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人사이드] 에르도안의 환율 실험, 벌써 실패?...'주간 20%↓' 리라화 추락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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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현 기자
입력 2021-12-31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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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잠시 오름세를 보였던 터키 리라화의 가치가 다시 추락하고 있다. 레제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세)를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내려야 한다"면서 기존의 경제학 원리에 정면으로 위배하는 통화정책을 시행한 여파다. 

우리시간 31일 오후 5시경 외환시장에서 미국 달러화 대비 터키 리라화의 가치는 전날 종가 대비 2.17% 하락한 달러당 13.3740리라(약 1197원)에 거래되고 있다. 터키 리라화의 가치가 닷새째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한 통화의 환율과 대외 가치는 반비례한다. 

올해 초 달러당 7리라 수준을 오갔던 터키 리라화의 가치는 지난 9월 이후 변동성이 높아지며 급락하고 있다.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인사를 통해  중앙은행의 정책 결정 과정에 개입하면서 기준금리를 인상해온 탓이다. 
 

지난 1년간 터키 리라화 가치 추이. [자료=인베스팅닷컴]


당시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명목상 고리대금을 금지하는 이슬람식 금융정책을 내세우며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금리를 인상하던 터키중앙은행에 제동을 걸었다. 인사권을 휘둘러 중앙은행 총재와 부총재, 재무장관 등을 갈아치우면서 터키중앙은행이 금리를 인하하도록 한 것이다. 

이는 에르도안 대통령이 집권 기간 동안 대규모 정부 자금을 조달해 각종 토목 공사를 벌여왔기 때문이다. 금리가 높아지면, 정부 부채의 이자도 높아지면서 정부의 재정 부담이 커진다. 

이에 따라, 터키중앙은행은 올해 9월 이후 4개월 동안 자국의 기준금리를 14%까지 500bp(1bp=0.01%p) 인하했다. 이 여파로 터키의 시장금리(시중 은행 대출 금리)는 일부 은행에서 35%까지 치솟았고, 12월 인플레이션 수치는 전월 대비 6%p(포인트) 오른 27.3%(연율 기준)까지 치솟았다. 

이 영향으로 리라화 가치가 급락하기 시작하자 터키인들은 자국 리라화를 미국 달러화로 교환해 사용했고, 이는 다시 리라화 가치 하락을 부추기며 악순환을 일으켰다. 이에, 달러당 터키 리라화 가치는 지난 11월 15일 종가 기준 10리라를 넘어섰고, 이후 이달 20일 장중에는 18.3674리라까지 치솟기도 했다. 올 한해 동안 터키 리라화의 가치가 43.47%, 미국 달러화 대비로는 77%나 폭락한 것이다. 

결국,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더 이상의 리라화 가치 폭락을 막기 위해 이달 20일(이하 현지시간) '실험적인 통화 정책'을 발표했다. 자국민이 최소 3개월 동안 은행에 리라화로 예금한다면 터키 재무부가 이 기간 통화가치 하락으로 발생한 손실분을 리라화로 보존해주겠다(외환 연동 예금)는 선언이었다. 

이 발표로 미국 달러화 대비 터키 리라화 가치는 지난 20일 하루 만에 21.5%나 급등하는 등 5거래일 연속 오르며 달러당 가치도 13.5리라에서 10.64리라로 올랐다. 터키 재무부는 이날 발표 이후 자국민들이 약 30억 달러의 통화를 리라화 예금으로 옮겼다고 발표하며, 에르도안 정권의 환율실험 성공을 자축하기도 했다. 
 

지난 1년간 미국 달러화 대비 터키 리라화 환율 추이. [자료=인베스팅닷컴]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번 주 들어 다시 급락하고 있는 리라화 가치를 두고 전주 급등세가 환율실험의 여파가 아닌 중앙은행의 인위적인 개입 때문이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SEB의 페르 함마룬트 수석 EM통화 전략가는 31일 로이터에서 "현지인들은 저축한 달러를 리라로 바꾸기 위해 서두르지 않고 있다"면서 "전주 리라화 가치 상승분의 대부분은 중앙은행에 의해 주도됐고, 앞으로 몇 주 동안 더 큰 변동성에 직면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시장은 에르도안 터키 정권이 그 다음에 꺼내들 통화·환율 조치가 무엇인지 짐작할 수 없기에 불확실성이 큰 상황이라는 이유에서다. 

로이터는 터키중앙은행이 이달 들어 환율시장에 5번이나 직접 개입하며 최대 100억 달러에 달하는 외환보유고를 쏟아부었다고 지적했다. 전주 환율실험 발표 당시 이틀 동안에만 70억 달러 어치의 리라화를 터키중앙은행이 사들였다는 것이다. 

이 여파로 터키중앙은행의 국제통화 준비금은 2002년 이후 2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전주 121억6000만 달러였던 준비금이 한 주 만에 86억3000만 달러까지 쪼그라들었다. 중앙은행의 외화 보유량은 금융위기에 대비한 완충 장치이기에, 그만큼 터키의 금융위기 위험성이 높아진 것이다. 

이에 대해 외환 전문매체 포렉스라이브(ForexLive)의 저스틴 로우 외환 전문 분석가는 "본질적으로 에르도안의 실험 계획은 발표하자마자 죽어버린 것"이라면서 "에르도안의 발표는 (예금 손실 보상) 자금을 어떻게 조달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도 없으며, 터키 경제와 통화정책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도 못한다"고 비판한다. 

로우 분석가는 특히 시장이 에르도안 정권의 통화정책 개입에 더 집중하고 있다면서 "리라화 시장의 매커니즘에는 거의 변한 게 없다"고 선을 그었다. 

RAM캐피탈SA의 오지다이 탑큘러 포트폴리오 관리자 역시 30일 블룸버그에서 해당 조치가 향후 터키의 물가 상승세를 더욱 부추길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터키는 금리라는 강력한 통화정책 도구의 사용을 포기했고, 이에 터키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에 대한 통제력을 잃었다"면서 "이는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비판했다. 

이어 그는 "에르도안 정권이 금리 인상 대신 외환연동예금을 도입한 것은 시행 착오적 방식이며, 이 비용은 매우 비쌀 것"이라면서 "해당 조치가 잠깐의 통화 가치를 끌어올리긴 했지만, 장기적으론 정부 재정에 더 많은 부담을 주고 인플레이션을 더욱 부추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31일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경우, 이번 일이 터키 경제에 장기적인 여파로 남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매체는 "에르도안의 계획이 리라화 가치 안정에 성공하더라도 터키의 문제는 끝나지 않을 것"이라면서 이와 같은 에르도안 정권의 통화정책 개입이 장기적으로 터키 경제에 큰 상처를 남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이어 일련의 정책들이 리라화 가치의 안정에 실패하면서 "장기적으로 (환율 하락으로) 무역 수지를 악화시켜 수입-수출 계정의 격차를 메우기 위해 터키 정부의 재정이 해외 차입에 더욱 의존할 것"이라면서 "터키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레제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사진=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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