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VB 파산] 美 은행권, 820조 '미실현 손실' 시한폭탄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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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원 국제경제팀 팀장
입력 2023-03-12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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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로이터·연합뉴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으로 인해 미국 은행권에 '미실현 손실'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적절한 회계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은 채권 항목이 은행 재무 상태에 시한폭탄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행 미국 회계 기준에 따르면 은행들은 매입한 채권을 '만기 보유 증권(Held to Maturity·HTM)' 혹은 '매도 가능 증권(Available for Sale·AFS) 항목으로 처리할 수 있다. 문제는 '만기 보유 증권'으로 처리한 채권에 대해서는 일정 시기마다 가치를 재평가하는 시가 평가(Mark to Market)를 실시하지 않고 만기 도달 시 한꺼번에 가치 변동분을 평가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투자자들은 '만기 보유 증권' 가치 변동분을 대차대조표상에서 확인하기 어렵다. 이는 신뢰성 문제와 직결된다. 

물론 채권 가격이 오르거나 채권을 만기까지 보유할 수 있는 상황에서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채권 가격이 하락하고 만기 이전에 채권을 매도해야 하는 상황에 다다르면 얘기가 달라진다. 은행들은 유동성 및 자본 보충을 위해 채권을 매도해야 하고 이때 그동안 누적된 미실현 손실액이 한꺼번에 반영된다. 이때에야 투자자들은 뒤늦게 채권 가치 손실분을 파악하게 된다.

SVB는 지난 8일(현지시간) 자금 조달을 위해 보유하고 있던 '매도 가능 채권' 중 대부분인 210억 달러(약 28조원) 규모를 매도한 가운데 18억 달러(약 2조4000억원) 규모의 손실을 입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더욱 큰 문제는 '만기 보유 증권'이다.

SVB 분기 보고에 따르면 2022년 말 기준 '만기 보유 증권'을 910억 달러 규모 보유하고 있었는데 이를 시가 평가하면 760억 달러 수준에 그쳐 약 150억 달러 이상 손실을 입고 있었다고 블룸버그는 분석했다. 이는 자사 자본 규모인 162억 달러와 맞먹는 수준이다. 작년 말 이후 각종 채권 금리가 더 오른 것을 감안하면 '만기 증권 보유' 가치액도 더욱 하락했을 것은 자명하다.
 
천당에서 지옥으로
사실 2년 전만 해도 SVB는 넘치는 현금으로 행복한 고민에 빠져 있었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중 비대면 환경에 따른 테크 붐 속에 SVB는 기술 스타트업들을 대상으로 많은 예금을 유치했고 해당 자금을 미국 국채와 MBS(주택담보부채권) 등 각종 채권을 매입하는 데 사용했다.

당시 그레그 베커 SVB 최고경영자(CEO)는 블룸버그TV와 인터뷰하면서 "혁신 경제가 최선의 투자처"라며 "우리가 그 한가운데에 있는 것은 매우 다행"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1년 전부터 상황이 바뀌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광속 기준금리 인상 행보에 채권 가격은 연이어 떨어졌다. 작년 3월부터 금리 인상에 나선 연준은 이후 4연속 자이언트 스텝(한번에 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이라는 엄청난 긴축 행보를 선보인 가운데 미국 연방기준금리는 1년 전 0.25%(상단 기준)이던 것이 현재는 4.75%로 급등했다. 1980년대 이후 가장 빠른 금리 인상 속도다.

더욱이 리오프닝 이후 비대면 환경에 대한 열기가 시들해지면서 테크업계 전반적인 사업 환경도 악화됐고 이들 업계에서 유입되던 예금도 급감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자금이 부족해진 SVB는 결국 보유 채권 매각에 나서게 됐고 이 와중에 미실현 손실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면서 뱅크런으로 이어진 것이다.
 
시한폭탄
보다 큰 문제는 이것이 SVB에만 국한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이 미국 연방예금보험공사 자료를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미국 은행권의 '만기 보유 증권'과 '매도 가능 증권'에 대한 미실현 손실은 1년 전 80억 달러였던 것이 6200억 달러(약 820조원)로 급증한 것으로 집계됐다. 

그중에서도 SVB와 같이 특정 지역 혹은 특정 업계를 전문으로 하는 은행들의 미실현 손실 우려가 더욱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금융 칼럼니스트 로버트 배런은 포브스에 기고한 칼럼을 통해 "채권 포트폴리오 문제는 SVB가 혼자일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며 "연준이 금리 인상을 시작한 지 이미 1년이나 됐다"고 말했다. 이어 "문제는 다음과 같다. 만일 대부분 은행들이 이러한 채권 문제를 갖고 있다면 더 많은 은행들이 유동성 문제를 갖고 있지 않겠는가"라고 지적했다.

결국 '만기 보유 증권' 평가 손익을 대차대조표에서 확인하기가 쉽지 않은 가운데 은행들의 미실현 손실 규모를 어느 정도인지 파악하기 위해서는 기업들의 각종 금융 거래에서 발생하는 손익을 반영한 AOCI(기타포괄손익누계액)를 주의 깊게 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동시에 SVB 파산을 계기로 은행들의 미실현 손실에 대해 감독당국이 관리·감독을 더욱 강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대두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기간 중 미국 연방예금보험공사 의장을 역임했던 실라 베어 현 워싱턴대 총장은 SVB에 파산에 있어 주요 역할을 한 2가지 요인, 즉 무보증 예금과 미실현 손실이 높은 은행들에 대한 감독이 한층 강화될 것이라고 로이터에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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