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교 칼럼] 안정적 공급망 구축을 위한 정부의 역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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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입력 2022-02-22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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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코로나19에 이어 우크라이나 사태 등 국제정세의 불안정으로 공급망 위험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지난 주 문재인 대통령은 대외경제안보 전략회의를 주재하면서 심화되는 공급망 위험에 선제적으로 대비하기 위해 안정성 중심의 공급체계로의 전환이 시급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안정적인 공급망 구축이 말처럼 쉽지는 않다. 위급 시 대처는 물론 단기와 중장기로 나누어 글로벌 공급망 변화의 방향을 고려하되 기업 입장에서 현장에서 적용 가능한 실천적인 해법을 찾아야하기 때문이다.
 
위급상황 발생 시 대처는 현장에서 긴요한 핵심 품목의 재고를 평소보다 여유 있게 비축해 놓는 것 말고는 뚜렷한 방안이 없다. 비축에는 비용이 따르게 마련이다. 따라서 핵심은 어느 수준의 비축이 가장 효율적인가로 모아진다. 그런데 이것은 기업의 내부상황 및 경영전략과 긴밀히 연계되어 있기 때문에 기업들이 잘 알고 있다. 정부가 간여할 여지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업 스스로도 회사의 단기 성패가 달려있으니 누구보다 효과적인 대처방안 마련에 전력을 다할 수밖에 없다. 위급시 정부는 신중한 대처가 요구된다. 섣불리 나서 사태를 악화시킬 경우 오히려 기업의 대처를 어렵게 만들 수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공급망 안정의 단기 대처방안은 대개 기존의 핵심 생산지역 플러스 원(one) 정책이다. 예를 들어 중국내 특정 지역에 대한 생산 의존성을 줄이기 위해 중국내 다른 지역이나 또는 인근의 다른 동남아국가로의 생산 배분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나 중국내 특정 지역에서의 생산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은 생산 효율 측면에서 이미 최적화된 결과물이다. 즉 해당지역에서의 생산이 인프라나 임금 수준, 필요한 인력의 조달, 세제 혜택 등과 함께 해당 지역에서의 생산을 위해 설계된 부품의 물류체계까지 효율적으로 짜여진 최적조합인 것이다. 따라서 이를 변화시키는 것은 생산비의 증가를 의미하며, 기업의 경영방향은 물론 경쟁력에도 직접 영향을 준다.
 
그럼에도 공급망 안정을 위해 다른 지역에서의 생산을 준비해야 하는데 가장 큰 어려움은 기존 생산지역을 대체할 후보지가 별로 없다는 점이다. 다른 후보지의 인프라가 아무리 좋아도 임금이 높으면 생산 이전이 쉽지 않다. 인프라가 좋고 임금이 낮아도 생산에 필요한 기술인력의 조달이 어려우면 그것도 문제다. 불안한 정치환경 또한 외면할 수 없다. 동남아국가 중에는 그나마 베트남이 가능한 후보지이지만, 사실 중국을 100% 대체할 지역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 글로벌 기업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이러한 이유로 단기 대책은 기존 핵심지역에서 80을 생산하고 나머지 20은 어쩔 수 없이 다른 지역에서 생산하는 8:2의 생산조정 또는 중국 플러스 원(one) 정책이 나온 것이다. 이런 점에서 미국의 중국 배제 공급망 구축은 단기에 이루어지기 어려운 정책이다.
 
중장기 대처방안의 핵심은 기술 발전 및 기후변화 대응이다. 물론 미국과 중국의 기술패권경쟁이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을 증폭시키고 있어 이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기업의 입장에서 미·중 갈등은 예측하기 어렵고, 무엇보다 기업의 투자는 십수년 이상의 먼 미래를 보고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보다 근본적인 공급망 재편의 변화 흐름을 읽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이러한 시각에서 중장기 글로벌 공급망의 변화에 가장 큰 영향을 줄 요인은 기술(특히 디지털 기술)의 급속한 발전과 기후변화 대응으로 요약될 수 있다.
 
향후 디지털사회로의 전환이 예상됨에 따라 디지털 무역의 확대는 물론 디지털 기술의 급속한 발전, 특히 각종의 다양한 자동화 기술이 빠르게 개발되어 실생활에 적용될 전망이다. 특히 첨단 자동화 기술로 인해 산업 구조도 혁명적인 변화가 예상된다. 이에 따라 저임금 위주의 기존 공급망은 점차 그 이점이 축소되고, 첨단 기술과 지식 중심의 공급망이 미래 공급망의 주역이 될 전망이다. 자연스럽게 첨단 기술이나 장비, 그리고 이를 운용할 수 있는 고급 인력의 조달 여부, 그리고 이를 뒷받침해 주는 투명한 제도 등이 중장기 글로벌 공급망을 결정하는 핵심 요인이 된다. 삼성이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기로 한 것은 미국의 압력도 원인일 수 있으나, 그 보다는 미국의 관련 첨단 기술과 인프라 활용, 소비 시장으로의 중요성 등이 더 큰 원인이다.
 
기후변화 대응도 글로벌 공급망 구조 변화에 큰 영향을 준다. 전 지구적 과제인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탄소배출이 심한 기술이나 상품은 점차 많은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자연히 탄소배출 제로(0) 혹은 저탄소 배출기술이 우대받을 것이고, 그러한 상품이나 서비스 공급이 가능한 국가나 지역과의 연계가 강화되면서 소위 그린 공급망 형성될 것이다. 이 경우 녹색기술이란 측면에서 기존 선진국들이 새로운 공급기지로서 비교 우위를 가지고 있음은 분명하다. 열악한 노동환경 등 노동인권이 강조될 경우 생산기지로서 그 동안 개도국이 갖던 이점은 더욱 줄어들 수도 있다. 결국 새롭게 재편될 글로벌 공급망에서 우리가 중요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첨단기술(녹색기술 포함)의 개발과 고급인력의 양성, 선진화된 제도정착이 필수다. 정부의 역할이 바로 여기에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가 중장기 안정적 공급망 구축에서 고려해야 하는 요소는 부족한 원자재의 안정적 공급문제다. 희토류는 한 예일뿐이다. 우리가 부족한 핵심 기초 원자재의 안정적 공급망 구축을 위해 우리가 가진 첨단기술을 제공할 수도 있어야 하고 상대국의 자원을 이용해 서로 상생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국가 간 협력에도 당연히 공짜 점심은 없다.


 
서진교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농업경제학과 △미국 메릴랜드대 자원경제학 박사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관세청 자체평가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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