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없는 삶] "바쁠 때 더 일하자"는 尹정부...'과로사회'로 돌아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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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아라 기자
입력 2022-07-14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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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 52시간제 '월 단위'로 관리...노동시간 유연화 시동

직장인들이 야근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모바일 게임회사에 다니는 직장인 A씨는 어제도 야근을 했다. A씨는 벌써 나흘째 아침 9시에 출근해 저녁 8시까지 꼬박 11시간을 일했다. 프로젝트 마감을 앞둔 A씨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이번 주만 고생하면 다음 주부터는 6시 칼퇴근이 가능하겠지"라고 되새긴다. 

윤석열 정부가 '주 52시간제'를 수술대에 올렸다. 현재 '주 단위'로 묶여 있는 연장근로 관리 단위를 '월 단위'로 확대하겠다는 게 핵심 골자다. 업무량이 많을 때는 몰아서 더 일하고, 적을 때는 덜 일하자는 취지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전체 근로 시간을 단축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고 본다"며 "노동시간에 유연성을 줘 노사가 선택적으로 근무 시간을 조정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동시간의 유연함'을 강조한 정부와 달리 이해관계에 따라 다른 해석이 나온다. 사용자 측은 반기는 분위기다. 52시간제를 유연하게 활용하면 기업과 개인 모두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노동계는 거세게 반발한다. 말로만 '노동시장 유연화'를 외칠 뿐 오히려 '과로사회 복귀'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고용부 "실제 연장근로 시간 한 달에 10시간 정도"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달 23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가진 '노동시장 개혁 추진 방향' 브리핑에서 "현재 '주 단위'로 관리하는 연장근로 시간을 노사 합의로 '월 단위'로 관리할 수 있게 하는 등 합리적인 총량 관리 단위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일주일에 12시간까지만 연장근로를 할 수 있는 지금 체계에서 벗어나 한 달로 관리 단위를 대폭 확대하겠다는 얘기다.

산술적으로만 계산하면 한 달에 근무하는 총량(기본근로 40시간+연장근로 52시간)은 같다. 그러나 업무가 몰릴 때 더 일하고, 업무량이 적을 때는 덜 일하는 시스템을 갖추겠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계산대로라면 '주 92시간 근로 시대'가 열린다는 주장도 있다. 근로기준법을 보면 현재 일주일에 최대로 연장할 수 있는 근로 시간은 12시간이다. 여기에 한 달(평균 4.3주)을 곱하면 51.6시간, 반올림하면 52시간이 된다. 월 연장근로 시간(52시간)을 한 주에 모두 몰아 쓴다고 가정하면 일주일에 최대 92시간(기본근로 40시간+연장근로 52시간)까지 근무할 수 있다. 이렇게 될 경우 이미 법적으로 가능한 연장근로 시간을 다 소진했기 때문에 이후에는 정시퇴근이 가능하다.

그러나 고용부는 '주 92시간 근로'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근로일 사이에 11시간 연속 휴식 등 건강권 보호조치를 반드시 병행해야 해 특정 주에 무제한 근로가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또한 실제 연장근로 시간을 보면 평균적으로 한 달에 10시간 정도에 불과해 법적 연장근로 시간(52시간)을 모두 채우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고용부 설명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실제 기업에서 초과 근로하는 것을 보면 평균 한 달에 10시간, 많은 경우 20~25시간에 불과하다"며 "월 단위 연장근로의 총량을 특정 주에 모두 몰아서 사용하는 건 매우 극단적이고 예외적인 경우"라고 말했다.
 
노동계 "포괄임금제 유지하는데 노동유연화까지?"
그러나 노동계는 노동자의 과도한 업무시간을 눈감아주는 포괄임금제 등은 손보지 않은 채 '노동시간 유연화'만 얘기한다고 지적한다.

이미 일부 사업장에서는 초과 노동시간을 세세하게 따지지 않고 하나의 급여로 일괄 지급하는 '포괄임금제'가 시행 중이다. 근로기준법을 보면 연장·휴일·야간근로는 통상임금의 1.5배를 가산해 지급해야 한다. 그러나 사무직이나 연구직 등 연장근로가 잦은 사업장에서는 암묵적으로 포괄임금제를 시행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실제 노동 현장에서는 법 규정에서 훨씬 벗어난 만큼의 일을 시키지만, 근로자 손에 쥐여지는 돈은 적은 게 현실이다. 그간 노동계에서는 일한 만큼 정당한 대가가 지불되지 않고, 되레 장시간 노동만 조장하는 포괄임금제 폐지가 시급하다는 주장이 계속됐다. 

그러나 정부는 노동계 목소리는 외면한 채 포괄임금제도를 유지하면서 노동시간 유연화 가능성까지 열어뒀다. 두 제도의 공존이 현실화할 경우 업무는 가중되지만, 임금은 그대로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미 장시간 노동 만연한데 더 하라고?...방송업계 '울상'
방송업계에서도 벌써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짙다. 현재 방송과 디자인, 연구개발 등 창작에서는 유연근로제의 일종인 선택적근로시간제를 운영 중이다. 이는 1개월 정산 기간 내 일주일 평균 52시간(기본 40시간+연장근로 12시간)을 초과하지 않은 범위에서 근로자가 근무 시간을 자유롭게 조정하는 제도다.

유연근무제를 운영하는 업계는 대부분 업무와 휴식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노동 현장인데, 여기에 유연화까지 더해지면 근로자들의 업무가 가중될 것으로 우려된다. 윤성준 한국공인노무사회 이사는 "선택적 근로시간제는 사실상 근로 시간에 한도 제한이 전혀 없어 일주일에 120시간도 근무할 수 있다"며 "극단적인 문제에 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현재 방송국에서 연출기획을 담당하는 장모씨(남·33세)는 "월 단위로 근로 시간 범위가 넓어지는 순간부터 의미 없는 근로 시간이 늘어난다"며 "지금은 주 단위로 운영되고 있어 그나마 스케줄 관리가 되는데, 한 달 단위로 바뀌면 우리처럼 재량 근무하는 업종은 오히려 복잡해진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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