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경제검찰]⑥담합으로 가격 인상, 소비자 피해는 누가 보상하나...'가격재결정명령' 재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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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가언 기자
입력 2023-03-16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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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뉴스]

#2009년 LPG 수입사 2곳과 정유4사 등 국내 6개 LPG 공급회사가 2003년부터 2008년까지 6년간 LPG 판매 가격 등을 담합해 온 사실이 적발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들에게 과징금 총 6689억원을 부과했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LPG 담합으로 피해를 입은 전국개인택시조합 소속 개인택시 운전기사 3만여 명이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하지만 소송은 13년째 1심조차 끝내지 못하고 제자리걸음이다. 한 운전기사는 "기업들 담합으로 입은 피해를 보상받을 방법은 손해배상 소송밖에 없다는데, 10년 넘게 질질 끌고 있어 제대로 된 손해배상이나 받을 수 있을지 걱정"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가격 인상을 담합한 기업을 상대로 소비자들이 취할 수 있는 법적구제 수단인 손해배상 소송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소송을 직접 제기해야 하는 데다 손해를 입증하기도 번거롭고, 소송 장기화로 인해 실익이 크지 않아서다. 의약품 리베이트 약가인하제처럼 담합 이전의 가격으로 환원할 수 있는 가격재결정 명령제도가 존재하지만 공정위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담합 피해' 손배소, 입증 어렵고 하세월···실익↓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가격담합 사건은 대부분 실제 시장가격보다 높은 가격을 형성하게 해 해당 제품을 구매한 소비자에게 금전적 피해를 준다는 문제가 있다. 기업 간 가격담합이 없었다면 보다 저렴하게 제품을 구매할 수 있었는데, 담합으로 인해 소비자가 과다한 비용을 지출하게 된다는 것이다.

가격담합 사건 적발 시 공정위의 제재 조치는 크게 시정조치와 과징금 부과로 나눠지는데, 공정위는 주로 과징금 부과를 선택하고 있다. 그런데 담합 적발 후 기업들은 과징금만 내고 알게 모르게 개별적으로 가격인상을 하는 경우가 상당수다. 담합을 근절하려는 가장 근본적인 취지가 담합으로 인한 소비자 피해를 막는 것인데 사실상 소비자 권리회복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원칙적으로 소비자들이 입은 손해는 민사상 손해배상 소송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공정거래법 전문가들은 민사소송으로 '소비자 보호'라는 목적을 달성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소송에 참여하는 소비자 수가 많고 담합이 오랜 기간 이뤄졌을수록 손해액을 산정하기가 쉽지 않아 재판이 길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대형로펌의 한 공정거래 분야 변호사는 "소비자들이 민사재판을 제기한다고 하더라도 재판이 단기간에 끝날 수 없고 1심에서 끝나지 않고 항소·상고까지 이어진다면 소비자들이 보상받을 액수에 비해 소비되는 시간과 노력의 비용이 더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담합 이전 가격 환원 가능 '가격재결정제도' 사문화
이에 공정거래법상 시정조치 중 담합으로 인상한 가격을 각 기업들이 원상회복하도록 하는 '독자적 가격재결정명령' 제도가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경우 의약품 리베이트 근절을 위해, 리베이트 행위가 적발된 품목의 약값을 인하하는 '약가인하제'를 시행하고 있다. 복지부는 지난해까지도 리베이트 사실이 적발된 제약회사에 대한 약가인하 행정처분을 집행하는 등 리베이트 약가인하제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담합에 대한 시정조치 중에도 이와 비슷한 독자적 가격재결정명령 제도를 두고 있지만, 리베이트 약가인하제와 달리 실제로 공정위에서 활용한 사례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담합 기간이 길 경우 그 사이 발생한 물가상승 등 경제 상황 변동으로 인해 적정한 가격의 재결정이 쉽지 않고 정부가 시장 가격에 개입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비판을 의식한 탓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소비자를 보호하고 국민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을 도모한다는 공정거래법의 입법 목적을 달성하고 즉각적인 피해자 권리회복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독자적 가격재결정 제도를 일부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황 고려대 교수는 "단기간 담합에 의해 가격이 인상됐고, 담합에 대한 명확한 증거가 있는 등 여러 조건이 갖춰졌을 때에는 정부가 시장기능에 개입하는 것을 최소화하면서 소비자들이 손실보상을 즉각 받을 수 있도록 가격재결정 제도를 고려할 수 있다"고 밝혔다.

공정거래 분야에 정통한 또 다른 변호사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민사재판 외에는 현재 활용되고 있는 또 다른 소비자 구제 수단이 마땅히 없는 상태"라며 "구체성, 타당성 등이 인정되는 엄격한 조건 하에서 일부 상황에서는 가격재결정 제도 등을 활용해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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