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기고] 안전‧환경을 핑계로 빗장을 닫아거는 E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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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우 기자
입력 2023-01-0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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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유럽연합(EU)이 2026년부터 본격적으로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이미 시행 중인 탄소배출권거래제(ETS)의 부담을 회피하려는 불순한 목적으로 생산 설비를 역외 국가로 이전하는 ‘탄소 누출’을 방지하는 것이 목적이다. 역외 국가에서 들여오는 모든 수입품에 ETS를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수입업자가 수입품의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만큼의 탄소배출권을 의무적으로 구매해야만 한다. 사실상 EU의 탄소배출권거래제를 전 지구적으로 확대하는 것이다.

EU가 겉으로 내세우는 명분은 나날이 심각해지고 있는 기후 위기의 극복이다. ‘탄소국경세’가 이산화탄소의 과다 배출을 줄이겠다는 EU의 절박한 노력에 전 세계가 동참하도록 요구하는 선의의 고육지책이라는 것이다. 지난 2년 동안 맹목적으로 ‘탄소중립’을 외쳐왔던 우리도 함부로 외면할 수 없는 난처한 주장이다. 

EU의 진짜 속내가 따로 있다는 지적도 있다. CBAM은 국제 사회에서 유럽의 이익을 지켜내기 위한 이기적인 ‘유럽판 IRA(인플레이션 감축법)’일 뿐이라는 것이다.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이 외치던 ‘미국 우선주의’와 조금도 다를 것이 없는 ‘유럽 고립주의’가 등장하고 있다는 뜻이다. 지난 30여 년 동안 전 세계를 뜨겁게 달궜던 세계화 대신 강력한 보호무역 체제가 고착화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더욱이 탄소국경세를 우선적으로 적용하겠다는 철강‧시멘트‧알루미늄‧비료는 엄청난 양의 이산화탄소 배출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대표적인 에너지 집약산업이다. 유럽이 일찌감치 역외로 밀어내버린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이제 와서 자신들도 감당하지 못했던 힘겨운 에너지 전환을 무차별적으로 강요하는 것은 후발 산업국을 두 번 죽이는 폭거일 수 있다. 

무거운 부담을 떠안게 된 우리나라 철강·알루미늄·시멘트·비료 업체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지난해 43억 달러의 철강 제품을 EU에 수출한 철강 산업계가 특히 그렇다. 탄소국경세에 의한 추가 부담이 연간 1억3500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5억 달러를 수출했던 알루미늄 산업도 전전긍긍하고 있다. 어쨌든 우리의 대(對) EU 수출이 크게 줄어들 것은 분명하다. 알루미늄 13.1%, 철강 12.3%, 시멘트·비료 각각 1.8%가 줄어든다는 것이 산업연구원의 분석이다. 적용 범위가 자동차·화학제품으로 확대되면 피해는 더욱 심각해진다.

상황은 만만치 않다. 단순히 탈원전‧탈석탄과 함께 태양광‧풍력‧수소의 확대만을 강조하는 비현실적인 탄소중립으로 간단하게 대응할 수 있는 문제가 절대 아니다. 더욱이 태양광‧풍력이 무(無)탄소 전원이라는 주장은 온전한 착각이다. 극심한 간헐성 극복에 엄청난 양의 이산화탄소를 내뿜는 LNG발전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친환경적 수소도 먼 미래의 꿈이다. 수소의 생산‧운반‧저장‧활용에 필요한 모든 기술이 여전히 걸음마 단계에 있다.

우리 기업의 입장이 난처하다. EU가 요구할 제품별 탄소 배출량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일부터 힘겹다. 생산 공정 자체가 세계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에서 수입하는 소재와 부품의 탄소 배출량을 구체적으로 파악하는 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혹시라도 전력 생산 등에서 발생하는 간접적 배출량까지 포함하게 되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소재‧공정의 개발도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산업화의 역사가 짧은 우리에게는 더욱 그렇다.

정부의 책임이 막중하다. 탄소국경세 수용에 필요한 행정적 지원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물론 탄소국경세를 무작정 거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탄소국경세는 온전하게 현재의 탄소 누출 방지를 위해 시행되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강조해야 한다. 오래 전에 자신들이 밀어냈던 굴뚝 산업을 다시 죽이겠다는 시도는 정의롭지 못한 것이다. 우리 기업들이 떠안게 될 탄소배출권 의무 구매에 대한 정당한 배려를 당당하게 요구해야 한다. 우리도 유럽 기업과 같은 원칙과 기준에 따라서 합리적인 탄소배출권을 ‘할당’ 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유럽의 이기적인 고립주의가 지구촌의 평화와 공존에 절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분명하게 지적해야 한다.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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