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종 칼럼] 장기집권 지도자의 확증 편향성 오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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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종 숙명여대 국제관계대학원 교수
입력 2022-05-05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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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종 숙명여대 국제관계대학원 교수]


민주사회에서 흔히 나타나는 극심한 분열과 갈등을 보다 보면 때로는 권위주의의 장점을 주시하게 한다. 일사불란한 통제 속에 확립되는 사회 안정과 질서가 더 매력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몇 년 전 트럼프 대통령 시절 미국 사회가 인종 및 이념 갈등으로 극렬하게 분열되고 거리와 의사당에서 폭력이 난무할 때 특히 그런 느낌이 들었다. 사실 그 당시 중국 정부는 미국 및 서방의 무질서한 혼란 상황을 들며 자신들 권위주의 체제의 우월성을 자랑하기도 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최근 러시아와 중국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보면 그렇지 않다는 점이 자명해 진다. 결국은 무질서하고 혼란스러워 보이는 서방 민주 체제가 질서정연하고 안정되어 보이는 권위주의 체제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단기적으로는 권위주의가 우월한 것 같아도 장기적으로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중국의 제로 코로나바이러스 정책에서 발견하게 된다.

먼저 러시아의 경우를 보자. 푸틴 대통령은 이웃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며 신속한 승리를 기대했다. 우크라이나에 비해 몇 배나 더 막강한 러시아의 군사력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며칠 아니면 몇 주 이내에 전쟁을 이길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개전 두 달이 지난 지금 상황은 전혀 다르다. 우크라이나의 강력한 저항과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전폭적인 군사적 지원 때문에 러시아는 예상 밖으로 고전하고 있는 중이다. 많은 수의 병력 손실을 입었고 서방의 제재 조치 때문에 경제적으로도 큰 타격을 입고 있다. 최종 승리를 얻는다 하더라도 이는 상처뿐인 영광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의 배경에는 역시 러시아의 권위주의 체제가 있다. 한 지도자의 잘못 된 판단에 대해 이를 견제하고 통제할 수 있는 제도와 장치가 없는 것을 큰 이유로 들 수 있다. 푸틴의 주변 참모들이나 군부 지도자들이 전쟁 상황에 대해 올바로 조언해 주지 않는다면 푸틴은 끝까지 자신의 오류를 인식하지 못한다. 설사 올바른 조언이 있다 해도 이것이 제도적으로 확립되어 있지 않다면 지도자는 얼마든지 이를 무시할 수 있다. 더군다나 이러한 지도자가 20년 가까이 권좌에 있었다면 이를 견제할 수 있는 장치는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중국의 경우도 비슷한 상황이다. 시진핑 주석은 팬더믹 초기 철저한 봉쇄 정책을 통해 나름대로 성과를 거두었다. 미국과 서방이 엄청난 희생을 겪는 동안 중국은 최소한의 희생만을 겪었다. 이로 인해 시 주석은 자신의 제로 코로나 정책에 대해 무한한 확신을 하게 되었다. 즉 자기 확증 편향이다. 단지 몇 건의 확진이 나오더라도 도시 전체를 봉쇄하고 모든 주민에게 검사와 격리를 강제하는 것이 최선의 정책이라는 믿음을 철저하게 신봉하고 있는 듯 하다.

그 결과 현재 상해 등 대도시는 전례 없는 봉쇄와 통제하에 놓여 있고 시민들은 생필품 부족 등 극심한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다. 공급망은 붕괴되고 있고 이는 중국 경제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미국, 유럽을 비롯한 많은 나라들이 서서히 팬더믹의 공포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한 지도자의 맹목적인 자기 확신이 중국이라는 거대한 나라에 큰 피해를 주고 있지만 역시 이를 견제할 제도나 장치는 없는 실정이다. 권위주의 하 지도자의 엄청난 권력 때문에 주변에서 이를 말릴 수도 없는 형국이다.

중국과 러시아에서 일어나는 현재 사태를 살펴 보면 많은 공통점이 발견된다. 양국 모두 지도자가 장기 집권하고 있고 평생 집권을 도모하고 있다. 양국 모두 정치와 이념을 앞세우는 카리스마적 지도자가 다스린다. 모든 분야를 장악한 이들 지도자 앞에 군사 전문가나 방역 전문가들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교조적이고 수직적인 통치 체제 하에서 비판은 허용되지 않고 견제를 위한 장치도 마련되어 있지 않다.

반면 민주 사회에서는 이러한 견제와 비판의 제도와 장치가 마련되어 있어서 극심한 위기를 겪다가도 결국은 회복할 수 있는 복원력이 작동한다. 미국의 경우 트럼프 행정부 4년 동안 극렬한 사회 갈등을 겪었고 이는 아직도 치유되고 있지 않지만 미국 사회를 파괴할 정도로 심각하게 발전하지는 않는다. 4년 혹은 5년마다 반복되는 선거라는 제도는 한 지도자의 맹점과 오류를 바로 잡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설사 그것이 지난 4년 혹은 5년간 전임 정부의 정책을 폐기하고 실적을 폄훼하는 낭비가 있다 하더라도 결국에는 더 많은 이익을 안겨준다.

그런 점에서 새로 출범하는 한국의 윤석열 정부는 민주사회에서 흔히 보여주는 단절과 낭비 그리고 무질서에서 자유롭지 않을 것이다. 전임 정부의 실정을 들춰내고 비판하는 와중에서 성공적인 정책까지도 폄훼하고 폐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이번처럼 정권이 완전히 바뀐 상태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이것이 민주주의의 어쩔 수 없는 속성이다. 선거로 지난 정권이 패배했을 때에는 어딘가에 문제점이 있었다는 반증이고 이는 바로 잡아야 할 사항이다. 특히 한국 같이 대통령의 권한이 집중되어 있는 상황에서는 한 지도자의 자기 확증 편향성 오류가 정권 교체를 통해서 시정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중국, 러시아, 혹은 북한에서 사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병종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언론정보학 박사 ▷AP통신 특파원 ▷뉴스위크 한국지국장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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