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로 풀어낸 연결'...'MMCA 현대차 시리즈 2023: 정연두-백년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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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민 기자
입력 2023-09-05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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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점 포함 총 5점 대형 설치작…시·공간·감각적 경험 선사

  • 20세기 초 멕시코 한인 이주 서사 주목

사진국립현대미술관
정연두 작가 [사진=국립현대미술관]
 
정연두 작가가 20세기 초 멕시코 한인 이주 서사를 영상, 설치, 공연 등 다양한 시각 언어로 재구성했다. 서로 무관해 보이는 것들이 연결됐고 닮아있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국립현대미술관(MMCA·관장 직무대리 박종달)은 ‘MMCA 현대차 시리즈 2023: 정연두 – 백년 여행기’를 오는 6일부터 2024년 2월 25일까지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15년 만에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선보이는 정 작가의 대규모 개인전이다.
 
작가가 주목한 서사는 20세기 초 멕시코로 건너간 한인 디아스포라(diaspora)다. 전시명인 ‘백년 여행기’는 1905년 영국 상선 일포드호를 타고 인천 제물포항을 떠나 멕시코 유카탄 주의 수도 메리다에 도착했던 백여 년 전의 한인 이주기를 의미한다. ‘역사’로서의 백년 전 이주기에 대한 작가의 관심은 ‘백년초’라는 식물의 ‘설화’적 여행기에서 출발했다.
 
작가는 2022년 9개월간 제주도에서 생활하며 제주 북서쪽 월령리 일대의 백년초 자생 군락을 방문한다. 쿠로시오 난류를 타고 멕시코에서 태평양을 건너와 제주도에 뿌리를 내렸다고 알려진 백년초 이동 설화에서 작가는 한국과 멕시코를 잇는 식물 및 사람의 백년 여행기라는 소재를 떠올리게 되었다.
 
정 작가는 5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개인이 다루기 힘든 역사의 무게가 있다. 하지만 보는 분들이 무게감을 덜어내고, 예술작품으로 즐겁게 감상해줬으면 좋겠다”라며 “한국 이민 후손들을 만나고 조사하고 상상하면서 재밌게 작업했다”라고 말했다.

전시는 서울관의 서울박스 및 5전시실에서 ‘백년 여행기’, ‘상상곡’, ‘세대 초상’, ‘날의 벽’ 등 4점의 신작과 ‘백년 여행기-프롤로그’(2022) 등 총 5점이 출품됐다.
사진국립현대미술관
4채널 대형 영상 설치작품 '백년 여행기' [사진=국립현대미술관]
 
관람객은 우선 서울박스에서 사운드 설치 신작 ‘상상곡’(2023)을 만나게 된다. 초지향성 스피커가 내재된 천정의 열대 식물 오브제를 배경으로 2023년 현재 한국에 와서 살고 있는 여러 국적 외국인들의 다종 다성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이는 멕시코의 한인 이주민이 겪었을 낯섦의 감각을 역으로 유추하게 한다. 6개 국가에서 한국으로 온 사람들에게 꿈과 어려움 등을 그들의 언어로 이야기하게 했다.
 
5전시실 입구의 ‘백년 여행기- 프롤로그’(2022)는 설화와도 같은 멕시코에서 제주도로의 백년초 이주 서사를 마임이스트의 손 퍼포먼스를 기록한 영상 및 에네켄 농장을 형상화한 작은 무대 설치로 전환했다.
 
또한 전시의 주요 작품인 4채널 대형 영상 설치작품 '백년 여행기'(2023)는 멕시코 이민과 관련한 텍스트를 기반으로 작가가 연출한 한국의 판소리, 일본 전통음악 기다유(분라쿠), 그리고 멕시코의 마리아치의 공연을 3채널 영상으로 보여준다.
 
멕시코 노동자들의 말을 그대로 판소리로 옮긴 작업이 인상 깊었다. 다양하고 깊은 감정을 담은 판소리는 멕시코 현지 영상과 전혀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사랑하고 동시에 싸우는 가족 간의 관계 역시 보편성을 갖고 있다. ‘세대 초상’(2023)은 두 대의 LED 대형 패널을 마주 보는 형태로 설치된 매우 느린 영상 화면으로 사진과 영상의 중간적 상태를 구현한 작품이다. 6가구 12명이 영상에 등장한다. 멕시코로 이주한 한국 이민 후손들의 부모와 자식 세대 간의 관계를 아주 느린 영상으로 전달한다. 우리 옆에서 볼 수 있는 흔한 가족처럼 느껴졌다. 정 작가는 “느린 화면은 기록의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12m 높이의 벽면 설치 ‘날의 벽’(2023)은 어린 시절 즐겨했던 놀이인 설탕 뽑기의 형태로 전 세계 다양한 농기구(마체테) 모양의 오브제를 만들고, 이를 디아스포라의 어원적 원류인 이스라엘 ‘통곡의 벽’에서 착안하여 거대한 벽의 형태로 쌓아 올렸다.
 
설탕이 주는 달콤함의 감각과 뽑기라는 유희적인 놀이, 그리고 시각적인 반짝임은 제국주의와 디아스포라를 촉발한 설탕의 정치학과 상충한다. 정 작가는 “마체테는 생산을 하는 도구였던 동시에 반란을 위한 무기로도 사용됐다”며 “이 작품 덕분에 ‘설탕의 달인’이 됐다. 하루에 마체테 2개 정도 만들 수 있었다”고 소개했다. 작가의 말처럼 역사의 무게가 느껴지는 동시에 즐거운 작품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주최하고 현대자동차가 후원하는 ‘MMCA 현대차 시리즈’는 2014년부터 10년간 매년 국내 중진 작가 한 명(팀)을 지원하는 연례전이다.
 
2014년 이불, 2015년 안규철, 2016년 김수자, 2017년 임흥순, 2018년 최정화, 2019년 박찬경, 2020년 양혜규, 2021년 문경원&전준호, 2022년 최우람에 이어, 2023년 정연두 작가가 선정되었다.
 
‘MMCA 현대차 시리즈’의 목표는 한국 현대미술의 지평을 넓히고 한국의 주요 작가들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계기를 마련하는 데 있다. 매해 독자적인 작업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중진작가 한 명을 선정해 작품 활동과 전시를 지원하며, 국내·외로 적극 홍보하고 있다. 관람객들은 작가 고유의 태도와 감각이 반영된 작품들을 통해 한국 현대미술의 현주소와 역동성을 확인할 수 있다.
 
‘MMCA 현대차 시리즈’는 문화예술과 기업이 만나 상생효과를 창출한 대표적인 기업 후원 사례로서 한국 미술계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진국립현대미술관
12m 높이의 ‘날의 벽’ [사진=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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