팀장은 "이전에는 배의 고장이 생기면 헬기를 띄워 직접 현장에 나갔지만, 이제는 스마트 야드실에서 원격으로 수리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한화오션이 이러한 '자동화'에 이어 '지능화'에 목숨 거는 이유는 인력 부족 현상 때문이다. 정부가 올해 조선업 전용 고용허가제 쿼터를 신설하며 한화오션도 외국인 1500여명을 수급했다. 이날 현장에는 자전거를 타고 조선소 곳곳을 누비는 다국적 직원들이 쉽게 눈에 띄기도 했다. 

외국인 인력 확보에도 현장 수요를 채우기에 역부족이자, 환갑을 넘긴 고령자와 여성들까지 현장에 투입하고 있다.

올해 6월 30일 기준 한화오션의 여성 임직원 현황은 전체의 3.9%로 전년 3.6% 대비 소폭 올랐지만 대기업 평균 24%에는 한참 못 미친다.

싱가포르
싱가포르 이글사에 인도된 초대형원유운반선(VLCC) '벤투라스호' [사진=한화오션]
인도를 앞둔 초대형원유운반선(VLCC)인 '벤투라호'에도 직접 올랐다. 선주의 아량(?)으로 집주인 없는 집들이를 한 셈이다. 현장에 있던 작업자들은 알록달록한 주황색 도료로 새 옷을 입히며 주인 맞이에 한창이었다.   

싱가포르의 이글사에 수주된 이 VLCC는 원유탱크를 15개 보유해 총 30만톤(t)의 원유를 한 번에 이동시킬 수 있다. 이는 부산 시민 330만명을 모두 태울 수 있는 무게다. 

아파트 15층 높이의 벤투라호는 여느 선박과 크게 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한층 한층을 들여다보니 한화오션만의 친환경 기술력이 집약돼 있었다. 벤투라호는 기존 화석 연료가 아닌 액화천연가스(LNG)를 사용해 기존 중유 대비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3%가량 줄인 게 특징이다.

초록색의 '연료통'도 첨단이었다. 영하 163℃ 극저온의 LNG를 견디는 고망간은 극한의 환경에서 충격인성과 강도가 우수한 특수 강재다. '소재 국산화'를 위해 한화오션과 포스코가 10년간 공들인 결과다. 

현장에 있던 관계자는 "LNG 연료탱크와, 고망간 소재는 모두 조선소 내부에 위치한 에너지시스템 실험센터에서 탄생한 결과물이다"며 "이전에는 선주의 입깁대로 다른 글로벌사의 소부장(소재·부품·장비)을 울며겨자 먹기로 썼지만, 최근에는 한화오션의 제품을 믿고 따르는 선주들도 늘었다"고 말했다.
 
슬로싱
슬로싱 연구센터 전경 [사진=한화오션]
실제로 이날 외업을 하는 야외 작업자보다 내업 공간인 '숍(Shop)'에서 일하는 직원의 수가 더 많았다. 기름때 묻은 '거제 사나이'들보다 컴퓨터와 각종 실험 장치 앞에 있던 직원들을 더 많이 볼 수 있었단 얘기다.

△'슬로싱 현상(액체 상태 화물이 선박의 움직임에 따라 출렁이는 현상)'을 연구하는 숍 △도장 작업을 하는 페인트숍 △동력원인 동시에 주요 화물이 되는 친환경 에너지(LNG, 암모니아, 이산화탄소, 수소)를 연구하는 숍 등 한화오션의 미래 전략을 책임지는 최전선이 펼쳐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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