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돈 칼럼] 동반자 관계 복원한 한·일 …다음 스텝' 위한 '과제 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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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돈 숙명여대 교수
입력 2023-05-0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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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돈 교수]

 
 
지난 3월 16일 윤석열 대통령이 도쿄를 방문하여 기시다 일본 총리와 만남으로써 12년 만에 처음 한·일 정상 간의 회담이 성사되었고 7일 기시다 일본 총리가 1박 2일로 서울을 답방함으로써 한·일 정상 간의 셔틀외교가 다시 막을 올렸다. 형식적이고 격식에 있어서 장황한 정상회담보다는 간편하고 신속하면서도 실속 있는 한국과 일본 정상 간의 셔틀 외교는 2004년 노무현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1년에 한 번씩 양국을 방문하는 형식으로 시작되었다. 한·일 셔틀 정상회담은 개시 1년 만인 2005년 고이즈미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면서 한국의 반발로 정지되었다가 3년 뒤 2008년에 이명박 대통령과 후쿠다 총리가 셔틀회담을 복원하여 몇 차례 열렸지만 2012년에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하고 이듬해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신사참배를 하면서 양국 간의 셔틀외교는 지금까지 중단된 것이다.
 
지난번 3·16 도쿄 정상회담은 양국 정상의 언급에서도 나타났듯이 ‘새로운’ 회담이었다. 정상회담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올해는 김대중(DJ)-오부치 공동선언이 발표된 지 25주년 되는 해로서 이번 회담이 DJ-오부치 공동선언의 정신을 발전적으로 계승해 양국 간 불행한 역사를 극복하고 한·일 간 협력의 새 시대를 여는 첫걸음이 됐다고 평가했다. 여러 현안으로 어려움을 겪은 한·일 관계가 새롭게 출발한다는 것을 양국 국민께 알려드리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도 했다. 미래를 위해 한·일 관계의 새로운 장을 함께 열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 데 대해 대단히 기쁘게 생각한다는 기시다 총리의 말 또한 오랫동안 중단되었던 한·일 간 물막이를 트는 새로운 소통의 계기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한 것이다.
 
새로운 소통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막힌 과거를 뚫는 소통과 다른 하나는 열린 미래를 함께 개척하는 소통이다. 지난 3월 16일 정상회담 이후 막힌 과거를 뚫는 소통은 빠르게 진전되고 있다. 2019년 7월 일본이 전격적으로 취했던 3대 전략수출품목의 수출규제 조치와 화이트리스트(수출관리 우대 대상국) 배제 조치, 그리고 그에 따른 한국의 WTO(세계무역기구) 제소는 모두 철회하기로 합의되어 정상화 되었다. 2019년 파기 선언되었던 지소미아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에 대해서도 윤석열 대통령이 완전 정상화를 선언했다. 그러나 여기까지의 막힌 과거를 뚫는 소통이 다라면 재개된 한·일 셔틀외교는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소통에 불과하다. 몇 발짝 뒤로 간 걸음을 되돌리는 수준에 불과하다. 수출규제 해제나 화이트리스트 배제 취소나 WTO 제소 취소나 지소미아 복귀 모두 몇 년 전 수준의 소통에 불과하다. 여기서 그치고 만다면 정부로서도 얻은 것은 극히 작은 것에 불과하다.
 
윤석열 대통령의 본래 뜻도 여기에 그치지는 않을 것이다. 한·일 셔틀 정상회담 재개의 근본 목적은 열린 미래를 함께 개척하기 위한 소통에 있다. 경제적으로 보면 일본은 한국보다 앞서 있는 나라임에 틀림없다. GDP는 거의 5조 달러로 한국의 세 배가 넘는다. 외환보유액도 1조3000억 달러로 우리나라 4300억 달러보다 약 네 배 많다. 1인당 총금융자산 보유액도 한국은 6만6000유로임에 비해 일본은 12만5000유로로 두 배나 된다. 인구까지 감안하면 일본의 총금융자산 보유액은 한국에 비해 여섯 배 많다고 봐야 한다. 수출규모도 7500억 달러로 우리나라 6800억 달러보다 많다. 자동차 생산량은 783만대(2022년)로 한국의 376만대의 두 배가 넘고 철강생산량도 한국은 6590만 톤으로 세계 6위였으나 일본은 8920만 톤으로 세계 2위다. 양적인 면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질적인 면에서도 일본은 뛰어난 점을 많이 지닌 나라다.
 
전체 노벨상 수상자를 보면 일본은 29명으로 7위이지만 과학 분야만 놓고 보면 25명으로 5위에 들고 2000년 이후의 과학분야 노벨상 수상자는 16명으로 미국 91명, 영국 24명 다음으로 독일이나 프랑스보다 앞선 세계 3위의 국가다. 수학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필즈상 수상자도 일본은 세 명으로 한국의 1명(2022년 허준이)보다 많다. 국제경영개발기구 IMD의 세계경쟁력지수(WCI)를 보면 경제적성과(ECONOMIC PERFORMANCE) 부문에서 일본은 20위로 한국의 22위보다 앞서있다. 이런 총량적인 수치 외에도 일본은 여러 산업분야에서 세계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자동차 분야는 물론이고 공작기계, 로보틱스, 우주개발, 비디오 게임, 철강, 비철금속, 화학물질, 섬유 등 여러 분야에서 일본은 세계 최상 수준의 기술력과 생산능력을 갖추고 있다. 과학기술 분야에서도 뛰어난 역량을 지니고 있고 GDP 대비 연구개발투자액도 세계 2위 국가이다(2017년). 취업인구 1000명당 연구개발인력의 비율도 14명으로 세계 2위다.
 
물론 한국이 우위를 지닌 분야도 많다. 소비자 가전제품이나 조선, 디스플레이 생산 능력은 일본을 앞선다. 세계경쟁력 지수에서도 종합 27위로 일본 34위보다 뛰어나고 특히 기업경영부문은 한국이 33위로 일본 51위보다 크게 앞서며 인프라 부문은 16위로 일본 22위보다 낫고 정부효율도 36위로 일본 39위보다 뛰어나다. 일본이 뛰어난 부분도 있고 한국이 뛰어난 부분도 있기 때문에 서로 윈-윈하는 공생이 가능하다. 앞으로 미·중 간의 경제안보 전쟁이 격화되면 중국수출에 의존해 성장을 주도하던 그동안의 우리나라 성장 모델은 크게 수정할 수밖에 없다. 세계 3위의 경제력을 감안할 때 중국을 대신할 수출상품 시장으로서의 일본은 매우 매력적인 대안이 아닐 수 없다. 그건 일본 쪽에서도 마찬가지다. 중국을 대신할 교역 상대국으로 한·일 양국이 서로 상대국을 선택하는 경우의 이득은 손실을 충분히 상쇄하고도 남는다.
 
그러나 한·일간의 열린 미래 개척은 중국을 대체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반도체, 우주, AI, 바이오, 2차 전지, 비디오 게임, 애니메이션과 만화, 문화오락 등 셀 수 없이 많은 미래 먹거리 산업 분야에서 세계적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하여 한·일 간의 협력은 양국에게 필수적이다. 윤석열 정부의 신성장 4.0 전략을 위해서도, 수출전략을 완성시키기 위해서도, 그리고 인재양성 전략을 위해서도 일본과의 협력은 필수적이다. 일본의 앞서는 기술력, 풍부한 유동성은 우리가 충분히 활용해야 할 가치가 있다. 그리고 지리적 접근성과 문화적 유사성, 그리고 지난 60여 년간 한·일 협력의 역사는 한·일 간의 협력을 훨씬 용이하게 해줄 것이다.
 
한·일 간의 열린 미래를 개척하기 위해 남은 과제는 세 가지다. 첫째는 정부 주도가 아니라 민간 기업이 주도해야 한다는 점이다. 양국 정상이 물막이를 텄으니 이제는 양국의 기업과 금융기관이 자유롭게 주도적으로 소통하고 협력하도록 해야 한다. 정부 부처간 회의도 필요하겠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협력하는 민간 기업과 인력의 교류다. 둘째는 한·일 경제협력의 상징적 총화로서 한·일FTA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 세계 거의 모든 국가와 자유무역협정을 맺어 놓고 가장 가까운 일본과는 그러하지 못하다는 것은 거의 비극에 가깝다. 셋째로 일본의 전향적인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 오부치 발언에만 매달리지 말고 사과할 것은 독일처럼 과감하게 사과하고 그 바탕 위에 공고한 일본의 미래를 쌓을 필요가 있다. 과거 정부처럼 일본의 사과에 얽매이거나 구차한 조건을 달지는 않지만 진정으로 밝은 미래를 새롭게 생각한다면 일본은 생각을 조금 바꿀 필요가 있다.
 

 신세돈 필자 주요 이력

▷UCLA 경제학 박사 ▷한국은행 조사제1부 전문연구위원 ▷삼성경제연구소 금융연구실 실장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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