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두수의 절차탁마] ​5월, 푸른 기상이 만드는 삶의 궤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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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수 작가/건설노동자
입력 2023-05-1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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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수 작가/ 건설노동자]



5월, 나무에서 배우는 푸른 마음

5월이 되면 가슴이 뿌듯해진다. 여기저기 피어나는 풀꽃들의 잔치로 아침에 산보하기에도 기분이 좋다. 가정의 달이라고 해서 가족을 생각하면 왠지 가슴이 푸근해진다. 햇살은 더욱 따뜻해져 나무들은 연녹색에서 진한 초록으로 변해가며 나무 그늘도 점점 진해지고 있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빠르게 변신하는 자연의 힘을 느끼기도 한다. 이렇게 주변 환경의 변화에 대응해 나가는 것을 인간계에선 혁신이라고 하는데 우리 자신은 주변이 변화해도 우리 스스로나 조직을 변화시키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도 5월에는 어린이날이 있어 어린이의 소중함과 어버이날을 맞아 부모님께 사랑과 감사를 표하고, 스승의날에는 자신에게 가르침을 준 어른들을 찾아 감사와 우애를 나누는 것은 더 없이 아름다운 모습이다.
12년 전 딱 이맘때다. 2011년 일본 동북 지역에 진도 M9.1이라는 전무후무한 지진에 거대한 쓰나미가 몰아닥쳤고 아오모리에서 도쿄에 이르는 해안가 지역은 초토화되었고 아비규환 그 자체였다. 나는 그때 공연 관련으로 홋카이도에 있었고 5월에는 ‘동경전설’이라는 초대형 한류공연을 준비하고 있었다. 서울의 방송사, 각 기획사와 연락을 주고받으며 분주할 있을 때인데 갑자기 삿포로 사무실이 지진의 영향으로 기우뚱하더니 바로 이어 TV에서는 긴급속보를 내고 있었다. 이번 지진은 통상 있는 그런 지진이 아니라 초대형 지진이며 거대한 쓰나미가 올 것이라며 주민들에게 긴급히 대피할 것을 전했다. 시시각각 전해지는 TV 영상은 상상을 초월하고 있었다. 도쿄 신주쿠의 고층 빌딩이 이리저리 휘면서 건물끼리 부딪칠 만큼 아슬아슬해 보였다. 센다이 공항의 비행기들은 장난감처럼 물에 떠다녔고 해안가 마을들이 시커먼 물에 잠기는 모습은 공포영화 그 자체였다.
동북 대지진 재해로 일본은 엄청난 인명 피해와 재산상 피해를 입었다. 해외에서 많은 나라들이 구호품과 구조대를 파견했다. 당시 서울시는 그 어느 곳보다 빠르게 구조대를 파견해 주었다. 당분간 나라 안은 침울했지만 현지에 가서 직접 봉사하겠다는 자원봉사자들이 줄을 이었다. 전국에서 몰려드는 자원봉사자들이 너무 많아 자원봉사를 자제해 달라는 뉴스를 내보낼 정도였다. 구호품이 산처럼 쌓였지만 도로가 뚫리지 않아 현지에선 배분에 어려움을 겪었다. 며칠씩 굶는 사람들이 속출했지만 불평하거나 시위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가까스로 식료품이 전달되어도 사람들은 길게 줄을 서서 받아갔고 보급품이 부족하면 더 힘든 사람부터 나눠주라며 양보하는 모습은 고결한 인간의 품위를 보여주는 듯했다. 이런 상황에 대형 공연장이나 체육관은 피난민들 수용소로 사용했기 때문에 공연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4월이 되자 사회도 침울했던 분위기에서 점차 일상으로 회복되어가고 있었지만 아직 희생자에 대한 애도기간이어서 모든 공연은 자숙하도록 요구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 신문 칼럼에 ‘쓰나미로 쓰러진 벚나무도 때가 되니 꽃을 피우고 있다. 언제까지 우리는 침울한 분위기에 젖어 있어야 하는가. 오늘 이 하루가 누군가에게는 인생 마지막일 수도 있다. 일상의 회복이야말로 희생자에 대한 가장 큰 애도’라는 글이 올라왔다. 희생자를 추념하는 것이 함께 슬퍼하며 애도하기보다는 일상으로 돌아와 웃고 떠들고 사는 것이 가장 큰 위로라는 것이다. 이런 사회적 변화로 당초 계획했던 초대형 한류공연 ‘동경전설’은 일본 최초의 재난 위로공연이 되면서 말 그대로 전설적인 공연이 되었다.
 
한 곳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나무 
나는 요즘 매일 아침마다 여의도 공원을 산보하고 있다. 샛강을 걸으면 마치 정글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도심에 이런 친자연적 공원이 있다는 것에 감탄하고 있다. 이곳에는 다양한 나무들이 서식하고 있다. 며칠 전에는 버드나무가 내뿜는 화분이 흰 눈처럼 휘날렸지만 요즘은 아카시 향기가 공원에 가득하고 이팝나무, 벚나무도 제법 많다. 계절에 따라 꽃으로 또는 화분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보여주는 이들 나무를 보며 비록 나무들은 이동할 자유가 없이 자기가 태어난 곳에서 평생을 살지만 자기 삶에 최선을 다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런 것을 한자로 '一所懸命(일소현명)'이라고 한다. 자기가 받은 직분에 혹은 받은 땅에서 일생 목숨을 걸고 최선을 다한다는 의미다. 직업이라는 말도 이런 개념에서 나오지 않았나 생각한다. 직업을 흔히 3가지로 구분하는데 생업(Job), 직업(Career), 천직(Calling)으로 나눈다. 생업은 말 그대로 생계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일이다. 직업(커리어)은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여 자신의 존재감을 확대해 가는 과정으로서의 일이다. 천직은 하나의 소명의식으로서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이며 자신의 행하는 일로 인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사명감이다. 내가 보기에 나무들은 모두 자신이 뿌리내린 곳을 하늘이 내려 준 봉토라 여기며 평생 그곳을 지키며 다른 생명을 키우고 있다. 우리 어머니들이 위대하지만 이 나무들 또한 자연에게는 위대한 어머니다. 이 한 그루 나무로 인해 땅이 보전되고, 온갖 생물들이 번식하고, 새와 동물의 안식처가 되고, 청명한 공기도 제공하고, 시원한 물도 제공한다. 가지가 부러지고 줄기가 꺾여도 나무는 살아 있는 한 때가 되면 자신의 꽃을 피운다. 그리고 자신이 처한 환경을 불평하지 않고 비탈진 곳이라면 비탈진 대로, 바위 위라면 작은 틈새라도 붙들고 하늘을 향해 꼿꼿하게 서 있는 모습은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에게 뒤질 것이 없다. 아마 나무가 인간에게 부러운 것이 하나 있다면 그건 자유일 것이다. 자유는 인간만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자유의 의미 

자유(自由) 라는 말은 예전부터 한자문화권에서는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근대적 의미의 새로운 용어인 'Freedom, Liberty'의 의미를 수용하는 데에는 기존의 자유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해서 '자주, 자립'이라는 말로 돌려 쓰다가 일본의 나카무라(中村正直)씨가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On Liberity)을 번역하면서 자유라는 말을 그대로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자유의 의미는 과거에 쓰던 의미보다는 인간의 고유한 권리로서 법률이 정하는 그 범위 안에서의 자율성, 즉 책임이 뒤따르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밀은 자유의 한계를 규정하기 위해 말과 행동을 구분하며 '말'은 그 어떤 것도 자유롭게 말할 수 있어야 하고, '행동'은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한에서 사적인 행동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신의 생각을 마음대로 말할 '표현의 자유’와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한에서 자신의 개인적이고 사적 행동을 간섭받지 않을 '사생활의 자유’가 인류의 공익과 개인의 행복에 있어서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는 주장이다.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면서 자신의 주장을 피는 것, 이것이 바로 자유에 따르는 책임이다. 즉 자기 책임하에 운용되는 이 자유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고 만물의 영장임을 증명할 수 있는 힘이다. 나는 사랑도 이 자유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자유에 대한 깊은 생각이 없는 행동은 그것이 비록 선의의 행동이라도 사랑은 없고 행위만 남는다. 책임은 없고 방종만 흐른다. 말 그대로 생각이 없는 ‘내 맘대로 느끼는 대로’ 행동일 뿐이다. 이런 자유는 잠깐의 쾌락이 있을지 모르지만 가슴을 울리는 감동은 없고 결과가 없다. 이런 사랑은 행위로 끝날 뿐 생명으로 연결되지 못하며 지속적일 수 없다. 우리 사회에 저출산은 이와 같은 요즘 우리 문화와 다르지 않다. 생각해 보자. 요즘 우리 사회는 그 어느 시대에도 누려보지 못한 제일 좋은 출산, 육아, 교육 그리고 최고의 주거 환경에서 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군 이래 제일 저조한 저출산의 현실에서 살고 있다.
 
한류의 힘
요즘 한류가 세계 문화를 리드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위태한 상황이다. 국내 영화계를 봐도 극장에서 관람객의 톱을 차지하는 것은 외국 영화다. 최근 야권에서 불을 지핀 ‘토착왜구’ ‘친일분자 척결’이라는 분노에 가득 찬 구호에도 불구하고 실상은 일본으로 향하는 한국 관광객이 가장 많고 국내에선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가 가장 인기가 있다. 독립운동가 김구는 평생을 일본과 싸웠지만 그가 주장하는 문화강국론에는 타국을 증오하거나 멸시하는 것이 없다. 김구 선생은 백범일지 ‘나의 소원’에서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라고 말하면서 "나는 우리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이러한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길 원한다"고 했다. 이웃 나라를 폄하하고 조롱한다고 해서 자국을 사랑하는 맘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기미독립선언서에는 일본의 잘못을 지적하고 바른 길로 가도록 타이르며 인류 공영과 평화를 위한 대의에 우리 민족의 독립과 각성을 주장했지, 일본 타도라는 적국에 대한 증오와 적개심을 부추기지 않았다. 그래서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3·1운동에 참여했고 이 높은 도덕적 고결성의 비폭력저항운동은 이후 모든 식민국가 독립운동의 표본이 되었으며 인류사를 바꾼 위대한 운동이 되었다.
한류가 세계인들에게 높이 평가받는 것은 한국인들의 가족을 향한 한없는 정성과 한의 정서, 원수를 원수로 갚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용서로 품어가는 웅혼한 정신에 새로운 카타르시스를 느낀 것이다. 이러한 문화적 깊이를 현대 음악과 영화로 새롭게 해석해내는 한국인들의 표현 능력에 세계인들은 기꺼이 환호한 것이다. 그래서 그동안 우리는 영화, 드라마, 팝, 클래식 연주, 그리고 게임에서까지 톱을 달리며 여러 국제 시상식에서 상을 받는 등 우리가 세계 문화계를 선도하는 듯했다. 하지만 요즘 우리 사회는 너무 가벼워졌다. 말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에 무게감이 사라졌다. 새로운 문명을 이끌고 갈 문화의 힘을 제공하기에는 모든 부문에서 문화적 깊이를 잃어가고 있다. 특히 최근 K-팝을 선도하는 우리 아이돌의 가사나 안무 그리고 패션은 섹시와 폭력이라는 원초적 욕망에만 매달리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솔직히 음악을 팔고 있기보다는 성을 팔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런 것이 단기적으로 시청률을 높이고 마케팅에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팬들에게 외면을 당할 것이다. 인류 보편적이며 문명을 새롭게 구축할 깊이가 없으면 오래갈 수 없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문화시장만이 아니라 우리의 정치 현실은 더 자극적이고 선동적이다.
 
개인의 각성
근대의 출발은 개인의 발견에서 시작되었다고 본다. 역사는 한때 신권자만이 생각할 힘을 가졌고 누군가 중간 매개자를 세워 그의 눈과 입을 통해 신을 바라보았다면, 이젠 내가 당당히 혹은 홀로 외롭게 신 앞에 서서 나를 바라볼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주교와 사제의 사도권에 의한 성사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루터가 발견한 신 앞의 단독자인 개인의 신앙으로 구원받는다는 개념은 근대성의 단초를 놓는 혁명이었다. 이렇게 개인의 발견이 기독교에 종교개혁을 가져왔고 계몽주의라는 인문학적 혁명을 가져왔다. 이러한 역사의 연장선상에서 그 흐름은 미국이라는 ‘새로운 나라’ 근대국가 건설로 결실되었다. 이제 또다시 문명의 나침반은 아메리카 대륙을 지나 다시 아시아 대륙으로 돌아오고 있다. 문명의 전환, 새로운 문명의 해석이 필요하다. 어쩌면 아시아 대륙에서 새로운 차원의 치우(蚩尤)와 황제의 신화적 싸움이 재연될지 모르겠다.

정의, 공정, 민주, 평화··· 이런 말은 단지 권력의 액세서리가 아니라 오랜 역사를 거치며 인류가 공들여 만들어 온 가치체계다. 이 말을 쓴다고 자신이 공정해지고 민주스러워지는 것이 아니다. 이런 말은 깎고 다듬고, 갈고닦으며, 지키고, 쌓아가는 것이다. 이를 이루기 위해 평생을 애쓰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그 과정을 보고 정의롭다 혹은 공정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꽃을 피워야 할 때는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야 할 때는 열매를 맺도록 노력하는 나무의 의지를 다시 본다. 한 그루의 나무도 비록 한 뼘의 장소에서 평생을 살아가며 주변을 위해 도와주고 경쟁하며, 불순물을 정화하며 자신의 삶의 궤적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 푸른 기상이 아름답다.

 

[그대가 있어 찬란한 봄이다. 이 계절을 봄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은 춥고 건조한 들판을 푸른 생명의 숲으로 만들어 주는 그대가 있기 때문이다. 때에 맞춰 꽃을 피우고 잎을 내기 위해 언 땅에서 오랫동안 견디며 참아온 그대의 노고를 알기 때문이다. 그대를 봄으로 우리 가슴 커지며 새로운 눈을 뜨기 때문이다. 그대가 봄이다./이두수 작가 제공]




 
필자 소개 - 최근 수년간 일용직 건설 노동자 생활을 하면서 노동현장의 일상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해 왔다. 현재는 글로벌피스재단에서 한반도 통일과 동북아 평화운동에 관여하고 있다. 건설 현장에서 몸으로 익힌 절차탁마의 정신을 실생활에 적용하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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