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만이 최선이다(Only the best is good enough)."
세계적인 블록 장난감 회사인 레고 그룹(LEGO Group)의 경영 철학이다. 지난 1932년 덴마크에서 설립 이후 90여년 역사 속에 이 철학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아버지에서 아들로, 아들에서 손자로 대를 이어가는 과정에서 수많은 고비와 실패를 만났지만 항상 최고를 추구하면서 세계적인 완구 업체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최초의 레고는 실패에서 태어났다. 설립자인 올레 키르크 크리스티얀센이 목공소를 운영하다 파산한 것이 그 시작이다. 처치 곤란인 재고 목재를 깎아 나무 장난감을 만들었고 좋은 반응을 얻자 소량으로 내다팔면서 희망을 봤다. 장난감 공장 화재로 만들어 놓은 장난감이 모두 잿더미가 됐을 때도 레고 블럭처럼 하나하나 다시 공장을 세웠다. 나무에서 플라스틱으로 소재를 바꾸었고, 완제품에서 조립형 완구로 시대의 흐름을 따랐다.
레고 그룹은 이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에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 지난 2015년부터 지속 가능 소재를 활용하겠다는 계획을 공식화한 뒤 식물성 플라스틱을 개발, 상용화하는 데 성공했다. 태양열 등 재생 에너지를 활용하고 포장재를 종이로 바꾸는 방식으로 탄소 절감 노력에도 힘을 보탠다는 계획이다.
◆사탕수수·재생 플라스틱...친환경 소재로의 대전환
레고 그룹은 지난 2015년 6월, 2030년까지 주요 제품 및 포장재에 지속 가능 소재를 사용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곧 자체 연구소를 설립해 총 1억 5000만 달러(약 1865억원)의 대규모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첫 결실은 3년 만에 나왔다. 사탕수수 원료로 만든 폴리에틸렌이 그 주인공이다. 기존 플라스틱 제품과 사실상 동일한 기능을 하면서도, 식물성 소재여서 부드럽고 유연한 것이 특징이다.
사탕수수 원료의 식물성 플라스틱을 사용한 친환경 브릭은 레고 그룹이 처음 선보인 지속 가능 소재 브릭이다. 잎사귀, 수풀, 나무 등 다양한 식물 형태로 구성된 이 소재는 2018년부터 상용화에 들어가 현재 절반에 가까운 레고 세트에 포함돼 출시된다. 엄격한 심사 과정을 거치는 것은 물론 이전 브릭과의 호환성도 챙겼다.
지난 2019년 출시한 '레고 아이디어 트리 하우스'의 브릭에도 이 소재가 사용됐다. 세 채의 오두막이 딸린 아름드리 나무와 집 주변으로 시냇물이 흐르는 풍경을 표현한 이 시리즈에는 3036개의 부품으로 구성돼 있는데 그 중 180여 개가 사탕수수 원료의 식물성 폴리에틸렌으로 제작된 식물 형태 브릭이다.
작년 출시한 '레고 꽃다발'과 지난 2018년 출시한 '레고 크리에이터 엑스퍼트 베스타스 풍력 터빈'에도 이 식물성 소재가 사용됐다. 레고 크리에이터 엑스퍼트 베스타스 풍력 터빈은 세계 최대 풍력발전 기업인 덴마크 베스타스사와 협업을 통해 탄생한 제품이다. 풍력 발전을 테마로 하고 있어 재생 에너지와 지속 가능성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환기하고 환경과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는 게 레고 그룹의 설명이다.
2021년 6월에는 재생 플라스틱으로 만든 ‘지속 가능 브릭’ 시제품을 최초로 공개하기도 했다. 전 제품을 지속 가능 소재로 교체하는 장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버려진 병에서 추출한 페트 플라스틱을 원료로 만든 레고 그룹 최초의 재활용 제품이다. 이 시제품은 레고 그룹과 재료 과학자 및 엔지니어들이 지속 가능 소재 개발을 위해 3년간 250가지가 넘는 페트 플라스틱과 수백 가지의 플라스틱 대체제로 실험을 거듭해 만들었다.
미국식품의약국(FDA)과 유럽식품안전청(EFSA)의 품질 인증을 거친 만큼 레고 그룹과 연구팀은 이 시제품을 바탕으로 페트 플라스틱 제조 공법에 대한 지속적인 실험과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다. 재활용 페트 소재와 강화제를 결합해 강도와 내구성을 높여 주는 맞춤형 핵심 기술은 현재 특허 출원 중이다. 레고 그룹 측은 "1리터 페트병은 약 10개의 2X4 레고 브릭으로 재탄생할 수 있다"라며 "시험 생산 단계에 이르기까지는 최소 1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밝혔다.
친환경 단체와의 협업도 추진하고 있다. 레고 그룹은 세계자연기금(WWF)과 지속 가능 플라스틱을 위한 파트너십을 맺은 데 이어 보다 원활한 지속 가능 소재 원료 확보를 위해 바이오 플라스틱 원료연대(BFA)에도 가입했다. BFA는 바이오 플라스틱 생산을 통해 환경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는 취지로 설립된 글로벌 파트너십이다. 또 사탕수수 비영리단체인 본수크로(Bonsucro)를 통해 사탕수수 원료의 품질을 관리하고 있다.
◆"절대 탄소 배출량 37% 절감" 지속 가능 소재 적극 투자
레고 그룹은 파리기후변화협정을 지지한 데 이어 작년 1월 유럽연합(EU)이 새로 발족한 ‘녹색 소비 서약(Green Consumption Pledge)’에 참여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재차 탄소 저감 의지를 표명했다. 일단 오는 2032년까지 절대 탄소 배출량을 37% 절감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지속 가능 소재 연구에 지속 투자 △공장 내 재생 가능 에너지 생산 확대 △공장, 사무실 및 매장에서 100% 재생 가능 에너지 사용 등의 세부 목표도 세웠다.
멕시코 공장 내 조명 시스템을 1만 9000개의 고효율 LED 전구로 교체해 연간 1300톤 이상의 이산화탄소(CO2) 배출량을 줄인 것이 대표적인 적용 사례다. 덴마크 소재 레고 브릭 성형 공정에는 새로운 냉각 시스템을 설치하고, 체코 공장에는 3500개 이상의 태양광 패널로 지붕을 덮어 연간 500톤 이상의 CO2 배출량을 줄인다는 계획이다.
레고 그룹은 2021년 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CDP)의 기후 변화 부문에서 A등급을 획득했다. 공장 내 태양전지 발전 용량을 전년 대비 98% 증대하는 등 재생 에너지에 대한 투자를 확대한 점을 인정 받았다. CDP는 기업과 도시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일정한 지표로 나눠 공개하는 비영리 단체로, 공신력 있는 환경 관련 평가 기관이다.
환경 친화적인 포장재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레고 그룹은 오는 2025년까지 모든 제품 패키징을 지속 가능 소재로 교체하는 것을 목표로 지난 2020년부터 공식 레고스토어에서 사용하는 포장 가방을 모두 종이 소재로 대체해 제공하고 있다. 레고 상자 안에 들어 있는 일회용 플라스틱 포장 봉투를 단계적으로 폐지하기 위해 국제산림관리협의회에서 인증한 재활용 종이 봉투로 교체해 시범 운영을 진행했다. 올해 중반부터 단계적으로 종이 봉투로 교체할 예정이다.
지속 가능한 친환경 분야 투자도 적극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레고 그룹은 이미 지난 2020년 지속 가능한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3년간 총 4억 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핵심 투자 영역은 △놀이를 통한 배움의 기회 제공 확대 △환경 영향 절감 △차별 없는 기업 문화 구축 등이다.
올해까지 그룹의 모든 사업장에서 탄소 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태양열 발전기를 추가 도입하기로 한 것도 이런 전략의 일환이다. 레고 브릭 공정 효율성을 높이는 새로운 시스템을 설치하는 등의 에너지 사용량 개선을 위한 추가적인 투자도 이뤄진다. 2025년까지 매립 폐기물 0% 달성 목표도 세웠다.
2030년까지 주요 제품 및 포장재를 지속 가능한 소재로 교체하기 위해 150명 이상의 전문가를 영입해 꾸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동시에 다양한 국가의 연구기관과의 협력을 통해 더 새로운 친환경 소재 개발에도 박차를 가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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