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뷰] 뺏고 뺏기는 인력 전쟁...반도체 산업의 '슬픈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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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선 산업부 차장
입력 2022-04-26 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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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 액수만 키워서 또 다른 곳으로 점프하는 메뚜기가 너무 많다.”
 
최근 반도체 업계에서는 자신의 몸값만 높여 경쟁사로 이직하는 이들을 두고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한 회사에 뼈를 묻어야지"라고 말하던 라떼는 말이야 식의 애사심을 논하지 않더라도, 계속되는 인력난에 처한 반도체 업계의 슬픈 자화상이다.
 
업계에서는 최근 심화하는 반도체 공급망 문제를 푸는 가장 효율적인 열쇠는 생산설비 고도화와 전문인력 확보라고 입을 모은다. 특히 최근 몇 년간 반도체 수요가 폭증하면서 전 세계 반도체 업계는 전문인력 부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기업 간 경쟁에서 한발 더 나아가 국가 간 ‘인재 모시기'는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다. 한 업계 관계자는 "사실 반도체 기업의 생존은 전문인력 확보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할 정도다. 실제로 반도체산업협회 등에 따르면 오는 2031년까지 총 3만명의 인력이 부족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은 경쟁적으로 인재 쟁탈전에 앞다퉈 뛰어들고 있다. 처우 개선, 인센티브 확대 등이 당근책이다. 주목할 것은 그동안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최고 대우를 통해 '경력직 블랙홀'로 유명했는데 최근에는 그 양상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SK하이닉스 노사는 지난해 임직원 임금을 예년의 2배 수준인 평균 8% 인상했다. 대졸 신입사원 기술사무직의 초임을 삼성전자보다 높은 5040만원으로 합의해, 같은 해 삼성전자 대졸 초임 4800만원을 제쳤다. 여기다 SK하이닉스는 최근 3만여 명에 달하는 임직원의 의자를 한 개당 250만원인 초고가 제품으로 교체한다고 밝혀, 동종 업계에서 큰 화제를 모았다. 또 2주 동안 80시간 이상 근무한 직원을 대상으로, 매월 셋째 주마다 4일 근무를 적용하는 '해피 프라이데이' 제도도 도입했다.
 
이에 질세라 삼성전자의 반도체를 담당하는 DS부문은 내달 12일까지 2년 이상 경력직 채용에 돌입했다. 업계 안팎에서는 SK하이닉스를 능가할 파격적인 대우가 있을 수 있다는 후문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하반기와 올해 1월 경력직 채용을 진행했는데 성에 차지 않았다고 판단한다. 현재 상반기 대졸 신입 공채를 진행 중이지만, 숙련도를 갖춘 경력직 사원을 대폭 채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대학 안에 ‘반도체 계약학과’를 만들어 능력 있는 인재를 선제적으로 확보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삼성전자는 성균관대·연세대·카이스트·포스텍에 반도체 계약학과를 개설했다. SK하이닉스도 2020년 고려대를 시작으로 올해 서강대, 한양대와 잇달아 반도체학과 개설 협약을 맺었다. 그런데도 현재 우리나라의 경우 한해 반도체학과 졸업생은 650여 명에 불과하다. 수도권 내 대학 정원을 자유롭게 늘릴 수 없게 제한한 수도권정비계획법이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반도체 전문인력 확보를 위해서는 기업 간 출혈 경쟁, 기업의 지원에만 의존하는 반도체 계약학과 설립에 의존하는 정책에서 한발 더 나가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한마디로 정부 차원의 장기적인 지원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K-반도체에 맞서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는 중국과 대만은 해마다 각각 20만명과 1만명 수준의 반도체 인력을 배출하고 있다. 정부가 의욕적으로 기업이 원하는 인재를 키워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센 이유다.
 
그나마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국내 반도체 인력 확보와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반도체 초격차 확보 방안’을 추진키로 한 점은 다행스럽다. 인수위는 “산업의 쌀이라고 불리는 반도체 분야에 국가가 할 수 있는 부분을 하겠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정권 시작 전 내뱉은 말은 항상 공염불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부디 5년 뒤 이맘때쯤엔 기업들이 서로 뺏고 뺏기는 반도체 인력 전쟁 없이 생산에만 전념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그래야만 인수위가 강조한 대로 반도체가 더는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국가안보자산'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반도체 생산라인에서 업무에 집중하고 있는 삼성전자 임직원 [사진=삼성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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