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엄벌 원해도 돈내면 감형"...형사공탁제도 '개선'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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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소희 기자
입력 2023-09-03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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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변 "공탁금 내고 집행유예 판결은 2차 가해"

법원
법원 [사진=아주경제DB]

피해자 의사와 상관없이 공탁금을 낼 수 있게 되면서 감형을 노리고 선고 직전에 기습 공탁을 하는 등 형사공탁 특례제도 악용이 이어지자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부터 피해자 의사와 상관없이 가해자가 공탁금을 낼 수 있도록 한 '형사공탁특례제도'가 시행된 후 피해자의 엄벌 촉구 의사에 반하는 법원 판결이 이어져서다.

애초 가해자가 피해자의 개인정보를 캐내 합의를 종용하는 일이 반복되자 이를 막기 위해 도입한 공탁제도가 오히려 '꼼수 감형'을 부추긴다는 지적이 나온다.
 
초등생 성관계 남성에 집유···법원 "공탁 고려"
3일 법조계에 따르면 춘천지방법원 강릉지원 형사2부(이동희 부장판사)는 최근 초등학생 2명을 게임기 등으로 유인해 성관계를 한 혐의(의제강간·강제추행, 아동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등)로 재판에 넘겨진 성인 남성 5명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성매매를 제안한 남성은 10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범죄 행위가 피해자 의사에 반하지 않은 점, 피해자 중 한 명과 합의한 점, 다른 피해자에게는 공탁을 한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한 피해아동 아버지는 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피해자가 용서를 안 하는데, 왜 판사가 공탁을 걸었다고 해서 용서를 해주냐, 나는 그 돈 필요 없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형사공탁제도는 피해자와 합의하지 못한 피고인이 법원에 공탁금을 맡겨 피해자가 이를 받을 수 있도록 한 제도다. 가해자가 피해자의 개인정보를 캐내고 합의를 종용하는 일이 생기자 피해자를 통하지 않고 공탁금을 낼 수 있도록 공탁법 제5조를 개정해 도입했다.

그러나 피해자가 엄벌을 원하는 경우에도 가해자가 피해자를 거치지 않고 공탁금을 낼 수 있는 점을 악용해 꼼수 감형을 노리는 사례가 적지 않다. 실제로 특례 제도가 시행된 지난해 12월을 기점으로 공탁 납부 금액이 급증했다. 법원통계 월보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공탁금은 약 8991억원에서 12월 1조1810억원, 올해 1월에는 1조2118억원으로 증가세를 이어갔다.
 
꼼수 감형으로 악용···제도 취지 퇴색
이처럼 공탁금을 감형 사유로 반영하는 법원 판결이 이어지면서 피해자의 빠른 합의와 피해 회복을 돕는다는 공탁 제도의 본 취지가 퇴색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새로운미래를위한청년변호사모임(새변)은 지난 1일 성명을 내고 "형사공탁제도는 피해자 입장에서 실형을 살아야 할 가해자가 돈을 내고 집행유예가 되는 것을 경험하게 하면서 이를 피해 회복으로 간주하는 격"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피해자는 선고까지 자신의 처벌 의사를 입증해야 하지만, 가해자는 새로운 공탁제도를 이용해 감형을 촉구하기 쉬워졌다"고 꼬집었다.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라고도 했다. 피해자가 나서서 가해자가 공탁을 하더라도 처벌을 해달라고 직접 법원에 요청해야 해서다. 새변은 "선고 전 공탁회수동의서가 제출될 수 있게 언제 공탁이 되는지 촉각을 곤두세우며 긴장해야 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김슬아 변호사(법무법인 영민)는 "큰 액수를 공탁한 가해자를 피해자 의사와 전혀 무관한 양형기준으로 계속 사회로 복귀시키고 있는 법원은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하는 것"이라고 쓴소리를 냈다. 김 변호사는 "특히 선고 직전 공탁금을 내는 기습 공탁이 이뤄지면 손쓸 방법이 없다"고 밝혔다.

이원석 검찰총장이 지난 3월 기습 공탁에 대한 대비책으로 전국 검찰청에 '선고 직전 기습적으로 공탁이 이뤄지면 검찰이 변론 재개를 통해 방지하라'는 지시를 내렸지만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피해자 의사와 상관없이 공탁이 가능하게 한 제도를 개선하지 않으면 꼼수 감형을 막기 어렵다는 지적이 이어지는 이유다. 새변도 "공탁금을 피해자가 실제로 수령해야 감형 사유가 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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