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구 잠실의 한 재건축 아파트 단지 [사진=연합뉴스]

서울 둔촌주공재건축아파트 조합이 결국 조합장 해임을 추진하고 나섰다. 기존 조합이 조합원들의 이권을 대변할 능력을 상실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최근 재정비 사업장에는 이와 같은 조합장 교체 바람이 거세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대표적인 부동산 투자처로 각광받으면서 관련 시장에 MZ세대들이 적극 유입된 탓이다. 준공 30년 이상 '낡은 아파트' 조합원들의 연령대가 낮아지면서 제왕적 위치로 군림하던 조합장들의 위세도 과거와 달라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공사재개 의지 없는 조합장, 존재 이유 없다"...조합장 해임 절차 밟는 둔촌주공 조합원들
 
28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둔촌주공아파트주택재건축정비사업조합 정상화위원회(이하 정상화위)는 기존 김현철 조합장을 비롯해 현 집행부를 해임하는 내용의 해임발의서를 징구받아 총회 소집 요건을 충족했다. 집행부를 해임하는 총회를 소집하려면 둔촌주공 전체 조합원(6123명) 10분의1 이상의 해임발의서가 접수돼야 한다.
 
정상화위 관계자는 "지난 8일 집행부 교체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힌 후 약 20일간 10%가 넘는 조합원들이 조합장 해임에 찬성해 총회를 개최할 수 있는 요건이 갖춰졌다"면서 "사업비 대출, 공사재개 등 일정을 고려해 8월께 총회를 개최하고 9월에는 새 집행부를 꾸려 사업을 정상화하겠다"고 말했다.
 
총회 소집 요건은 갖췄지만 기존 집행부가 해임되려면 8월 총회에서 전체 조합원 과반수 출석, 참석조합원 과반수의 찬성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정상화위는 시공사업단과 협의체를 구성해 공사재개 등의 협의안을 도출, 조합원들의 지지를 얻을 계획이다. 계획대로 진행되면 오는 9월 새 집행부 구성, 11월께에는 본격적으로 공사가 재개될 것으로 보인다. 이후 12월 조합원 분양을 거쳐 내년 1월께에는 일반청약자를 대상으로 한 분양도 모두 끝낼 예정이다. 
 
다만 새 조합이 선출되더라도 풀어야 할 갈등은 산적해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분양가상한제 개편으로 인한 분양가 인상폭이 조합원들의 기대에 못 미친다는 점이다. 정부는 이달 분양가상한제 적용 대상인 민간 정비사업의 분양가에 기본형 건축비 상승액과 세입자 주거이전비, 금융비, 총회 운영비 등 제반 비용을 포함하도록 했다. 

새 분양가를 적용하면 둔촌주공 아파트 일반 분양가는 기존 3.3㎡(평)당 3550만원(2019년 조합 책정)에서 71만원(평균인상률 2% 적용) 올라 3621만원이 된다. 전용 84㎡ 기준으로 분양가가 12억700만원에서 12억3114만원으로 총 2414만원 오른 셈이다. 이는 조합원들이 요구하는 3.3㎡당 4000만원에 크게 못 미친다. 익명을 요구한 조합원은 "일반분양가가 3.3㎡당 4000만원 이상은 돼야 무이자에서 유이자로 전환된 이주비 대출을 일정부분 상쇄할 수 있다"면서 "가구당 부담하는 대출이자만 월 100만원이 넘어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공사중단이 장기화되면서 시공사업단에게 물어야 할 추가 제반비용도 문제다. 시공사업단은 공사 중단 기간 중 발생하는 타워크레인, 호이스트 등 장비 대여료와 유치권 관리 용역비, 직원, 가설전기 등 월 150억~200억원에 달하는 제반비용을 모두 조합에 청구할 방침이다. 공사재개 시점이 빨라도 11월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비용만 약 150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정상화위 관계자는 "현 집행부가 초래한 분쟁 때문에 조합원들은 공사중단 및 재개, 분양지연 등에 따른 추가비용을 시공사업단에 또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라면서 "이 비용 역시 새로 결정된 사안이기 때문에 한국부동산원을 통해 검증받은 뒤 총회에서 조합원들의 동의를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의사결정 사항이 늘어나면서 계속 비용이 발생하고 있어 최대한 빨리 사업을 정상화해야 한다"면서 "시공사업단이 공사비용과 공사기간을 확정하지 않으면 공사를 재개할 수 없다고 못 박은 만큼 앞으로 공사재개의 걸림돌이 되는 요구는 모두 제거하겠다"고 덧붙였다. 
 
◇한남, 노량진, 광명 뉴타운 등 조합장 줄줄이 교체..."MZ세대 기대 못 미치는 조합장은 OUT"

둔촌주공을 비롯해 은마아파트, 광명뉴타운, 한남뉴타운 등 주요 재정비사업장에서는 조합장이 교체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정비사업의 조합장은 성공만 하면 막대한 부와 명예가 따라와 '3대가 덕을 쌓아야 할 수 있다'고 할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자랑했지만 최근에는 굴욕적인 중도 하차의 경우가 더 많다.
 
서울 도심부에서는 한남2구역과 3구역이 각각 지난 4월과 지난해 12월 기존 조합장을 해임하고 새 조합장을 맞았다. 공사 입찰 과정에서 기존 조합의 이권개입, 방만경영, 깜깜이 공시, 분양가 산정 등이 문제가 됐다.

노량진6·7구역도 조합장이 조합원들 동의 없이 각종 이권에 개입한 혐의가 포착돼 결국 해임됐다. 강남 재건축 최대어로 꼽히는 대치동 은마아파트 역시 극심한 내홍 끝에 지난 3월 기존 추진위원장이 해임되고 새로운 위원장이 선출됐다.
 
경기도에서는 광명뉴타운 2구역이 지난 4월 조합장 해임안을 통과시켰다. 지난해 3.3㎡당 2000만원으로 책정된 일반분양가가 갈등의 촉매제가 됐다. 인근 광명뉴타운 5구역과 11구역도 조합장이 조합원들의 이익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한다며 각각 지난 2월 해임됐다.

업계에서는 조합장의 '제왕적 위치'가 막을 내린 원인을 부동산 정보 공유의 투명성, 신속성, 양방향 소통 등으로 꼽는다. 과거와 비교해 재건축·재개발 사업 추진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고 있으며, 전달 속도도 매우 빨라졌기 때문이다.

조합원들은 SNS나 카카오톡을 통해 중요 정보를 공유하고, 의견을 교환하면서 실시간 소통에도 적극적이다. 특히 최근 수년간 부동산 투자 붐이 불면서 주요 재건축 추진 단지를 철저하게 분석하고 투자한 MZ세대들은 정비사업에도 준전문가 수준의 지식을 갖춰 구조적으로도 조합장이 군림하기 어려워졌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한 정비사업 관계자는 "최근 2~3년간 서울 재건축, 재개발 아파트를 매수한 MZ세대들은 가격, 면적, 대지지분 분석은 물론 재건축에 소요되는 시간까지 철저하게 비용으로 따져서 투자 시장에 진입한 '아파트 키즈'"라면서 "기존 조합장이 업무태만을 보이거나 제대로 된 업무 기능을 상실했다고 판단하면 해임, 파면 등 거침없이 의견을 개진하고, 실행력을 동원하는 데도 적극적"이라고 말했다.

또 "젊은 세대들은 불합리한 의견 수렴 절차, 조합 집행부에 제공되는 이권 등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조합장에게 제공되던 관행적인 특권도 불편해하기 때문에 조합장 교체가 빈번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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