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석, 과학의 시선] '인공태양' 신기록 한국, 주도권 잡기 서둘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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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석 과학작가, 언론인
입력 2021-12-03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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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석 과학작가, 언론인]

핵융합 에너지 관련 특집을 ‘네이처’가 11월 18일자에 실었다. 네이처는 최상위 과학학술지. 글 제목은 ‘핵융합 에너지 뒤쫓기(The chase for fusion energy)‘다. 핵융합 에너지를 먼저 거머쥐기 위한 노력이 치열하다는 느낌을 주는 제목이다. 글의 부제는 좀 더 구체적이다. ’떠오르는 핵융합 산업이 다음 10년 안에 상업용 발전소를 약속하다.‘

핵융합은 태양이 품어내고 있는 에너지의 근원이다. 그리고 지구에서 인공태양을 만들어 내려는 게 핵융합 기술의 핵심이다. 그게 어려워 핵융합 발전은 미래의 에너지라고 했고, ‘30년 후 기술’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그런데 학술지 네이처에 따르면 핵융합 반응을 통해 인류가 전기를 얻을 수 있는 시기가 가시권 안으로 들어왔다. 2050년 탄소 배출 중립으로 석유·석탄과 같은 화석연료를 더 이상 펑펑 쓸 수 없게 된 우리에게는 새로운 에너지가 절실히 필요하다. 핵융합 에너지의 실용화 시기가 정말 다가오고 있는 것일까?

영국, 그리고 영국의 작은 도시 컬햄(Culham)이 핵융합 에너지 커뮤니티의 주목을 받고 있다. 캐나다의 민간 기업 제너럴 퓨전(GF, General Fusion)이 내년에 핵융합 실증로(fusion demonstration plant)를 컬햄에 착공하며, 2025년까지 완공할 거라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제너럴 퓨전은 2030년대 초까지는 상업용 핵융합 원자로를 판매하겠다는 야심을 갖고 있다.

네이처 보도에 따르면 민간 기업이 대거 핵융합 산업에 뛰어들고 있으며, 핵융합 에너지 시대를 앞당길 걸로 기대된다. 현재 30개 이상의 기업이 있으며, 이 중 18개 기업이 밝힌 투자 액수는 24억 달러(약 240조원)다. 한마디로 우주 항공 산업에서 일어난 일이 핵융합 에너지 산업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게 흥분하고 있는 사람들의 얘기다. 우주항공산업은 전통적으로 국가가 투자해온 영역이나, 최근에는 민간 기업이 달려들면서 크게 활성화됐다. 전기자동차업체인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가 세운 스페이스X,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의 블루오리진이 그 주역이다. 이 같은 일이 핵융합 에너지 시장에서 일어나고 있고, 제프 베이조스, 빌 게이츠(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폴 앨런(마이크로소프트 공동창업자), 그리고 구글을 만든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핵융합 발전 산업에 투자한 재계의 스타들이다. 눈길을 끄는 핵융합 에너지 개발 산업체는 TAE 테크놀로지스(미국 캘리포니아 풋힐 소재), 혤리온 에너지, 커먼웰스 퓨전 시스템스(CFS, 게이츠 투자), 제너럴 퓨전(베이조스 투자) 등이다.

컬햄은 이런 새로운 흐름의 한복판에 있다. 컬햄이 어디에 있는지 구글 지도를 찾아보니, 영국 옥스퍼드대학이 있는 옥스퍼드 바로 아래쪽에 있다. 템스강이 지나간다. 제너럴 퓨전이 컬햄을 택한 건, 컬햄이 영국 핵융합 에너지 연구의 중심지이기 때문이다. 컬햄에는 국립 연구소인 컬햄 융합 에너지 센터(CCFE, Culham Centre for Fusion Energy)가 있다. CCFE 자리는 영국 해군의 항공기 활주로였다. 군 비행장이 미래 에너지 연구의 중심으로 바뀐 것이다. CCFE는 1965년에 건립되었으니, 영국 정부의 핵융합 에너지를 실용화하기 위한 연구는 빨랐다(한국은 2007년에 국가핵융합에너지연구소 출범). CCFE는 그간 실험용 핵융합로인 JET, MAST를 운영하며 관련 기술을 획득해왔고, 이 시설을 운영하는 영국 정부는 이제 기꺼이 캐나다 기업 제너럴 퓨전과 협력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ITER 현장 모습/ 출처= ITER 사이트]

제너럴 퓨전이 컬햄에 만든다는 핵융합 실증로는 실험로 다음 단계다. 전기를 생산하지는 않으나 실증로 안에서 핵융합 반응을 일으키고 핵융합 반응을 계속해서 유지하는 게 목표다. 달성하면 세계 최초가 된다.

캐나다 기업이 영국에 투자를 하는 건 보리스 존슨 총리가 이끄는 영국 정부의 공격적인 행보와 관련 있다. 핵융합 기술 강국들의 기술 실용화를 위한 시간표는 2050년에 맞춰져 있다. 이들이 컨소시엄을 만들어 프랑스에 짓고 있는 ITER(International Thermonuclear Experimental Reactor, 국제 핵융합 실험로) 시간표에 따르면 그렇다. 그런데 영국 정부는 핵융합 발전의 시기를 10년 앞당겨 2040년에 시작하겠다고 치고 나왔다. 영국 정부는 유럽연합 탈퇴를 전후한 2019년 하반기에 그 같은 정책을 내놓았고, 이후 종종걸음을 계속하고 있다. 지난 10월에는 컬햄에 있는 핵융합 에너지 연구 시설 말고 새로운 대규모 연구 투자 시설을 짓기 위한 후보지 5개를 발표한 바 있다. 내년 말까지 실증로(STEP, Spherical Tokamak for Energy Production)를 지을 최종 장소를 정하고, 공사에 들어가게 된다. STEP은 2040년 가동을 목표로 하며 영국 정부는 2억2200만 파운드(약 3470억원) 투자를 진행하고 있으며, 이와 별도로 R&D센터 구축을 위해 1억8400만 파운드(약 2875억원)를 더 투자한다. 영국 과학부는 또 핵융합 에너지 시대를 위한 정책과 전략 마련 작업을 서두르고 있다. 지난 10월 10일 내놓은 ‘융합 녹색 보고서’(Fusion Green Paper)는 핵융합 발전의 안정성 보장과 환경 보호를 위한 입법 활동을 예고한 바 있다.

미래 기술이라는 핵융합 에너지 실용화 시간표는 과연 앞당겨질까? 그건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민간 부문의 새로운 투자와 영국 정부의 스타트업과 같은 행보가 실용화 시간표를 앞당긴다면 큰 사건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은 핵융합 에너지 기술 분야에서 강국 중 하나다. 그 중심에는 한국 핵융합에너지연구원(원장 유석재)이 있다. 한국은 KSTAR라는 초전도 핵융합 연구장치를 갖고 있으며, 지난달 22일에는 1억도의 플라스마를 30초 살려 놓는 데 성공한 바 있다고 발표한 바 있다. 30초 기록은 세계 최초다. 플라스마가 살아 있는 시간이 300초가 되면 핵융합 발전에 쓸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리고 그간의 KSTAR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다른 선진국과 함께 컨소시엄을 만들고, 핵융합 기술 연구를 위한 시설 ITER를 프랑스 카다라시에 짓고 있다.

유석재 원장은 지난 11월 24일 전화 통화에서 “영국이 다른 ITER 회원국보다 앞선 핵융합 에너지 기술을 갖고 있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다만 정부가 민간 스타트업 기업처럼 공격적으로 투자를 하고 있어 주목받는다. 영국이 핵융합 발전 기술을 먼저 확보해 ‘퍼스트 무버’가 된다면 정치 경제적 헤게모니를 쥐게 된다고 말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유 원장은 이어 “핵융합 에너지는 2050년 탄소 배출 중립 선언 때문에 지금은 더 중요하다.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한 탄소 중립은 어느 나라에나 무겁고, 버겁다. 내가 보기에는 핵융합 에너지 외에 다른 별다른 대안도 없다”라며 “한국은 ITER를 통해 얻은 기술을 갖고 핵융합로를 지어야 하는데, 그와 맞춰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 발전소 건립을 위한 추가 R&D가 필요하며, 그 기술은 ‘갭(Gap) 기술’이라고 한다. 갭 기술 개발을 위한 R&D센터를 서둘러 지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최준석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조선일보 정치부 차장 ▷뉴델리 특파원 ▷카이로특파원 ▷주간조선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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