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수교 30주년 특별 기고] 한·중 고등교육 협력의 현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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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제국 동서대학교 총장
입력 2022-09-14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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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올해는 1992년 8월 24일 한국과 중국이 수교한 지 30년이 되는 해입니다. '삼십이립(三十而立)'이라는 말이 있듯이 한·중 양국 관계의 우호와 협력을 다져야 하는 시기가 됐습니다. 한국과 중국 수교 30주년을 맞아 지난 시절을 되돌아보며 앞으로 뜻을 함께하자는 취지로 각계 저명인사의 깊이 있는 견해가 담긴 글을 본지에 싣게 되었습니다. 지난 30년은 한·중 양국이 어려움을 함께 극복해나가고 경제 파트너로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는 등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물론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에 적지 않은 어려움도 있었지만 한국과 중국은 함께 많은 역경을 이겨왔습니다. 한·중 관계는 이제 새로운 기점에 서 있습니다. 

이번 기고 릴레이에는 한·중 수교 과정의 경험담부터 한·중 교류를 위해 현장에서 땀 흘린 여러분들의 이야기까지, 양국 수교 30주년의 역사가 생생히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다가오는 30년에 대한 희망과 기대가 가득히 담겨있습니다. ​한국의 북방외교와 중국의 개혁개방 그리고 세계사의 변화에 순응하는 한·중 수교는 우리들의 소중한 역사이기에 독자들에게 이 글이 한·중 관계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장제국 동서대학교 총장[사진=한·중수교 30주년 기념사업준비위원회]

한·중 수교는 필자에게 한국대학 중 최초로 중국 현지에 한·중 합작대학 설립이라는 선물을 안겨줬다. 한·중 수교를 하던 1992년에 필자는 미국 뉴욕주에 소재한 한 로스쿨에서 유학 중이었다. 당시만 해도 한국인은 중국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다. 국교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냉전 시기라 중국 사람을 제3국에서 만나 친분을 쌓는다는 것은 매우 불편한 일이었다. 필자가 다니던 로스쿨에도 중국에서 유학하러 온 학생들이 제법 있었지만, 한국 유학생들은 대개 그들을 애써 무관심하게 대했다.

새 학기에 등교를 하니 옆자리에 못 보던 동양 사람이 한 명 앉아있었다. 궁금해서 어디서 왔냐고 물어보니 중국에서 유학하러 온 오한동(吳漢東)이라고 했다. 어렴풋한 기억으로는 중국 재경부에서 지원하는 프로그램으로 유학 오게 되었다고 했던 것 같다. 난생처음 중국인과 대화를 나누어 보니 신기하기는 했지만 조금 어색함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와 급속도로 친해졌다. 방과 후 도서관에서 함께 공부하기도 했고, 배가 출출 할 때는 근처의 중국 식당에서 짜장면을 사 먹기도 했다. 두 사람 모두 생소하고 어려운 미국의 법률을 공부하고 있다 보니 뭔가 모를 ‘동병상련(同病相憐)’ 같은 느낌을 가졌던 것 같다. 그러던 중, 나는 1993년 5월 먼저 졸업을 하게 됐고 그 후 그와의 소식은 두절됐다.

그 후 필자는 미국과 일본 등에서의 오랜 해외 생활을 마치고 마침내 2003년 귀국했다. 그간 중국은 눈부신 경제발전을 거듭했고, 당시 한국에서 중국 관심은 매우 높아지고 있었다. 대학 입시에서도 중국어과를 비롯한 중국 관련학과는 매년 인기가 치솟고 있었다. 한국 기업들의 중국진출이 늘어나다 보니 학생들의 중국에 대한 학습 열기가 고조되고 있었다. 일부 재학생은 휴학하고 중국으로 건너가 현지 경험을 하며 공부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었다. 또한, 중국의 한국 관심도 매우 높아져 한국으로 유학하러 오려는 중국인 수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었다.

대학의 총장으로서 날로 증가하는 중국을 향한 관심과 한국 유학에 대한 수요를 모르는 체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 알고 지내던 주한중국대사관의 교육담당 참사관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중국 대학을 대거 초청해서 코엑스에서 ‘중국 대학 박람회’를 개최하니 보러 오라는 것이었다. 박람회에 가보니 수많은 대학이 부스를 설치해 놓고 자신의 대학을 설명하고 있었다. 참사관은 나를 ‘중남재경정법대’ 부스로 안내하고는 그 대학에서 나와 있던 부총장을 소개해 주었다. 우리 두 사람은 금방 친하게 되어 양 대학 간 자매협정을 맺기로 했다.

한 달 후에 필자는 학교가 있는 중국 우한으로 날아갔다. 잘 정돈되고 아름다운 캠퍼스 투어를 마치고 접견실에서 차 한잔을 마시며 그 대학 총장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문이 열리더니 총장이 들어왔다. 그 총장은 잠시 필자를 쳐다보더니 “혹시 미국 로스쿨에서 유학한 적이 있지 않나”고 대뜸 물었다. 자세히 보니 이내 그가 15년 전 미국에서 함께 공부했던 바로 오한동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둘은 너무 반가워 서로 얼싸안고 재회의 기쁨을 나누었다. 서로 연락이 두절 된 지 15년 만에, 그것도 그 넓고 넓은 중국 천지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것이다. 필자는 후에 ‘13억분의 1의 기적’이라고 명명했는데 정말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렇게 해서 서로 의기투합해서 학내에 한·중 합작으로 단과대학을 설립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중국 교육부에 학교설립 비준 신청한 지 거의 5년 만인 2011년 드디어 중국 정부의 허가가 나왔다. 발표가 있던 날 국제전화를 하며 서로 축하했다. 평소 조용한 성격의 친구가 크게 웃던 기억이 아직도 기억에 선하다. 우리대학 특화분야인 영화과와 디지털콘텐츠과 등 두개 학과 입학정원 각 150명, 계 300명을 모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입학생은 중국의 대학입학시험인 전국통일고시(全國統一考試)에 합격해야 입학자격이 주어진다. 그러니 매우 우수한 학생을 선발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된 것이다. 운영형식은 첫 2년은 중국 현지서 공부하고 3학년 과정이 되면 학생들이 부산으로 건너와 전공 심화(深化) 과정을 이수하고 4학년이 되면 다시 우한으로 돌아가 과정을 마치면 한·중 공동학위가 나오는 것이다. 이로써 동서대학은 한국대학 최초로 중국 현지에 한·중합작 단과대학인 ‘한중뉴미디어대학’을 설립하게 되었다. 이는 ‘한국대학 최초’라는 의미도 크지만, 오랜 우정의 결실이라는 점에서 매우 뜻 깊은 일이라 하겠다. 그 우정은 그가 정년퇴직하며 소개해 준 양찬밍(陽燦明) 현 중남재정정법대 총장으로 이어졌다. 한·중 우정의 산물이 대를 이어 꽃을 피우고 있는 것이다.

필자의 이러한 경험이 다음 세대에도 이어지면 좋겠다. 사람은 만나야 우정이 싹트고 신뢰(信賴) 관계로 발전한다. 한·중 수교 30주년을 맞아 양국의 젊은이가 서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만들어 지면 좋겠다. 한·중판 에라스뮈스 제도 설립, 한·중 대학생 국제기술봉사단 창설 등 보다 체계적인 청년교류의 제도적 장치를 만들자는 제안을 하고 싶다. 한·중 대학생 간의 우정이 한껏 피어나는 계기가 되는 한·중 30주년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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