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종 칼럼] '재벌집' 드라마 덕에 …외국인들, '한국재벌'에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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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종 교수
입력 2023-01-0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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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종 교수]


 폭발적 인기로 장안의 화제를 뿌리던 JTBC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이 지난 연말 종영되었다. 총 16부의 마지막 회는 무려 27퍼센트에 달하는 높은 시청률을 보였다. 웹소설에 바탕을 둔 짜임새 있는 스토리, 출연진의 탄탄한 연기 등에 힘 입어 이룩한 성과였다. 한국 현대 경제사와 맥을 같이 하는 재벌의 내면과 재벌 가족의 명암을 조명해 많은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었다. 재미있는 것은 복잡하고 난해한 한국 재벌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해외에서 엄청난 인기를 거두고 있다는 점이다. 넷플릭스와 경쟁에 이겨 해외 독점 판권을 따낸 홍콩의 플랫폼 회사 뷰(Viu)는 현재 전세계 OTT를 통해 이를 상영하고 있는데 몇 달째 자사 드라마 부동의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지난달 싱가포르에서 있었던 드라마 홍보 기자 회견에는 아시아 6개국 48개 매체 기자들이 참석하여 성황을 이뤘다. 물론 ‘태양의 후예’ 등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국제적인 스타가 된 주연 송중기가 그 인기의 배경임은 부인할 수 없다. 기자 회견 역시 송중기가 직접 참석하여 더욱 관심을 모았다. 재벌 창업자 역을 연기한 이성민 등 다른 배우들의 실감 나는 연기 역시 해외에서 인기의 이유일 것이다. 게다가 ‘오징어 게임’ ‘킹덤’ 등을 통해 한국 드라마는 세계적인 인기의 보증수표라는 것이 벌써 증명된 터이다. 넷플릭스, 디즈니 플러스 등 전 세계의 OTT 플랫폼들이 한국 드라마 판권 확보를 위해 제작 전부터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형국이다.

 ‘재벌집’이 해외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또 하나의 이유를 들라면 한국 재벌에 대한 외국인들의 관심일 것이다. 한국 경제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한 한국 재벌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이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아시아 개발도상국의 경우는 한국 재벌의 성장 과정 이면을 지켜보며 이를 자국의 경제 발전에 참고하고자 하는 의도도 있다. 과연 한국 재벌의 어떤 특징이 한국 경제 발전과 연결되는지 알고 싶은 것은 당연한 궁금증이다. 또한 재벌을 키우고 운영해온 창업주들과 그 가족들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어한다.

 이러한 궁금증에 대해 이 드라마는 나름대로 충분한 설명을 한다. 먼저 한국의 재벌들은 정치와 밀착해 정치권에 충성하고 그 대가로 각종 혜택을 받아 성장한 것으로 묘사된다. 정경유착과 아울러 검찰, 언론 등과도 때로는 협조하고 야합하며 기회를 잡고 위기를 헤쳐 나간다. 재벌 창업주나 가족들은 미래에 대한 비전과 성공을 향한 집념으로 무장되어 있지만 노동자나 부하 직원들에게는 피도 눈물도 없는 비정한 지배 계급으로 그려진다. 이야기의 중심인 ‘순양’그룹 창업주 진양철 회장의 캐릭터는 한국의 대표적인 재벌 경영인인 이병철, 이건희, 정주영 세 사람을 모아 놓은 듯한 느낌이 든다. 주위 모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반도체 사업을 밀어붙이는 장면에서는 이병철 회장을, 첫 사업인 자동차 수리 사업을 회상하는 장면에서는 정주영 회장을 떠올리게 된다. 전자부터, 물산, 금융, 호텔, 유통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서 문어발식 경영을 하는 데서는 소위 말하는 ‘삼성 공화국’의 모습이 보이고 회사 승계를 위해 자식들끼리 암투를 벌이는 데서는 현대그룹의 왕자의 난이 생각난다.

 또 한 가지는 한국의 재벌이 지난 수십년간 국제 정세의 엄청난 파고에서 생존하고 번영하기 위해 어떤 피나는 노력을 했는지 보여준다. 98년 외환 위기를 겪으며 정부와 IMF의 강압 속에 구조조정을 단행했고 이 과정에서 많은 고통이 따랐으며 2000년대 닷컴과 디지털 변화의 와중에서 이를 때로는 기회로 때로는 위기로 맞게 된 모습을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한국 경제의 중심이 중후장대한 중화학공업에서 전자 등 첨단 산업과 서비스 분야로 변신하는 모습도 실감 나게 보여준다.

 격변하는 세계 경제와 기술 변화 와중에서 나름대로 버티고 성장해온 한국 경제 및 재벌의 모습은 이 드라마를 시청하는 외국인들에게는 인상적인 장면으로 남게 될 것이다. 특히 크지 않은 규모에 상당 부분 개방된 한국 경제가 외부 충격에 쉽게 노출되어 위기를 겪고 이를 극복하는 과정은 한국의 강점으로 부각될 것이다. 아시아 외환 위기와 글로벌 금융 위기를 겪으면서 한층 체질이 강화되고 업그레이드 된 한국 재벌의 모습도 기억에 남을 것이다.

 한 가지 우려되는 점은 이 드라마에서 묘사된 추악한 재벌가의 모습이다. 경영권을 위해 식구끼리도 배반하고 음해하는 모습이나 노동자를 착취하는 비인간적인 모습은 물론 드라마의 극적 효과를 위한 과장인 경우가 많다. 설사 이것이 사실에 가깝다 해도 이 드라마의 배경이 되는 80, 90년대에나 가능한 이야기이지 21세기인 오늘날의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이 드라마가 해외에서 인기가 높을수록 한국을 잘 모르는 외국인들은 여기에 그려진 추악한 재벌들의 모습이 모두 사실인 것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반기업, 반재벌 정서가 만연한 한국의 현실이 외국으로도 확산될까 내심 걱정이 된다.




이병종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언론정보학 박사 ▷AP통신 특파원 ▷뉴스위크 한국지국장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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