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엑소더스'에 웃는 카자흐스탄…"기업·인재 종착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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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혜 기자
입력 2023-06-28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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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재·동원령 피해 기업·인재 몰려

  • '유령 무역' 활발…물밑에선 러시아서 벗어나기

  • 우크라 전쟁에 미·중·러, 중앙亞 포섭 경쟁

카심 조마르트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 [사진=AFP·연합뉴스]





“러시아에서 카자흐스탄으로 이전하는 데 관심 있는 401개 기업에 초청장을 보냈다.” 알마스 아이다로프 카자흐스탄 외무부 차관은 지난달 자국 의회에서 이처럼 말했다. 그는 “현재까지 67개 기업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서 이들 기업과 함께 작업 중”이라며 “25개 기업의 이전은 완료됐다”고 말했다.
 
러시아 엑소더스(대탈출)에 카자흐스탄이 살며시 웃음 짓고 있다. 카자흐스탄은 탈러시아를 준비 중인 수백 개에 달하는 미국 및 유럽 등 서방 기업을 자국에 유치하는 데 사활을 걸었다. 대러시아 제재를 피해 탈출 행렬에 나선 기업들의 종착지가 돼 경제 성장의 발판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카심 조마르트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은 지난해 7월 “(정부는 기업 유치에) 호의적인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이는 고부가가치 상품의 생산 증대로 이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후 카자흐스탄은 기업들에 러브콜을 보냈다.
 
실제 러시아가 지난해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글로벌 기업들은 러시아에서 대규모로 철수했다. 미국 예일대 최고경영자리더십연구소(CELI)에 따르면 이달 26일 기준으로 러시아에서 완전히 철수한 기업은 526개에 달한다. 

이러한 엑소더스는 중앙아시아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국제금융기관인 유럽부흥개발은행(EBRD)은 지난달 보고서를 통해 중앙아시아의 올해와 2024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각각 5.2%, 5.4%로 전망하며, “러시아에 있던 기업과 개인이 중앙아시아로 이동한 덕분에 높은 성장률을 기록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제재·동원령 피해 기업·인재 몰려

이달 초 카자흐스탄에서 열린 투자 라운드 테이블에는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등 빅테크를 비롯해 보잉, 셰브론, 제너럴 일렉트릭, 마스터카드 등 미국 기업 다수가 참석했다. 카자흐스탄의 무역 진흥 및 외국인 투자 유치를 담당하는 공기업 카자흐 인베스트에 따르면 이들 기업은 카자흐스탄을 러시아 대체국으로 꼽았다.
 
이 자리에서 구글은 "러시아를 떠나 카자흐스탄 시장으로 (기업) 활동을 재배치한다는 관점에서" 카자흐스탄과 협력을 확대하는 데 지대한 관심이 있다고 밝혔다. MS는 카자흐스탄에 중앙아시아, 아제르바이잔 등을 포괄하는 다중 지역 허브를 만들고 IT 전문가를 교육해 카자흐스탄의 디지털 수출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했다.
 
EBRD는 올해 중앙아시아의 경제 성장률 전망(5월 기준)을 지난 2월 대비 0.2%포인트 상향한 5.2%로 조정했다.
 
특히 EBRD는 카자흐스탄에 주목했다. 보고서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러시아의 동원령으로 인해 러시아에서 인력과 자본이 대거 유입되면서 혜택을 입었다”며 “이들 러시아인 다수는 엘리트로, 기업과 자본을 손에 쥐고 왔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전쟁 발발 후 첫 3개월 동안 러시아 자본을 보유한 2000개에 달하는 회사가 카자흐스탄으로 이전했다”고 강조했다. 또한 비(非)러시아산 에너지에 대한 수요가 증가한 점도 원자재 부국 카자흐스탄에는 경제 성장 기회로 작용했다.
 
서방 기업이 철수하면서 생긴 러시아 시장의 공백도 중앙아시아가 채웠다. 서방의 제재로 독일 등 서유럽을 통한 제품 수입이 차단되자, 러시아는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등을 통한 중개 무역과 이들 나라의 제품에 의존하게 됐다.
 

[표=EBRD 지역 경제 전망 보고서(Regional Economic Prospects)]

'유령 무역' 활발…물밑선 러시아서 벗어나기  

러시아는 제재 회피를 위해 중앙아시아에 의존하고 있다. 카자흐스탄이 주문한 물품의 상당수가 러시아로 밀수입되는 '유령 무역'이 단적인 사례다. 러시아와 카자흐스탄은 유라시아경제연합(EAEU)의 회원국이다. 이에 따라 7591km에 달하는 양국 국경을 통과하는 물품에 대한 세관 검사는 이뤄지지 않는다.
 
문제는 이러한 유령 무역의 최대 수혜자가 러시아 군부라는 것이다. 미 국무부와 NSC에 몸담았던 데이비드 메르켈 서밋 인터내셔널 어드바이저스의 총괄 국장은 닛케이아시아에 기고한 글을 통해 카자흐스탄이 수출하는 세탁기가 러시아의 무기 생산을 지원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카자흐스탄을 통해 러시아로 흘러들어간 세탁기는 2021년 0대에서 지난해 약 10만대로 급증했다. 러시아 무기 제조업체들이 세탁기나 자동차 등에 탑재된 반도체를 빼내서 유도 미사일에 재사용하고 있다는 게 중론이다.
 
카자흐스탄의 대러 반도체 수출 규모도 2021년 1만2000달러에서 지난해 370만 달러로 큰 폭으로 늘었다.

미국은 이를 좌시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올해 초 카자흐스탄을 방문해 토카예프 대통령과 만나, 미국이 카자흐스탄에 2차 제재를 가할 수 있다고 밝혔다. 엘리자베스 로젠버그 테러금융·금융범죄 담당 차관보도 지난 4월 카자흐스탄을 방문해 추가 제재 가능성을 경고했다.
 
서방의 압박에 카자흐스탄은 러시아와 서서히 거리를 두는 모습이다. 카타르 관영 알자지라는 카자흐스탄이 물밑에서는 러시아의 영향권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토카예프 대통령은 이달 자세한 설명 없이 러시아의 연례 경제 포럼인 상트페테르부르크 국제경제포럼에 참석하지 않았다. 지난해에는 이 포럼에 참석했었다.
 
또한 카자흐스탄은 최근 러시아, 튀르키예, 이란이 주도하는 시리아 평화협상(아스타나 프로세스)을 종료할 것을 제안했다. 아스타나 프로세스는 카자흐스탄의 수도 아스타나에서 지난 2017년부터 열린 회담이다. 2016년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아스타나를 제3지대로 제안하면서 이 명칭이 굳어졌다. 그러나 카낫 투므쉬 카자흐스탄 외교차관은 지난 21일 “아스타나 프로세스 하에서 20차 회의를 최종 회의로 공식 선언할 것을 제안한다”며 회담 종료를 촉구했다. 

뿐만 아니라 카자흐스탄은 최근 우크라이나 침공을 지지한 러시아 가수 그리고리 렙스의 콘서트를 취소했다.
 
중국도 중앙아시아를 두고 미·러와 경쟁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중국은 중앙아시아의 가장 큰 교역 상대국으로, 수입 및 수출액이 전년 대비 40% 넘게 증가한 700억 달러에 달했다. 반면, 같은 기간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간 교역액은 400억 달러에도 못 미쳤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달 시안에서 중앙아시아 5개국과 정상회의를 열고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에서 가스를 동쪽으로 수송하는 파이프라인 건설을 제안했다. 이는 러시아산 에너지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려는 목적이라고 영국 시사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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