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탕주의 사회, 쇼핑도 게임도 도박] 이커머스 판 흔드는 랜덤박스몰...명품 준다더니 '듣보잡' 세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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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라다 기자
입력 2023-08-31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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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우주마켓 홈페이지 갈무리
[사진=우주마켓 홈페이지 갈무리]

# 직장인 김모씨(35·여)는 지난달 우주마켓에서 1만원도 채 안 되는 가격에 명품 시계나 지갑 등을 구매할 수 있다는 광고를 보고 ‘명품 랜덤박스’를 구매했다. 이틀 뒤 집 앞에 물품이 배송됐다. 김씨는 원하는 명품 지갑을 기대하며 택배 상자를 열어보고는 실망했다. 처음 보는 낯선 브랜드의 화장품 세럼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무작위로 상품을 배송하는 랜덤박스 전문몰(랜덤박스몰)이 전자상거래 시장 질서를 어지럽힌다는 지적이다.
명품을 미끼로 소비자를 유인하지만 실제 명품이 당첨될 확률은 극히 낮다. 대부분 원치 않은 제품을 받거나 환불마저도 적립금으로 제공한다. 적립금으로 환불을 받으면 해당 쇼핑몰에서 또다시 랜덤박스를 구매하는 것 외에는 사용할 방법이 없는 실정이다.

랜덤박스몰 메인 페이지에는 명품이 배송됐다는 성공 후기가 넘쳐 나지만 정작 품질 보장도 안 되는 저렴한 제품을 받았다는 소비자 불만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2007년 오프라인에서 자판기 형태로 운영되던 랜덤박스는 코로나19 시기와 맞물려 전자상거래(e-commerce) 시장에서 활개를 치기 시작했다. 당시 해외 여행을 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보상 심리로 명품을 구매하는 사례가 늘면서 관련 시장도 급성장한 것이다. 

명품 수요가 늘자 가격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콧대가 높은 명품 브랜드들이 1년에 3~4차례 가격을 올렸기 때문이다. 명품 주고객층은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자)다. 당시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젊은 층을 중심으로 저렴하게 명품을 살 수 있는 랜덤박스가 유행처럼 번졌다.

랜덤박스에서 주로 취급하는 카테고리는 에르메스, 루이비통 등 명품 브랜드다. 이를 테면 최대 1000만원에 달하는 에르메스 가방을 단 돈 7000원에 구매 가능하다고 광고하며 소비자를 유인한다. 

다만 운영 방식은 업체마다 다소 차이를 보인다. 이용자가 가장 많은 우주마켓은 나이키, 구찌, 명품 시계, 명품 향수 등 9가지 랜덤박스를 판매 중이다. 판매 가격은 적게는 7000원에서 최고 9만9000원으로 정해져 있다. 

랜덤박스는 이름처럼 추첨을 통해 명품 구매자를 결정하는 방식으로 수천대 1에 달하는 경쟁률을 뚫어야 한다. 명품 당첨에 실패하면 저렴한 제품이 배송되거나 환불을 받아야 하는 구조다.  
우주마켓은 '꽝 없는 정품 랜덤박스'를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브랜드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저렴한 상품을 받았다는 소비자 불만이 쇄도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소비자연맹과 1372소비자상담센터에 따르면 우주마켓에서 180만원 넘는 나이키 신발을 7000원에 구입할 수 있다고 광고하고 실제는 값싼 손소독제, 화장품 등을 배송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많이 피해가 발생한 품목은 나이키 랜덤박스로, 전체 민원 중 92%로 대다수를 차지하며 이어 시계·명품 랜덤박스가 각각 4% 순이었다. 
 
사진해시박스 몬스터 홈페이지 갈무리
[사진=해시박스 몬스터 홈페이지 갈무리]

해시박스 몬스터는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랜덤박스 시스템을 적용해 당첨 확률을 높였다고 강조한다. 정부 정책에 따라 상품별로 당첨 확률을 공개한다. 다만 당첨 확률이 1%에 못 미치는 상품이 전체 6가지 중 ‘그라운드 엑스(Ground X)’, ‘그라운드 에이(Ground A)’ 등 두 가지나 됐다. 세 개 상품 중 하나는 극악의 확률을 뚫어야 하는 셈이다. 가장 낮은 당첨 확률을 보인 것은 그라운드 엑스다. 실제 당첨 확률은 0.00061%로 업체 설정치(0.0009%)보다 낮았다. 그라운드 에이는 상품을 구매한 소비자 중 0.101%만이 원하는 상품을 손에 쥐었다. '악덕 상술'이란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상황이 이런데도 랜덤박스몰들은 당첨 후기만 메인 페이지에 게재해 마치 명품을 받을 확률이 높은 것처럼 홍보하고 있어 과장광고 논란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실제로 우주마켓은 홈페이지 내에 고객센터를 운영 중이다. 배송·환불 등과 관련된 민원 글을 적을 수 있지만 공개 여부는 선택 사항이 아니다. 공개와 비공개 버튼은 있지만 소비자들이 문의 글을 올리려면 무조건 비공개를 선택해야만 한다. 사이트 내에서 공개 버튼을 클릭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소비자연맹 관계자는 "랜덤박스는 고가 상품을 주는 것처럼 광고하지만 값싼 소독제를 받았다는 사례가 많다는 소비자 불만이 제기되고 있다"면서 "공정위에서 제재를 받았지만 여전히 소비자 기만 행위가 이뤄지고 있다. 기대에 못 미치는 상품을 받을 확률이 높은 만큼 주문 시 구성 상품을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만약 원치 않은 상품을 배송받았다면 배송일로부터 7일 안에 청약 철회 의사를 밝혀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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