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중국에 안방 내주는 한국 배터리 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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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란 기자
입력 2023-05-29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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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드와 CATL을 따르는 후속 케이스는 없을 것입니다."

지난달 한 투자 포럼서 만난 미국의 배터리 스타트업 '아워넥스트에너지(Our Next Energy; ONE) 대표의 말이다. ONE 설립자인 뮤지브 이자즈(Mujeeb Ijaz) 대표는 자신의 회사가 중국의 밀입(?)에 관여한 조력자로 지목된 사실에 강하게 반발했다. 한국 주요 언론은 "중국 궈시안이 ONE와 제휴해 미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우회하면서 미국서 배터리를 생산한다"고 보도한 터였다. 

이자즈 대표의 '강한 부정'에서 현지 업계 분위기를 읽을 수 있었다. 미국 배터리 업계는 중국과의 협력을 강하게 경계하고 있다. 향후 IRA가 규정하는 해외우려단체(FEOC)에 중국이 포함될 경우 미·중(美中) 제휴 사업이 좌초할 수 있어서다. 공장 나사 하나마저도 중국산을 쓰는 게 어렵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그만큼 미국 재무부의 규제 칼날은 서슬 퍼렇다. 여기에 미국 상원은 중국 기술로 만들어진 전기차 배터리에 대한 세액 공제 혜택을 차단하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기도 하다.

중국의 IRA 규제 우회 논란은 지난 2월 처음 불거졌다. 중국 CATL과 포드가 미시간주에 4조원 이상을 들여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셀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하면서다.

그러나 '중국 침공'에 대한 한국의 반응은 미국과는 사뭇 다르다. 한국 지자체는 중국 기업들의 한국 진출을 두 손 들어 환영하고 있다. 최근 국가 첨단전략산업인 이차전지 특화단지 유치를 둘러싼 경쟁이 한창이다. 

한국 배터리 완성품 업체로서는 중국 업체의 진출이 반갑다. 아직 중국 업체의 경제성을 따라잡을 만한 대안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국내 배터리 업계는 전구체의 약 90%를 중국에서 수입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같은 분위기에 중국 전구체 업체 거린메이는 SK온, 에코프로머티리얼즈와 손잡고 전북 군산 새만금산업단지에 1조2100억원을 들여 전구체 생산공장을 설립한다고 지난 3월 발표했다. 중국 화유코발트는 LG화학, 포스코퓨처엠과 각각 1조2000억원 들여 전구체 공장을 짓기로 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지정하는 특화단지에 선정되면서 각종 세액공제, 기술개발 지원 등 파격적인 혜택이 주어지고 있다.

하지만 배터리 소부장(소재·부품·장비)의 국산화를 위해 혈세가 투입되는 상황에서 중국 업체가 수혜를 받는다면 한국 산업 경쟁력을 외국에 내주는 꼴이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배터리 전문가인 A 교수는 "최근 각국이 산업 육성이라는 국익을 위해 보호무역과 자유무역 간의 치열한 수 싸움을 하고 있는데 혈세를 들여 중국 업체에 날개를 달아주는 어리석은 상황은 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 업체들이 국내 생산을 늘리면 단기적인 관점에서 수출 지표야 좋아질 수 있지만, 미국 업계의 우려대로 중국과 합작법인이 향후 IRA 규제 대상에 오를 것이 유력한 상황이다. '한국산 이름표'가 붙더라도 미국 수출길이 아예 막히는 상황까지 고려한다면 중국 자본 침투에 대해서 숙고할 때다.
 
산업부 김혜란 기자

산업부 김혜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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