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의 그늘]시설 중심 노숙인 정책…인권 보호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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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현 기자 윤혜원·최태원·권성진 수습기자
입력 2022-02-1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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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설을 앞두고 밀알선교회 봉사자들이 노숙인들의 머리와 손발톱을 다듬어주고 있다. [사진=최태원 수습기자]


<편집자주>지난해 유엔무역개발회의는 대한민국을 선진국으로 분류했다. 경제규모로 볼 때 세계 10위, G7회의에도 초청됐다. 그러나 선진국이라는 이름표와는 달리 여전히 소외되고 있는 시민들은 존재한다. 따뜻한 잠자리, 한 끼 식사를 할 수 있는 여유. 누군가에게는 당연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간절함이다.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 그늘에 가려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봤다.

#. 30대 후반 남성 A씨는 사업을 위해 준비했던 자금을 믿었던 친구가 가지고 도망가 버리면서 방랑생활을 하고 있다. 24살에 시작된 노숙생활은 벌써 10년 넘도록 이어지고 있다. 그는 계절과 상관없이 피곤하면 벤치에서 자고, 가끔 누군가의 도움으로 따뜻한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서른 살까지는 가족들도 그를 찾았다. A씨는 그러나 집에서도 시설에서도 마음 둘 곳이 없었다. 이 때문에 집과 시설에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했고, 가족들의 관심도 식어갔다. 그는 3개월에 한 번 정도 가족들과 연락을 하고 있다고 한다.

A씨는 건설현장 등에서 일해서 번 돈으로는 고시원에서 생활했고, 돈이 다 떨어지면 노숙하는 생활을 반복했다. 20대에는 B쉼터에서 생활했다. 하지만 시설 내 규율과 다른 사람들과의 갈등으로 떠밀려 나왔고, 교회·시설 등을 전전했다.

지금 생활하고 있는 C쉼터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규율이 세지도 않을뿐더러 다른 사람들과의 마찰도 적은 편이다. 대부분 쉼터는 외출이 어렵다. C쉼터는 코로나19 때문에 외박은 어렵지만 외출은 자유로운 편이다. A씨는 "(쉼터들은 규율이) 군대보다 심하다. 감옥 같다"며 "빨래하는 시간, 씻는 시간까지 다 정해주는 곳도 있다"고 전했다.

노숙인이 다시 거리로 나서는 일종의 '회전문 현상'은 사회적 문제로 지적돼 왔다.

2015년 발간된 '노숙 진입에서 탈출까지 경로와 정책과제' 자료에 따르면 무단·자진퇴소하는 노숙인은 전체의 46.1% 수준이다. 61% 정도가 노숙인 시설 입소 후 1개월 이내에 퇴소하는데, 탈노숙을 하는 경우는 10.4% 정도이다.

시설퇴소 후 또다시 시설을 이용하는 노숙인 비율은 전체의 3분의 2 수준으로, 사실상 대부분의 노숙인들이 거리와 시설입소를 왕복하고 있는 셈이다. 

노숙인 관련 정책은 시설입소를 중심으로 '보호'에 초점을 두고 있다. 노숙인의 사회적 취약성을 개선하거나 자활하기 위한 서비스는 거의 없다는 게 현장 전문가들의 전언이다.

인형진 홈리스행동 활동가는 “서로 전혀 알지 못했던 사람들끼리 한 방에 서너 명이 모여 사는 구조”라며 “선풍기 하나 트는 데에서도 충돌이 생기는 노숙인 시설은 개개인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특정 공간에 여러 명을 집어넣고 생활하게 하는 규칙을 밑바탕으로 깔고 있어 갈등을 전제로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가장 최근 노숙인 관련 통계인 2016년 복지부의 '노숙인 등의 실태조사 결과 및 향후 대책' 등에 따르면 노숙인은 1만1340명 수준으로, 노숙인 등의 미취업자는 64% 수준에 달한다. 노숙의 주된 계기는 개인적 부적응, 경제적 결핍 순이다.

전문가들은 노숙인들의 사생활을 보장할 수 있는 주거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남기철 동덕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공공임대 주택을 활용해 노숙인들에 대한 서비스를 연계시키는 방식으로 나가야 한다"며 "실제 대규모 관리 시설보다 비용이 더 들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노숙인들이 많이 몰려있는 서울시에서는 이와 관련해 임시 주거지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지원할 방침이다.

서울시 자활지원과 관계자는 "과거에는 거리에서 계신 분을 시설로 넣었다가 선별 후 주거를 제공하고 그러면서 일자리를 제공하는 등 단계적인 접근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최근에는 핀란드의 '하우징펏퍼스트'라는 정책처럼 단계를 많이 스킵해 노숙인에게 6개월 정도 임시 주거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쇼트컷 방식을 조금씩 추진 중이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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