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장 속으로] 호주 멜버른 시내, 앨버트 파크 골프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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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버른=이동훈 기자
입력 2023-10-3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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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빅토리아주 멜버른 알버트 파크 골프코스 11번 홀에서는 만천루가 보인다 사진이동훈 기자
호주 빅토리아주 멜버른 앨버트 파크 골프코스 11번 홀에서는 마천루가 보인다. [사진=이동훈 기자]
오전 5시 30분, 알람 소리와 함께 기상한다. 펼친 휴대전화에 한국시간과 호주시간이 표시된다. 한국시간은 오전 3시 30분. 준비를 마치고 호텔 로비에서 우버를 불렀다. 이른 아침 온 기사는 "이 시간에 골프장에 가냐"고 물었다. 차를 타고 호텔에서 5분 거리. 멜버른 시내에 있는 앨버트 파크 골프 코스로 향했다.

프로숍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티타임은 오전 6시 33분. 전날 늦은 시간 인터넷으로 예약했다. 예약은 간단했다. 빈 시간을 누르고 결제하면 된다. 가격은 43호주달러(약 5만8000원).

프로숍 앞에서 티타임을 기다렸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덩그러니 방치된 트롤리(손 카트)에 백을 싣고, 처마 밑으로 향했다.

한 골퍼가 차에서 백을 내리더니 우산을 쓰고 1번 홀로 걸어갔다. 바로 티샷을 날렸다. 그 역시 스코어카드를 받지도, 프로숍에 들르지도 않았다. 진정한 대중 골프장이다. 코스 관리를 위해 존 디어를 탄 한 직원이 그냥 티샷을 하라고 했다.
 
닫힌 프로숍 내리는 비 최악의 상황에서 가민 S70이 길잡이를 해줬다 사진이동훈 기자
닫힌 프로숍, 내리는 비. 최악의 상황에서 가민 S70이 길잡이를 해줬다. [사진=이동훈 기자]
스코어 카드가 없으니 레이아웃을 볼 수도, 스코어를 적을 수도 없었다. 진퇴양난인 상황에서 백을 뒤져보니 골프 시계인 가민 S70이 있었다. 코스를 선택하고, 레이아웃과 전장을 보면서 라운드를 시작했다. 총 전장은 5743야드(5251m), 파72다. 파5 5개, 파4 8개, 파3 5개로 구성됐다. 가장 짧은 파3는 121야드(110m), 가장 긴 파5는 489야드(447m)였다.

골프대회를 치르기에는 짧은 전장이지만, 시내 공원 골프장 치고는 길었다. 동틀녘 1번 홀 티잉 구역에 섰다. 파4 352야드(321m). 티도 나이, 성별, 실력에 따라 나뉘었다. 두 번째 샷 지점에 있던 사람이 바삐 움직인다. 그린에 당도하는 걸 보고 티샷을 했다. 날아간 공이 페어웨이 중앙에 떨어졌다. 첫 스윙이 가운데로 가기란 쉽지 않은 일인데, 그 어려운 것을 해냈다.

페어웨이와 러프는 터프했지만, 티잉 구역과 그린은 잘 정비돼 있었다. 특히 그린은 놀라울 정도였다. 공이 낙하한 지점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평평했다. 공의 구름 역시 매끄러웠다. 그린 스피드는 10피트(3m) 정도 되는 것 같았다. 비가 와서 그런지 홀마다 조금씩 달랐다.

전반 9홀은 호수를 옆에 끼고 쳤다. 강을 따라서 굽이굽이 걸었다. 멜버른 스포츠 센터와 심(건 아일랜드)이 배경으로 깔렸다. 10번 홀로 향했다. 숲속 파3. 날린 공이 그린 왼쪽으로 향했다. 어프로치에 이은 파.
 
호주 멜버른 알버트 파크 골프코스 10번 홀과 12번 홀 사이에 있던 나무 손 카트가 나무 앞에 서있다 사진이동훈 기자
호주 멜버른 앨버트 파크 골프코스 10번 홀과 11번 홀 사이에 있던 나무. 손 카트가 나무 앞에 서 있다. [사진=이동훈 기자]
손 카트를 끌고 11번 홀로 향했다. 가장 긴 파5다. 이 홀부터는 나무가 빼곡했다. 공원 중앙이라 더 그랬다. 나무를 피해야 했다. 마천루를 바라보며 공을 친다는 것이 오른쪽으로 휘었다. 나무 밑에서 5번 아이언을 쥐고 낮게 공을 깔아 페어웨이로 보냈다. 지켜보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지만, 내리는 빗속에 긴장감이 맴돌았다. 어프로치를 시도했다. 헤드업을 하지 않기 위해 공 위치를 보며 스윙하다가 흙이 얼굴로 튀었다. 검은색 흙이 얼굴에 붙었다. 그래도 공은 아름답게 날아갔다. 걸어 다니는 새들을 넘어 깃대 옆에 떨어졌다.

이날 갤러리는 흰색과 검은색이 섞인 새다. 등은 흰색이고, 앞은 검은색이었다. 부리부리한 붉은 눈으로 퍼팅을 쳐다봤다. 부담스러운 눈빛이라 보기를 적었다.
 
동이 튼 호주 멜버른 알버프 파크 골프코스 18번 홀 그린 모습 새벽 워킹 셀프 라운드는 3시간 20분 정도가 걸렸다 사진이동훈 기자
동이 튼 호주 멜버른 알버프 파크 골프코스 18번 홀 그린 모습. 새벽 워킹 셀프 라운드는 3시간 20분 정도가 걸렸다. [사진=이동훈 기자]
코스를 돌다 보면 멜버른 시민들을 만난다. 14번 홀부터는 건물로 들어가는 사람들, 16번 홀부터는 차를 타고 출근하는 사람들이다. 16번 홀부터 18번 홀까지는 모든 플레이가 시민들의 눈에 담긴다. 내리는 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플레이를 이었다. 티샷한 공이 아슬아슬하게 도로 방향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조금이라도 공이 왼쪽으로 휘었다면 시민들이 위험해질 수 있었다.

18번 홀로 향했다. 가는 길에 레슨프로가 연습하고 있었다. '이 시간에, 이 비에 공을 치는 사람이 있다'는 듯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두 번째 샷을 칠 때쯤 하늘이 환해졌다. 시계를 보니 오전 9시를 넘긴 시간. 그린에서는 실수가 나왔다. 깃대를 훌쩍훌쩍 넘기다가, 간신히 공을 넣었다.

18홀 라운드가 종료돼도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1번 홀 티잉 구역에는 이제야 티샷을 준비했다. 프로숍 문이 열려 있었다. 주인은 환한 미소로 "잘 쳤어? 자느라 늦게 나왔어"라고 말했다. 옆에 있던 강아지도 졸린지 하품했다. 손 카트 사용료를 묻자, "무료"라며 "다음에 오면 꼭 일찍 열어줄게"라고 했다.

라커룸은 화장실 안에 있었다. 샤워 부스는 한 개다. 물건을 둘 곳은 없다. 휴지로 비 맞은 부위를 쓱쓱 닦았다. 호텔로 돌아가기 위해 우버를 불렀다. 10호주달러(약 8500원)였던 금액이 돌아갈 때는 40호주달러(약 3만4000원)였다. 출근시간 정체가 심하기 때문이다. 5분 거리를 25분이나 걸렸다. 우버 비용이 18홀 라운드 비용과 맞먹었다. 

방에 도착하자마자 채를 모두 꺼냈다. 씻고, 닦고, 말렸다. 샤워도 했다. 채도 몸도 비에 젖은 생쥐 꼴이었지만, 비 오는 날 시내 한복판에서의 나 홀로 라운드는 긴 여운을 남겼다. 
 
호주 멜버른 알버트 파크 골프코스 입구 공원 안에 골프장과 미니 골프장이 함께 있다 사진이동훈 기자
호주 멜버른 앨버트 파크 골프코스 입구. 공원 안에 골프장과 미니 골프장이 함께 있다. [사진=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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