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종 칼럼] 尹대통령이 부른 '아메리칸 파이'와 공감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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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종 숙명여대 국제관계대학원 교수
입력 2023-05-02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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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종 교수]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아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을 국빈 방문했지만 한·미 간에는 여전히 의견 차가 존재한다. 정상회담 후 대통령실은 양국이 핵을 공유할 것이라고 발표했지만 미국은 이를 부인하며 핵 결정권은 여전히 자신들의 손에 있음을 분명히 했다. 이런 이견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양국이 공감한 점이 있다면 바로 미국과 미국 문화에 대한 윤 대통령의 애정이라고 할 수 있다. 백악관 공식 만찬에서 마이크를 잡고 ‘아메리칸 파이’를 열창하던 그의 모습에서 이런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윤 대통령이 ‘아메리칸 파이’ 노래가 미국에서 어떤 의미가 있고 아울러 ‘아메리칸 애플 파이’가 미국에서 무엇을 상징하는지 알고 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그가 엄숙한 만찬장에서 짧게 한 소절 부르는 이 장면이 유튜브를 통해 널리 전파되고 테슬러의 일론 머스크나 그 곡을 작곡한 돈 맥클린 등이 소셜 미디어에 경쟁적으로 이 영상을 공유한 점을 보면 문화를 통해 미국 사회와 공감하고 미국인에 다가가려던 윤 대통령의 의도는 충분히 달성된 것으로 보인다.
아메리칸 애플 파이는 가장 미국적인 음식이고 이를 주제로 한 노래 역시 미국 문화의 한 획을 긋는 명곡이다. 1971년 돈 맥클린이 발표한 이 곡은 미국의 번영과 자부심이 정점을 이루던 유토피아적 1950년대를 지나 60년대에 이르며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과 흑인 인권 운동, 쿠바 미사일 사건 등으로 미국 사회가 혼란의 나락에 빠지는 모습을 그린다. 작곡가는 자신이 추앙하던 팝 음악 가수 세 명이 비행기 추락으로 동시 사망하는 사건의 충격을 노래하며 이 사고가 순수하고 선하던 한 시절의 종말을 고하는 신호로 해석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곡을 열창하던 윤 대통령의 장면에서 미국인들은 미국을 이해하고 사랑하려는 한국 대통령의 모습을 보았으리라 생각된다. 또한 상하원 합동 연설에서 완벽하지는 않지만 또박 또박한 영어로 43분간이나 연설을 한 점도 인정을 받았을 것이다. 한 나라 정상이 자신의 모국어 대신 타국어로 연설을 하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 있고 특히 한국같이 민족주의가 강한 경우에는 사대주의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기에 이런 점을 더욱 평가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과거 이승만, 노태우, 김대중, 박근혜 대통령이 미국의회에서 영어 연설을 한 점은 평가받을 만하다.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이 대통령을 제외하고 그들의 영어 발음은 부자연스러웠지만 이를 통해 미국인들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려 노력했다. 이명박 대통령 역시 소위 ‘생존 영어’를 통해 통역 없이 외국 인사들과 소통하려고 했다. 상대방의 공감을 얻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그들의 언어로 얘기하는 것이 효과가 높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 역시 이런 점 때문에 가능하면 쉽고 간단한 영어를 통해 미국인에게 다가가려 했다고 밝혔다. 고조되는 북한 핵 위협에 맞서 미국과의 동맹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기에 이런 자세는 효과 여부를 떠나 꼭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타국의 문화에 공감하고 그들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그 나라 국민의 사랑을 얻을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이 점은 외국인에게 우리의 문화만을 강요하려는 경향이 높은 한국인에게는 꼭 필요한 덕목이다. K-팝(pop)과 한류가 성장하면서 우리 문화에 대한 과도한 자부심으로 길거리에서 만난 초면의 외국인에게 무조건적으로 Do you know Kimchi? 혹은 Do you know BTS?라고 묻는 것은 낮 뜨거운 자민족주의(ethnocentrism)에 지나지 않는다. 그만큼 그들의 문화를 알고자 하는 노력이 없으면 더욱 그러하다.
그런 점에서 이번 방미 때 윤 대통령이 BTS나 ‘블랙핑크’를 자랑하면서 동시에 ‘탑건 매브릭,’ ‘미션 임파서블’ 등 할리우드 영화를 칭송한 것도 평가할 만하다. 물론 연설문 작성 비서가 준비해준 얘기일 가능성이 높지만 이번에 윤 대통령이 구사한 몇 가지 조크 역시 눈여겨볼 만하다. BTS가 자신보다 백악관에는 먼저 왔지만 의회에는 자신이 먼저 왔다는 등 다수의 애드 립 조크 역시 유머를 사랑하는 미국인들에게 점수를 땄을 것으로 여겨진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에서 성공하는 연설의 세 가지 조건을 설명한다. 즉 로고스(logos), 에토스(ethos), 페이토스(pathos)이다. 로고스는 문자 그대로 논리적인 연설 내용이다. 귀납, 혹은 연역적 삼단논법을 통한 논리적 설득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 다음 에토스는 연사에 대한 신뢰감을 말한다. 특히 윤리적이고, 정직하거나 전문적인 연사일 때 연설 효과가 극대화된다. 마지막 페이토스는 청중과의 감성적 공감이다. 아무리 좋은 연사가 좋은 내용으로 연설해도 청중과 교감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그런 점에서 윤 대통령은 이번에 가장 미국적인 노래인 ‘아메리칸 파이’를 통해 나름대로 미국인의 공감을 끌어냈다고 판단된다.



이병종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언론정보학 박사 ▷AP통신 특파원 ▷뉴스위크 한국지국장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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