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EU, 반중 '철강 동맹' 결성...반도체 이어 2차 '전략자원' 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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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현·김성현 기자
입력 2021-11-01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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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강과 알루미늄이 반도체에 이어 새로운 전략 자원으로 떠오를 조짐을 보이고 있다. 친환경 기치를 내세운 미국과 유럽연합(EU)이 중국산 고탄소 철강 제품(생산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다량으로 배출하는 철강)을 겨냥한 새로운 '무역 동맹'을 결성했다.

31일(현지시간) 미국과 EU는 공동성명을 통해 "미국은 무역확장법 232조가 부과하는 관세를 적용하지 않고 EU로부터 철강과 알루미늄을 면세 수입하는 것을 허용할 것"이라며 "EU 역시 미국 제품에 대한 관련 관세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성명은 이어 "미국과 EU는 오늘 철강과 알루미늄의 대서양간 무역 흐름을 재건하고 파트너십을 강화한다"면서 "파트너십의 일환으로 탄소 집약도와 과잉 생산과 관련된 전지구적 합의를 협상할 계획"이라고 평가했다.
 

31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이 발표한 미-EU 공동협정문.[자료=백악관]


이에 따라,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지난 6월 '관세 휴전'을 선언해 보잉과 에어버스 보조금 문제로 EU와 17년이나 끌어왔던 갈등을 끝낸데 이어, 이날 협정으로 양측에 남아있던 무역 갈등을 모두 봉합했다.

양측의 철강 관세 갈등은 지난 2018년 3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행정부가 '국가안보 위협'을 명분으로 일으켰다. 당시 그는 무역확장법 232조를 적용해 미국이 수입하는 EU·중국·일본산 철강과 알루미늄에 25%와 10%의 관세를 부과했다. 이후 EU는 같은 해 6월 버번위스키, 리바이스 청바지, 할리 데이비드슨 오토바이 등 미국을 상징하는 제품에 보복관세를 매기며 맞대응했다

그러나 이번 합의에 따라, EU 측은 매년 330만톤(t)의 철강을 무관세로 미국에 수출할 수 있게 됐다. 기존의 무관세 수출 물량을 합치면 모두 430만t에 달한다. 무역 갈등 이전 수출 물량(약 500만t)의 86%를 회복한 것이다.

해당 합의 이후 바이든 대통령은 약식 회견을 통해 "대서양 협력의 새로운 시대에 접어들었다"면서 "가장 탄소 집약적인 산업의 온실가스 배출 감축을 장려할 뿐 아니라, 중국과 같은 '더러운(dirty)' 철강 시장에 대한 접근을 제한한다"고 선언했다.

같은 자리에서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이번 협정의 이름을 '글로벌 지속가능 철강 협정(Global Sustainable Steel Arrangement)'이라고 밝히면서 "이 협정은 마음이 맞는 모든 파트너에게 열려 있다"고 강조했다.
 

31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로마에서 약식 회견 중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사진=AP·연합뉴스]

 
◇'세계 1위 철강국' 중국 타격 불가피...한국 영향에도 촉각

이날 협정에 대해 31일 로이터는 "단순히 미국과 EU는 2018년 당시의 상황으로 복귀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양측이 무역 갈등을 봉합하는 데 그치지 않고, 바이든 행정부가 체제 경쟁 상대로 지목한 중국을 겨냥해 공동 행동을 내세웠다는 점에서 이전과 차별화된다는 지적이다. 

특히나, 성명문이 철강 산업의 문제로 제기한 탄소 배출 문제와 과잉 생산은 '중국산 철강'을 지목하고 있다. 이는 이후 이어진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장관의 발언에서도 확인된다.

러몬도 장관은 "미국과 유럽의 철강·알루미늄이 중국에서 만들어진 것보다 더 깨끗하다"라면서 "중국은 부족한 환경 기준 때문에 (철강·알루미늄의) 가격을 낮출 수 있었으며, 이는 기후 변화의 주된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유럽에서 미국으로 수출되는 철강은 반드시 완전히 유럽에서 생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환경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중국산 저가 철강이 국제 사회에 유통되지 못하도록 견제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해당 협정 가입국이 늘어날 경우, 철강·알루미늄 생산 과정에서 유럽뿐 아니라 각 가입국을 경유해 미국으로 반입되는 중국산 저가 철강을 뿌리뽑을 수 있다는 계산이다. 로이터는 미국 상무부가 일본과 영국 등에 '글로벌 지속가능 철강 협정' 가입을 협의하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따라서, 글로벌 지속가능 철강 협정의 규모가 커질수록 세계 최대 철강 생산국인 중국의 타격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6월 세계철강협회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2020년 기준 국가별 조강(탄소를 첨가해 만든 강철) 생산량은 중국이 10억6480만t으로 전 세계 1위였다. 뒤이어 △인도(1억30만t) △일본(8320만t) △미국(7270만t) △러시아(7160만t) △한국(6710만t) 순이었다.

미국과 EU의 철강 동맹이 우리나라에 미칠 영향에도 이목이 쏠리고 있다. 향후, 미국과 EU 측의 글로벌 지속가능 철강 협정 가입 요청도 예상될 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대미 철강 수출에도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2018년 당시 축소된 우리나라 대미 철강 수출량이 향후 EU의 대미 철강 수출이 늘어나며 더욱 위축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당시 우리나라는 대미 철강 수출 쿼터(할당량)제를 받아들이며 추가 관세 부과를 피했다. 2015~2017년 철강 완제품 평균 물량에 대한 25%의 관세 부과를 면제받는 대신 철강 수출량을 직전 3년 평균량의 70%로 제한한 것이다. 이 때문에 한국산 철강의 대미 수출 물량은 2015∼2017년 연평균 383만t 수준에서 200만t대로 대폭 축소됐다.

아울러, 철강 산업에 대한 환경 기준 강화 요구도 강화되는 만큼 '저탄소 철강' 생산 확대를 가속화하기 위한 추가 비용 투입도 예상된다. 우리 정부는 2050년 탄소중립(온실가스 순배출량 0) 목표의 일환으로 국내 철강산업의 공법을 탄소에서 친환경 수소(수소환원제철 공법)로 전환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다만, 이는 기존의 석탄 공법보다 단가가 4배에 달한다.

이와 관련해 한국철강협회 측은 "큰 틀에서 구체적인 사항이 발표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까진 전망을 언급하긴 힘들다"면서도 "기본적으로는 대미 수출에서 경쟁이 심해질 뿐 아니라, 우회적으로 중국을 제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기업 입장에서도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정부 역시 11월 1일 오후 민관 합동 긴급 대책회의를 열고 대처 방안을 모색 중이다. 해당 회의를 주재하는 주영준 산업통상자원부 산업정책실장은 "우리 수출에 대한 일정부분 영향이 불가피하기에,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할 계획"이라면서 "미국 정부와 가급적 조속한 시일 내에 협의를 추진하겠다"고 설명했다.
 

세계 최대 철강 기업 순위(왼쪽)와 국가별 조강 생산량 순위.[자료=세계철강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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