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수마 휩쓸고 간 오송 사고현장 참담.. "희망 없어도 자리 뜰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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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조아라·백소희 기자
입력 2023-07-16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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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5일 오전 침수된 충북 청주시 홍덕구 오송읍 궁평 제2지하차도에서 군·경찰·관계공무원 등이 배수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김성현 기자
지난 15일 오전 침수된 충북 청주시 홍덕구 오송읍 궁평 제2지하차도에서 군·경찰·관계 공무원 등이 배수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김성현 기자]

"저 진흙 구덩이에··· 기적이 일어나길 바라야죠."

16일 오후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궁평 제2지하차도 앞. 아들을 찾아 현장에 왔다는 70대 A씨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물에 잠긴 지하차도만 바라봤다. 40대 아들은 전날 출근길에 봉변을 당했다. A씨는 "희망은 없지만 그렇다고 자리를 떠날 수 없다"며 "아들이 찬물 속에서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고 말했다.

지난 15일 오전 8시 45분쯤 청주 오송읍에 비가 세차게 쏟아지면서 미호천 둑이 무너졌다. 물살은 그대로 궁평 제2지하차도를 지나는 차들을 덮쳤다. A씨 아들을 포함한 실종자들은 이날 개인 승용차나 급행 시내버스를 타고 오송역으로 가던 중이었다. 이들은 인근 하천에서 불어난 물에 갑자기 지하차도가 잠기면서 봉변을 당했다.

침수된 지 하루하고도 7시간가량 지난 16일 오후 4시에도 지하차도 내부에는 생사를 알 수 없는 실종자가 10여 명인 것으로 전해졌다. 배수·수색 작업에는 군인·경찰·소방·관계 공무원 등 인력 399명과 장비 65대가 투입됐지만 많은 토사와 흙탕물로 인해 작업 속도는 더뎠다. 

이날 청주에 있는 한 종합병원 응급실에서 만난 박모씨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그는 희생자 수습 소식에 곧장 병원으로 달려왔지만 이내 고개를 떨궜다. 박씨는 "폭우로 차가 막히자 어머니가 동료들과 함께 급행버스를 탄 것 같다"며 "차가운 물속에 계셨을 어머니를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진다"고 했다. 70대 노모는 이날 오송 시내 한 아파트에 청소를 하러 집을 나섰다가 봉변을 당했다.

근처에 사는 시민들은 미호강 제방이 무너진 게 문제였다고 입을 모았다. 궁평 제2지하차도 침수는 홍수가 우려되는 상황에서도 관할 행정관청이 위험도로에 대한 차량 통제를 하지 않았다. 사전에 제방 관리도 허술했기 때문이라는 주민들 주장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대해 충북도 관계자는 "홍수경보가 내려도 도로 상황 등을 파악해 차량을 통제하게 돼 있다"며 "이번 사고는 제방이 범람하면서 짧은 시간에 많은 물이 쏟아져 들어와 차량을 통제할 시간이 없었다"고 해명했다.

사고 지역 주변에서 농사를 짓는 60대 이모씨는 "내가 여기 산 지 8년째인데 비가 온다고 이런 사고가 일어난 건 이번이 처음"이라며 "비가 많이 온다는 예보만 했을 뿐 청주시나 오송읍에서 차량 통제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또 다른 지역 주민 최모씨는 통제하지 않아 벌어진 '인재'라고 지적했다. 최씨는 "서울에서는 비가 많이 오면 잠수교 등을 통제하지 않냐"며 "지하차도가 저지대에 있는데도 침수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제대로 감독하지 않아 벌어진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고가 벌어진 오송 궁평 제2지하차도 주변은 모두 저지대다. 지하차도는 더욱 지대가 낮아 폭우로 갑자기 물이 불어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한 곳이다. 폭우로 지반이 약해져 쏟아진 토사는 성인 무릎 높이까지 차올랐다. 이날 취재진이 찾은 현장도 갯벌처럼 펼쳐진 토사 때문에 한번 빠지면 쉽게 빠져나오기 어려웠다.

사고가 발생한 오송 궁평 제2지하차도 옆 농가 상황도 처참했다. 오이와 감자, 옥수수 등 각종 채소들이 흙탕물과 함께 나뒹굴고 있어 한눈에 어떤 작물인지 파악하기 어려웠다. 냉장고와 매트리스 등은 각종 집기와 함께 엉켜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웠다. 

비닐하우스에서 감자를 재배하는 60대 강모씨는 취재진을 붙잡고 애통한 마음을 쏟아냈다. 강씨는 "비가 많이 온다는 소식에 어제(15일) 저녁에 급하게 몸만 겨우 빠져나갔다가 오늘 점심쯤 돌아왔다"고 말했다. 이어 "돌아와 보니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며 "목숨을 겨우 건진 것에 감사한 마음도 들지만 자식같이 키운 농작물이 저렇게 흙덩이에 묻혀 있는 모습을 보니 억장이 무너진다"고 울부짖었다. 농사를 지으며 휴식공간으로 마련해 놓은 5평 남짓한 컨테이너 내부는 토사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옆에서 오이 농사를 짓는 70대 이모씨는 "속이 문드러지니까 취재고 뭐고 말 시키지 말라"며 현장 상황을 묻는 취재진을 내쳤다. 출하를 앞둔 오이는 포장작업을 마쳤지만 박스는 물론 오이도 형태를 알아보기 어려웠다. 이씨는 "온통 물에 젖어 어디서부터 정리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쉬었다.

한편 사고가 발생한 궁평 지하차도 내부에는 차량 15대가 침수된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 현장 약 2㎞ 근방에 있는 도로는 대부분 통제 중이었다. 경찰과 소방, 군 관계자 등이 투입돼 분당 8만ℓ씩 물을 빼내는 배수 작업을 계속하고 있지만 지하차도를 가득 채운 토사와 부유물로 인해 작업이 쉽지 않다는 게 현장 관계자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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