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한폭탄된 부채] 금리인상 속 이자폭탄 눈앞…대출 차주들 '살얼음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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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근미 기자
입력 2022-06-26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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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 음식점 거리. [사진=연합뉴스]

본격적인 금리 상승기에 접어들면서 빚 상환 부담이 커진 차주들의 부실 리스크가 현실화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코로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의 직격탄을 맞고, 버티기 위해 대출을 늘려 온 자영업자와 '영끌·빚투'에 적극 나선 가계 차주들이 ‘약한 고리’로 지목되고 있다.
 
금리상승기 '이자폭탄' 자영업자부터 터진다
26일 한국은행은 최근 발표한 ‘금융안정보고서’를 통해 “코로나 이후 불어난 자영업자대출 상환부담이 내년부터 대폭 늘어날 것”이라고 예고했다.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대출이 코로나 시국 이후 빠르게 늘어난 현실 속에서 금리 상승과 더불어 정부 금융지원 조치가 종료될 경우 자영업자 채무 상환 부담이 크게 악화될 것이라는 시각이다.

실제 한은이 추산한 국내 자영업자대출 잔액 규모는 올해 1분기 기준 960조7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코로나 직전인 2019년 말(684조9000억원)보다 무려 40.3% 급증한 수치다. 취약차주가 보유한 자영업자대출 역시 88조원대로 코로나 이전(68조원)보다 30.6% 증가했다.

특히 사업소득이 ‘0원’인 자영업자가 늘어났음에도 폐업은 오히려 줄어드는 기현상도 확인되고 있다. 이른바 ‘좀비자영업자’의 양산이다. 영업을 하고 있는데도 사업소득이 없거나 적자인 결손사업자 비중은 2019년 7.6%에서 2020년 8.6%로 증가하고 있는 상황. 그러나 같은 기간 자영업자 폐업률은 12.1%에서 10.9%로 오히려 감소했다.

한은은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코로나 팬데믹 이후 금융지원 조치가 연장되면서 폐업률이 하락한 부분도 있는 반면 업황이 좋지 않은데도 사업자 신분을 유지하는 사례들도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면서 “폐업으로 전환할 경우 금융지원 혜택이 끊길 우려가 있기 때문에 (수익이 나지 않는데도)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코로나 초기와 달리 더 이상 저금리 기조가 아닌 상황에서 눈덩이처럼 쌓인 대출은 이들이 갚아야 할 금융비용과 부실 가능성을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한은은 최근 1년 동안 기준금리를 1%포인트 상향 조정한 데 이어 다음달에도 한 번에 기준금리를 0.5%포인트 높이는 '빅스텝' 카드를 검토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올 연말까지 한은이 기준금리 인상을 거듭해 연내 기준금리가 2.75~3%에 도달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도 내놓고 있다.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은 대출금리에 영향을 미친다. 5대 시중은행에 따르면 신용등급 1~2등급 차주에 적용된 평균 신용대출 금리는 4.1% 수준으로 1년 전보다 1%포인트 이상 뛰었다. 은행 대출금리가 1.0%포인트 오를 경우 자영업자가 지불해야 할 이자 부담은 6조4000억원가량 늘어난다. 국회 기재위 소속인 장혜영 의원이 한은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대출금리가 0.25%포인트 오를 때마다 자영업자 대출이자 부담(2021년 말 부채 잔액 기준)이 1조6000억원씩 불어날 것으로 추산됐다. 

여기에 자영업자 상당수가 3개 이상의 금융회사에서 대출을 받은 '다중채무자'라는 점도 부실을 가속화시키는 요인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다중채무자 가운데서도 자영업자의 잠재부실률이 임금근로자보다 더 높다"면서 "자영업자는 일반 직장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대출 규모가 크고 빚을 ‘돌려막기’ 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래픽=아주경제DB]

가계‧기업빚 3400조, GDP의 두 배…위기감 엄습
 

서울 시내의 한 은행 앞에 대출 안내문이 붙어 있다. [사진=연합뉴스]

우리 경제에서 부채 리스크는 코로나 장기화로 어려워진 기업들의 자금 융통뿐 아니라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시장 호황에 발을 담그기 위해 대출을 마다하지 않던 가계 차주들까지 옥죄고 있다. 가계와 기업대출 규모를 합친 민간신용 규모는 GDP(국내총생산) 대비 2배를 훌쩍 넘어서며 금융시스템의 취약성을 높이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한은에 따르면 국내 가계신용(가계빚) 규모는 올해 1분기 말 기준 1859조 4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1년 전과 비교해 5.4% 상승한 수준이다. 가계신용 중 판매신용(카드대금 등)을 제외한 가계대출 잔액은 1752조7000억원이다. 가계대출 가운데선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이 989조8000억원, 신용대출 등 기타대출 잔액이 762조9000억원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기업부채 규모는 1609조원대로 전년 동기 대비 14.8% 확대됐다. 코로나 금융지원 조치 연장과 원자재 가격 상승, 설비 및 부동산 관련 투자 확대, 여기에 상대적으로 느슨한 대출규제가 금융기관의 적극적인 대출 취급을 유도해 규모 확대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이에 국내 가계부채와 기업부채를 모두 합한 규모는 총 3470조원에 이르고 있다. 

수치로만 들으면 다소 막연할 수 있는 국내 부채 규모는 GDP와 비교하면 확연히 체감할 수 있다. 한은에 따르면 1분기 말 명목 GDP 대비 민간신용(가계·기업 부채 합) 비율은 219.4%에 달했다. 민간 부문의 빚이 국내 경제의 2배를 넘어선 셈이다. 명목 GDP 대비 민간신용 비율은 지난 2020년 1분기(200.2%)에 두 배를 넘어선 이후 꾸준한 상승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국제결제은행(BIS)도 국내 가계·기업 등 민간 부문 부채 증가속도에 경고음을 날리고 있다. BIS에 따르면 작년 4분기 한국의 신용갭(Credit-to-GDP gap)은 17.7%로 조사 대상(43개국) 중 일본(25.6%), 태국(21.4%)에 이어 3위를 기록했다. 신용갭은 GDP 대비 민간부채 비율이 장기 추세에서 얼마나 벗어났는지 나타내는 지표로 이 비율이 높을수록 부채 위험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해당 수치가 10%를 넘어가면 '경보' 단계로 분류된다.

금융시스템 불안정성 정도를 보여주는 금융불안지수(FSI) 역시 3개월째 '주의 단계'에 머물러 있다. 한은에 따르면 FSI 지수는 지난 5월 기준 13.0으로 2020년 9월(15.9) 이후 1년 8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나타냈다. 해당 지수는 과거 글로벌 금융위기 시절(2008년 12월 57.6)과 코로나19 초기 시절(2020년 4월 24.5)에 위기 단계에 진입한 바 있다. 다시 말해 현재의 금융위기 불안감이 금융위기 수준과 유사하다는 해석으로도 읽힐 수 있다. 금융시장의 중장기 위험도를 나타내는 금융취약성지수(FVI) 또한 장기 평균(37.4)을 넘어선 52.6을 기록하고 있다. 

국내 금융시장은 금리 상승과 코로나 관련 금융지원이 당장 오는 9월 종료를 앞두고 있어 취약차주·한계기업을 중심으로 부실이 확대될 수 있다. 여기에 경기침체와 고물가를 동반한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등 대규모 부실의 파고가 개인 차주를 넘어 금융시스템 전반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도 여전하다. 이에 대해 한은은 "대내외 상황이 악화되면서 잠재 부실이 극대화될 가능성이 있다"며 "여건 변화에 따른 정밀한 부채 리스크 측정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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