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교사들 "정당한 훈육도 아동학대로 몰려…교사 생존권 보장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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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보경 기자
입력 2023-07-23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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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호 외치는 교사들
    서울연합뉴스 신현우 기자  서울 서초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발생한 교사 사망 사건과 관련해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인근에서 열린 추모식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3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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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발생한 교사 사망 사건과 관련해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인근에서 열린 추모식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선량한 아이들을 괴롭히는 아이를 훈육하지 못하고, 말썽부리지 말라고 호소하며 무력감을 느낍니다. 일이 커지면 아동학대로 고소당할까 위축되고요."

서울에서 근무하고 있는 9년차 현직 초등교사 A씨는 2021년 초등학교 1학년 담임을 맡아 악성 민원에 시달렸다고 전했다. 당시 정신적으로 힘들어 병가를 내고 담임을 교체해야 했다. 교권보호위원회(교보위)를 열고 싶었지만 학교 측은 '조금만 참으라'며 일을 키우지 말자고 A씨를 압박했다. A씨는 "'선생님 힘내세요'라고 하는 선한 아이들 덕분에 일을 계속할 수 있었다"며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선 교사들은 토요일인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추도식 및 교사 생존권을 위한 집회'를 열었다. 경찰 추산 7000명이 모였다. 이들은 지난 18일 서울 서초구 한 초등학교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20대 교사 A씨에 대한 추모의 뜻을 표현하기 위해 검은 옷을 입었다. 참여 인원이 많아 서울 종로구 종각역 일대를 4분할해 집회를 진행했다. 집회 도중 비가 내렸으나 사고 없이 안전하게 마무리됐다.
 
사진권보경 기자
22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열린 '추도식 및 교사 생존권을 위한 집회'에서 교사들이 앉아 현장 발언을 듣고 있다.  [사진=권보경 기자]
 
"차 안에서 XX했다"…헛소문에도 교보위 안 열려

이날 전국 각지에서 모인 교권침해 피해를 본 교사들의 성토가 이어졌다. 교사들은 학생으로부터 교권을 침해당했을 때 교보위를 열 수 있지만 운영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입을 모았다.

경기도에서 근무하는 25년 차 초등교사 정모씨는 "그간 학생들과의 갈등, 학부모 민원에 시달리다 휴직했고 최근 퇴직을 준비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정씨는 "고학년 학생들이 선생님을 대상으로 성적 모욕감을 느낄 수 있는 소문을 내는 경우도 있다"며 "이럴 때도 훈육은 어렵고 교보위도 열리지 않는다"고 전했다.

교보위가 교원 교권침해 피해에 비해 현저히 적게 열리는 현실은 통계로도 나타난다. 교육부 '교육활동 침해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21년 기준 교육활동 침해 건수는 2269건이다. 같은 시기 교원치유지원센터에 접수된 교권·교육활동 침해 관련 심리상담건수는 1만3621건으로 6배나 많았다.

김동석 한국교총 교권본부장은 "교권침해 피해를 보더라도 많은 교사가 참고 지나간다고 유추할 수 있다"며 "실제 교권침해 피해사례는 훨씬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건희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서울지부 청년위원장도 "저경력 교사는 교직 경력이 짧아 교육활동 침해 행위에 노출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크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교보위 등 제도적 장치가 있다고 하지만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관리자들과 소통해야 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다"고 전했다.
 
전국 초등교사 성명서 든 참가자
    서울연합뉴스 신현우 기자  서울 서초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발생한 교사 사망 사건과 관련해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인근에서 열린 추모식에서 한 참가자가 전국 초등교사 성명서를 들고 있다 2023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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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발생한 교사 사망 사건과 관련해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인근에서 열린 추모식에서 한 참가자가 전국 초등교사 성명서를 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더딘 교권보호 대책…"무고죄 처벌 강화해야"
 
이날 현장에 모인 교사들은 교권침해 피해를 입고 문제를 제기하고 싶어도 되레 아동학대로 몰릴까 두렵다고 호소했다.

가족들과 함께 집회에 참여한 초등교사 최모씨(30)는 "아이들을 훈육하면 '부모님이 선생님 그런 말씀 아동학대라고 하던데요'라는 반응이 돌아온다"고 토로했다. 이어 "실제로 학부모들은 교사들이 훈육했을 때 아이가 조금이라도 기분이 나빴다고 하면 '아동학대로 처벌받게 하겠다'고 압박한다"고 밝혔다.

강원에서 근무하는 초등교사 정모씨(32)도 "계속 아동학대로 민원을 제기하는 학부모들은 녹음기를 가방에 숨겨 보내 수업이나 생활지도를 모두 녹음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이어 "이러한 사실을 알고 나니 아이들을 적극적으로 훈육해야 할 때도 위축된다"고 덧붙였다. 서울에서 근무하는 23년차 중등교사 김모씨도 "아동학대처벌법 도입 이후 훈육으로 인해 아이들이 불편하다고 느끼면 정서적 학대로 간주될 수 있다고 하니 훈육이 거의 불가능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교육계는 2010년대 들어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아동학대처벌법 제정 등으로 아동학대와 관련해 교사들의 의무는 가중됐으나 정당한 훈육은 어려워진 상황이라고 지적한다. 2011년 신체에 고통을 가하는 직접체벌을 금지하는 내용으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이 개정됐다. 2014년 아동학대처벌법 제정 이후 교사들이 아동학대 신고 의무자로 지정되는 등 아동학대 관련 의무는 강화됐으나 정당한 교육활동을 보장할 제도 마련은 더뎠기 때문이라는 입장이다.

김 본부장은 "지난 6월 28일부터 시행된 '생활지도법(초·중등교육법 개정안)'과 학칙에 따라 교원들이 소신을 갖고 생활지도에 나서려면 무분별한 아동학대 신고로부터 보호하는 입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재 이태규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5월 발의한 초·중등교육법 일부 개정법률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정당한 교원 생활지도는 고의나 중대한 과실이 없는 경우 정서적·신체적 아동학대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 핵심이다. 김 본부장은 "무분별한 무고성 아동학대로부터 학생 학습권과 교원 교권을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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