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위기의 K-민주주의 '숨은 코드'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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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형 정치부 부장
입력 2022-09-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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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증오·혐오 우리 일상 지배···我是他非·내로남불

  • 이념부터 젠더·지역 갈등···진짜 문제는 '甲乙'

  • MZ세대 이준석 사태 이면엔 '한국식 서열주의'

  • 민본에 결핍된 국민···'정도전·정조·광해'에 열광

  • 甲乙 관계 타파 없는 개혁 '정치적 사기'에 불과

한덕수 국무총리가 지난 6월 10일 서울시 중구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에서 열린 제35주년 6·10민주항쟁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이기는 자만 살아남는 활극(活劇)···.' 증오와 혐오가 우리 일상을 지배한다. 내 편이 아닌 이들은 적이다.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는 '아시타비(我是他非)'의 일상화다. 톨레랑스(관용)는 없다. 공존의 미학도 없다. 그 자리엔 선택적 정의를 앞세운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 들어섰다. 확증편향으로 가득한 광기만 판친다. 
 
퇴행을 일삼는 이들은 '적대적 그물망'을 앞세워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확신범이다. 그 적대적 그물망 한가운데엔 보혁(이념)이 있다. 영호남(지역)도 관통한다. 젠더(성)도 상존한다. 영웅사관에 익숙한 우리는 저마다의 히어로를 앞세워 매 순간 격렬한 대립을 일삼는다. 마치 '현대판 검투사'처럼. 서기 325년(콘스탄티누스 시대) 법으로 금지된 고대 로마 검투사가 약 1700년 만에 부활한 셈이다. 
 
현대판 검투사 대결의 출발은 '적에 대한 폭력'이다. 상대가 완전히 나가떨어질 때까지 벌이는 '데스 매치'를 서슴지 않는다. 특히 피아(彼我) 중 약자를 발견하는 순간 집단 린치를 가한다. 나보다 낮은 계급이면 여지없이 짓밟는다. 광란의 폭주다. 그 광기의 본질은 자유주의 결함에서 파생한 파시즘이다. 역사학자 임지현은 이를 '은폐된 파시즘'이라고 했다. 우리 안의 파시즘이 일상을 파고든 사이 한국의 민주주의는 멈췄다.
 
◆현대판 관존민비···종말론적 대결 부른다
 
"진짜 문제는 갑을(甲乙) 관계야." 힘의 균형을 잃는 순간 극단적 전체주의가 파생한다. 폭력을 앞세워 복종을 강요한다. 내가 너보다 낫다는 '우월주의'다. 현대판 관존민비(官尊民卑)다. 이 악한 고리를 끊지 않는 한 정치는 끝없는 갑이 되기 위한 투쟁으로 전락한다. 

한국 사회에서 갑을 관계는 비단 '권력의 힘'인 계급에만 있지 않다. 한국식 서열주의인 나이·학번·기수 등이 갑을 관계를 형성한다. 역대 최연소(36세) 당대표 이준석(국민의힘)이야말로 '한국판 스키피오'가 아닌가. 고대 로마 시절 최연소 집정관(37세)을 지낸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는 포에니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지만 원로원들의 견제로 정계에서 배제됐다.

MZ세대 표상인 이 전 대표도 윤석열 정부 출범 59일 만에 실각됐다. 개인 성 비위 의혹의 진실 여부와 관계없이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핵심 관계자)의 찍어내기 이면엔 '어디 나이도 어린 게···'라는 여의도 꼰대 문화가 없다고 누가 자신하겠나. 서열주의 후광은 눈이 부시다 못해 찬란하다. 한국 사회에선 장유유서(長幼有序)가 모든 질서를 창조한다. 

어디 이뿐인가. 젠더 문제까지 결부되면 '을에 대한 폭력'은 최고조에 달한다.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공동 비상대책위원장을 향한 저주에 가까운 폭언엔 '남성 식민지 문화'가 있다. 17년 전(2005년 3월 2일) 호주제는 폐지됐지만 우리 아이들은 호주제 승계(아들·손자→미혼의 딸→아내→어머니→며느리) 순서를 담은 동요 <개구리>의 가사 '아들·손자·며느리 다 모여서'를 오늘도 읊는다.

◆노자 사상과 정도전 리더십···"민본 주체화"

무릇 정치란 한 시대 가치를 배분하는 일이다. 그래서 좋은 지도자란 '상선약수(上善若水)'와 같아야 한다. 노자는 <도덕경(道德經)>을 통해 최상의 선을 물에 비유했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공평'이다. 물을 수평을 찾아 끊임없이 흐른다. 수평은 곧 공평이다. 둘째 '겸손'이다. 물은 반드시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세상의 낮은 곳을 향해 간다. 마지막은 '본질'이다. 물은 어떤 형태로 흐르든 본질을 잃지 않는다.

정치의 최종 지향점은 '민유방본(民惟邦本)'이다. 중국 유교경전인 <서경(書經)> '하서(夏書)'에 나오는 이 말은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라는 뜻이다. 관존민비 대척점인 민본의 정치적 주체화다.

국민은 민유방본 가치에 결핍됐다. 2012년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신드롬을 기억하는가. 광해는 대동법에 반대하는 신하들을 향해 "땅 열 마지기를 가진 이에게 쌀 열 섬을 받고 땅 한 마지기를 가진 이에게 쌀 한 섬을 받겠다는 게 그게 차별이요?"라고 일갈했다. 광해의 '민본 우선주의'에 관객들은 열광했다. 1232만4062명(지난 1일 기준)이 영화관을 찾았다.
 
사극 드라마 <정도전>에서 주인공은 "군왕이 시키는 대로만 하는 자는 밥버러지일 뿐 제대로 된 신하라 할 수 없다"고 했다. 현실에선 밥버러지가 활개 친다. 여당은 과거 청와대(현 대통령실) 하도급 기관으로, 야당은 당대표의 종속물로 전락하지 않았나. 
 
조선시대 정조의 암살 위협을 다룬 영화 <역린>도 빼놓을 수 없다. 정조는 "나라에는 국법이 있사옵니다. 사사로이 기울지 않아야 하는 것이 제 자리"라고 했다. 사사로운 권력에 도취된 '윤핵관'과 팬덤 정치 중심에 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강성 지지층 '개딸(개혁의 딸)'에게 던지는 메시지다. 

답은 간명하다. 문제는 이념이 아니다. 지역도 아니다. 갑을 관계가 문제다. 정치 혁신을 좌우 이념에만 가두는 것은 하수다. 반윤(반윤석열)과 반명(반이재명) 등 계파 문제로 치환하는 것도 정치적 사기다. 여야 정치인들이여, 갑을 관계 청산에 나서시라. 한국 정치의 진짜 문제는 좌우가 아닌 위아래다. 헛다리를 짚는 순간, 한국 정치는 적군과 아군의 종말론적 대결을 일삼는 '정치의 종교화' 굴레에 갇힌다.
 

[최신형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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