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한파에 중소건설사 임금체불 눈덩이…원·하청 "네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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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영 기자
입력 2023-03-01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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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법 재하도급 만연…책임 묻기 어려워

  • 작년 11월 기준 건설업 체불액 2639억원

  • 정부 "악의적 체불업주 구속수사 원칙"

서울 광진구 소재 한 건설 현장에 지난 23일 '체불 인건비를 즉시 지불하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사진=신진영 기자]

# 인력사무소를 운영하는 A씨는 건설 현장 임금 체불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하청 건설사 임금 체불이 석 달 동안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A씨가 인건비를 지급해야 할 곳은 재하청업체 소속 근로자들이다.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1월까지 하청업체에서 받지 못한 인건비는 2억원 넘는다. 결국 A씨는 사비를 털어 현장 근로자들에게 밀린 임금을 지급했다. A씨는 "회사를 운영한 지 5년 됐는데 근로자 임금 체불 때문에 집회까지 한 것은 처음"이라며 "체불된 임금 문제를 원청과 하청이 계속 미루고 있다"고 말했다.

부동산 경기 악화에 건설업 임금 체불 사례가 늘면서 고질적인 '재하청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건설 현장은 대개 발주자-원청-하청-재하청 구조로 이뤄져 있다. 현행법상 건설 현장엔 재하청을 둘 수 없는데 하청이 중간 수익을 가져가기 위해 재하청을 두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구조 때문에 건설 현장에서 임금 체불 문제가 발생했을 때 '책임 소재'를 묻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지난달 23일 서울 광진구 소재 한 건설 현장에서 만난 인력사무소 대표 A씨는 기자에게 "원청과 하청이 체불 임금에 대한 책임을 미루고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A씨에 따르면 원청은 하청에 "당초 공사 계약서상 지출해야 할 금액을 초과했으니 하청이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하청은 "원청이 하라는 대로 해서 나온 금액"이라며 맞서고 있다. 
 
1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22년 1월부터 11월까지 전체 산업 임금 체불액은 총 1조2202억원, 체불 인원은 21만6972명에 이른다. 업종별 임금 체불액은 제조업 다음으로 건설업이 21.6%로 2639억원에 달한다. 다른 건설 현장 관계자 B씨는 "건설경기가 좋지 않아지면서 중소 건설업체 위주로 임금 체불 사례가 늘어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A씨가 맡고 있는 건설 현장에서 하청업체 임금 체불은 지난해 10월부터 예고됐다. A씨가 제공한 임금 관련 결제 현황표에 따르면 당시 현장 근로자들이 소속된 재하청업체가 하청과 계약한 금액과 실제 입금된 금액은 7만5000원 차이가 났다. 그러다 한 달 뒤에는 차액이 860만원으로 더 커졌다. A씨는 12월과 올해 1월까지 하청업체에서 근로자들 임금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원청인 D사와 하청인 E사는 재하청업체 소속 근로자에 대한 임금 지불 책임을 서로 떠넘기고 있다. D사 대표는 "하청업체가 재하청업체에 돈을 못 준 것은 우리 책임이 아니다"고 했다. E사는 "(임금 체불 문제와 관련해) D사하고 정리할 게 있다"며 "건설업계 특성상 원도급사에서 돈을 받아야 도급업체가 (근로자에게) 돈을 줄 수 있지 않겠냐"고 되물었다. 

 
불법 재하도급 만연 속 업계 불황 '성큼'                                              

건설 현장의 임금 체불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구조적인 요인으로는 '불법 재하도급'을 들 수 있다.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발주자가 일반 종합건설업체에 도급을 맡기고, 도급업체는 전문건설업체(토목·철근 등 특정 공종 면허를 가진 건설업자)에 하도급을 주는 구조를 취한다. 하도급업체는 중간 수수료 목적으로 재하청을 둔다. 

김영덕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본부장은 "발주자에서 바로 수주한 원청은 하청에 제도적으로 대금을 주도록 의무화돼 있다"면서도 "'불법' 재하청업체로 내려가면서는 대금 지급 의무 사항이 없는 이유를 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부와 지자체가 불법 하도급 행위를 점검하고 찾아내는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대형 건설사에 비해 브랜드 인지도가 떨어지는 중소 건설사 상황도 임금 체불 문제에 한몫하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건설업계 불황으로 중소 건설사 줄도산 우려가 나오는 상황이다. 경기 지역에 있는 중소 건설사에 다니는 B씨는 "연말정산 금액이 나와서 다들 '13월의 월급'을 기다리는데 우리 회사는 이번 달 월급을 못 준다고 공지가 내려왔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노동법이 닿지 않는 유보 임금 관행                                                                 

건설 현장 임금 체불 문제의 근본 원인으로 속칭 '쓰메키리'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일본어인 쓰메키리는 손톱깎이를 말한다. 손톱이 잘라지듯 임금이 미뤄졌다는 의미로 '유보 임금'으로 통한다. 건설 현장에서 이 같은 유보 임금 관행이 임금 체불 문제를 만든다고 현장 관계자들은 분석한다.

A씨가 제공한 결제 내역서에 따르면 임금 체불로 문제가 된 현장 한 곳은 '당월 1일에서 말일까지 노무비'를 익월 25일에 지급하는 것으로, 다른 현장은 익월 말일에 결재하는 것으로 계약됐다. 노동 전문가들은 "유보 임금이란 관행이 건설 현장에서 사라지지 않는 이상 임금 체불 문제는 꾸준하게 나올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정부는 건설업계 임금 체불 문제에 엄정하게 대응할 방침이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현장 중심으로 임금 체불 예방 활동을 선제적으로 전개하고 발생할 체불에 대해선 감독행정 역량을 집중적으로 투입해 신속하게 청산할 것"이라며 "악의적인 체불 사업주는 구속수사를 원칙으로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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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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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 굥가카께서는 재벌 대기업의 영업사원이래서 아랫것들은 관심 1도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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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주 인간 쓰렉들이네
    지들은 건설해서 몇억씩 벌어먹으면서
    하류벌어먹고사는 인부들 인건비나. 띠어 먹으려는
    인간들은 다 징역보내세요
    정부는 이런인간들이 지들 해쳐먹는동안 일당 노동자와 인력시장만 죽어나가는데 왜 손을 안쓰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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