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공멸하는 지름길 (feat. 둔촌주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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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연 기자
입력 2022-08-0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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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사업 현장. [사진=연합뉴스]

"분상제 아래서도 3.3㎡당 4000만원 이상 가능하다→둔촌주공은 지분제 계약이라 공사비를 중간에 정산해줄 의무가 없다→공사 계약이 무효라는 것은 법원도 인정한 사실이다→시공단이 이미 법적으로 정리된 상가문제를 걸림돌인 양 내세우는 것은 아파트 조합원과 상가 조합원들을 갈라치기 하려는 것이다. 상가 조합원도 똑같은 둔촌주공 조합원이다→조합원이 걱정한 사업비 7000억원의 만기상환 방법이 마련됐다. 더이상 시공사의 대위변제 및 구상권 취득, 가압류, 경매 등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오늘부로 조합장직을 사임한다. 조합장 사임과 자문위원 해촉을 계기로 시공단이 사업정상화에 박차를 가해주길 바란다."
 
지난 4월 둔촌주공 재건축 공사가 중단된 이후 이달 1일 공사재개를 위해 '조합정상화를 위한 위원회' 구성까지··· 약 4개월간 조합이 내보낸 대외 메시지를 의식의 흐름 순서대로 정리해 봤다.

전임 집행부의 비리와 부패를 꼬집으며 조합원들의 수호천사로 등판했던 현 조합 집행부가 더 악질로 평가되기까지는 채 1년이 걸리지 않았다. 진심이 통하지 않는 말들은 사람에게 닿질 못한다. 설득에 실패한 메시지의 중심에는 둔촌주공의 모든 법적 자문을 총괄한다는 자문위원 K가 있다.
 
둔촌주공 조합원 약 6100명을 대신해 부당한 시공사의 갑질과 끝까지 싸우겠다는 K. 그가 그동안 사용한 언어를 곱씹어 보니 유독 '정당성', '공정', '정의'를 내세우는 말이 많았다. 법의 심판, 절차의 정당성, 시공사의 횡포, 우리는 모두 다 평등한 조합원, 대의를 위한 사퇴 등이 대표적이다. 메시지를 요약하면 '시공단인 대기업은 조합의 땅을 침탈하려는 약탈자, 조합은 힘없는 개인. 똘똘 뭉쳐서 싸우면 이긴다'다. 법원이 판단한 정의를 대기업이 힘의 논리로 뒤집으려 한다는 그의 메시지는 생업이 바쁜 우매한 대중을 선동하기 충분했다.
 
물론 그의 논리가 맞을 수도 있다. 공사비 증액 계약이 절차상 하자가 있어 무효이고, PM사와 계약을 맺은 주체(상가위원회)가 대표 자격을 상실했기 때문에 PM사의 유치권 주장은 법적으로 성립되지 않을 수도 있다. 법정으로 가면 조합이 유리할 수도 있다. 서울시와 국토부도 주민의 편일 것이다. 그러나 정의에도 대가는 따른다. 그 비용은 조합원의 몫이다. 둔촌주공 시공사업단이 약 반년 동안 공사 중단에 따른 손실비용을 추산한 결과 약 1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미 투입된 공사비 1조7000억원에 대한 금융비용과 타워크레인 등 유휴장비 임대료, 현장관리비, 물가상승분 등이 포함됐다. 이에 따라 공사비는 기존 3조2000억원에서 약 31% 증가한 4조2000억원이 됐다. 조합원 1인당 분담할 추가분담금은 1억원이 더 늘었다.
 
숫자 안의 현실은 더 참혹하다. 둔촌주공 조합 사무실에는 매일 수십명의 조합원들이 진을 치고 서로의 울분을 토한다. 매일 출근 도장을 찍다시피하는 60대 조합원 A씨는 "둔촌주공에서 학교도 다니고, 결혼도 하고, 아기도 낳고 40년을 살았다"면서 "매일 들여다보면 좀 나아질까 싶어 차마 집으로 발길이 안 떨어진다"고 했다. 50대 B씨는 "매월 이자가 200만원씩 나가는 통에 허리가 아픈 남편이 일용직을 나가기 시작했다"면서 "그나마 우리는 이주할 때 집을 사서 다행인데 전세로 간 이웃들은 전세금이 올라 살던 집에서 내쫓긴 경우도 많다"고 했다.

다시 K에게 묻는다. 그가 추구한 절차의 정당성, 사업의 정의를 추구한 결과가 이런 모습이었을까. 재건축 사업에서는 달콤한 말들로 선량한 사람들을 현혹하는 사이비 수호천사들이 너무나 많다. 언제나 그렇듯, 지옥으로 가는 길은 늘 선의로 포장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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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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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정과 상식 찾고 법 좋아한다라... 딱 굥정 윤석열 선생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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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멸굥 둔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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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 내용에 공감 합니다.
    조합장이 법을 좋아하고 경제적 이득의 득실관계를 빨리 파악 못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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