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조유나양 사건과 일물일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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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완 기자
입력 2022-07-04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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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佛 플로베르 "상황에 맞는 단어는 하나뿐"

  • 조양 의지 상관없이 극단적 선택 강요받아

  • 법원 "동반자살은 부모 언어, 명백한 살인"

실종된 조유나 가족 차량 인양 [사진=연합뉴스]

19세기 프랑스 작가 귀스타브 플로베르는 '일물일어설(一物一語說)'을 주장했다. 하나의 사물이나 상황에 맞는 단어는 딱 하나뿐이란 뜻이다. 다시 말해 비슷한 뜻이라도 단어가 주는 느낌이 조금씩 다른 만큼 명확하게 구분해 사용해야 한단 의미다. 하지만 최근 완도에서 실종된 뒤 숨진 채 발견된 조유나양(10) 사망을 두고선 동반 자살, 극단적 선택 등 여러 표현이 오가고 있다.

조양과 그의 부모는 지난달 29일 낮 12시 20분께 전남 완도군 바닷속 차량 안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차량 운전석엔 조양 아버지가, 뒷좌석에는 조양 어머니와 조양이 나란히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조양 부모가 암호화폐 투자로 큰 손실을 본 정황과 실종 직전 수면제와 방파제, 추락 등을 검색한 사실은 극단적 선택을 가리켰다. 하지만 조양은 앞으로 자신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 채 극단적 선택을 강요받았다. 조양 가족의 모습이 찍힌 폐쇄회로(CC)TV 화면을 보면 조양은 깊은 잠에 빠진 듯 양팔을 축 늘어트린 채 어머니 등에 업혀 있었다. 그게 조양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2000년부터 2019년까지 가족을 살해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미수에 그친 사건은 총 426건. 이 중 조양의 사례처럼 자녀가 피해자인 경우는 247건에 달했다. 이는 엄연히 '자녀 살해 후 극단적 선택'이자 가장 악한 아동학대 범죄다. 하지만 우린 이런 비극을 두고 흔히 '동반 자살'로 표현해 왔다. 과거 한 언론에서도 40대 부부가 10살 자녀와 함께 숨진 사건을 두고 '일가족 동반 자살'로 보도했다. 그렇게 우린 "부모가 오죽했으면"이란 선의의 말로 자녀 살해 후 극단 선택을 동반 자살로 포장해 왔다.

지금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조양 사망 사건이 '가족 동반 자살', '일가족 극단 선택'이란 용어로 다뤄지고 있다.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조양 사망 사건을 두고 동반 자살로 규정해 문제가 됐다. 박 전 위원장은 조양 가족 사망 사건에 안타까움을 표현하면서 "대한민국은 지난 17년 동안 OECD 자살률 1위 국가다. 생활고를 비관한 가족의 동반 자살도 한두 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지난 2020년 울산지방법원 형사11부(박주영 부장판사)는 어린 자녀를 살해한 뒤 극단 선택을 했다 살아남은 40대 여성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다. 당시 판결문에는 해당 사건을 동반 자살로 표현해선 안 되는 이유가 담겨 있다. "우리는 살해된 아이들의 진술을 들을 수 없다. 동반 자살은 가해 부모의 언어다. 아이의 언어로 말한다면 피살이다. 법의 언어로 말하더라도 명백한 살인이다." 일물일어설대로 하나의 사물이나 상황에 맞는 단어는 딱 하나뿐이다. 조양이 살해당한 사건을 동반 자살로 퉁쳐선 안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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