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윤영 前뉴시스 도쿄특파원·日와세다대 국제관계학 박사


오는 31일 실시되는 일본 중의원 총선거는 이제 막 출범한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정권의 향방을 가르는 한판 승부수 성격이 강하다. 이번 선거에서 집권 자민당이 어느 정도의 의석을 확보하느냐에 따라 일본 정국은 기존의 강경 보수적 성격을 유지하면서 기시다 내각이 조기에 안정 기조를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변화의 기운을 타면서 정국이 요동 상태로 빠질지 판가름 날 것이기 때문이다.
2020년 9월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내각이 출범할 당시 지지율은 74%에 달했다(요미우리신문). 1년 후 그 지지율이 30% 이하로 추락하면서 결국 스가 총리는 당 총재선거 출마까지 포기해야 했지만, 내각 출범 초기에는 높은 지지율을 누리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기시다 정권은 지난 4일 출범 후 지지율이 고작 50% 전후에 그쳤다. 내각 출범 직후의 지지율로는 역대 최저 수준이다.
일본 국민들의 기시다 내각에 대한 냉정한 평가는 무엇보다 이번 정권의 면면에서 신선한 맛을 느낄 수 없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기시다 내각이 ‘(두 차례 아베 집권과 스가 내각에 이은) 아베의 제4기 내각’이라는 혹평도 나온다. 실제로 이번 내각에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의 추종자들이 요직을 장악하고 있다. 아베의 친동생이 방위상을, 아소 다로(麻生太郞) 당 부총재의 처남이 재무상을 차지한 것이 대표적이다.
자민당의 2인자 자리인 간사장(한국의 당 사무총장격)도 아베와 아소의 대리인 격인 아마리 아키라(甘利明)가 맡아 자민당이 사실상 ‘3A(아베-아소-아마리) 체제’가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달 자민당 총재선거에서 일반 당원과 국민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던 고노 다로(河野太郞) 전 행정규제개혁담당상이 패배하고 당내 파벌간 연합으로 기시다가 당선됐을 때 자민당의 변화는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게 일본 국민들의 대체적 평가인 것이다.
기시다 신임총리는 지난 4일 내각이 출범한 지 10일 만인 14일 중의원 해산을 선언했는데, 이는 전후 일본 정치사에서 내각 출범 후 가장 빨리 이루어진 국회 해산이었다. 중의원 임기 만료(10월 21일)가 불과 1주일 남은 시점이기도 했지만, 하루라도 빨리 선거를 치르는 것이 그나마 유리할 것이라는 판단이 작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중의원 해산 후 불과 5일 만에(19일) 선거가 공고됐고, 공고 후 12일 만에(31일) 투표를 하는 초스피드전이다. 중의원은 정수 465명으로, 이 중 289명을 소선거구제(지역구)로 뽑고 나머지 176명은 비례대표로 선출한다. 비례대표는 일본 전역을 11개 권역으로 나누어서 정당별 득표율로 배분하며, 오사카와 교토 등이 포함된 긴키(近畿) 지역이 28석으로 가장 많고, 도쿄는 17석이 걸려 있다.
국회의원 선거의 핵심은 공천이라는 사실은 일본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자민당은 이번 공천과정에서도 새로운 변화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공천에서는 간사장의 영향력이 막강하다. 2016년 8월부터 기시다 내각 출범 직전까지 약 5년간 간사장을 맡았던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는 자민당 내 7개 파벌 중 넷째 규모인 니카이파의 수장이지만 강력한 당내 파워를 발휘해 왔다.
지난 2017년 중의원 총선에서 니카이 간사장은 다른 파벌의 현직 의원이 있는 선거구에 자신의 파벌과 가까운 사람들에게 공천을 주어 당내 불만과 원성이 높았다. 그때 자민당 내 최대 파벌인 호소다파(아베 전 총리 소속)는 “다음번에 반드시 우리가 간사장 자리를 갖고 온다”고 절치부심했는데, 실제로 이번에 니카이를 몰아내고 아소파지만 아베 최측근인 아마리를 그 자리에 앉혔다. 작년에 자민당이 정부로부터 받은 정당 교부금은 172억6136만엔(약 1770억원), 여기에 당원들의 당비와 기업 및 단체 후원금을 합하면 연간 수입이 429억7273만엔(약 4420억원)에 달한다. 간사장은 이 돈을 쓸 수 있는 책임자이기도 하다.
일본은 공천에서 기본적으로 현역의원을 우선시한다. 한국처럼 다선일수록 배제 위험이 커지는 일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역의원이 은퇴하거나 사망했을 경우 현련(県連, 당의 현지부연합회)과 중앙당이 공천자를 결정하지만, 해당 의원의 후원회도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공천 과정에서 현련의 목소리도 무시하기 어렵다. 이는 일본이 역사적으로 지역 독자성이 강한 데서 기인한 전통이라고 할 만하다. 일·한의원연맹 간사장인 10선의 가와무라 다케오(河村建夫) 의원은 이번 총선에서 지역구 출마 의지를 밝혀왔지만, 지역구가 속한 야마구치(山口)현의 현련이 기시다 파벌인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 전 문부과학상을 지지하기로 결정하고, 중앙당도 그쪽으로 기울자 결국 은퇴를 결정했다. 현역의원을 포기시키고 새 인물을 공천하는 경우는 지역 여론조사 결과가 강력한 설득 수단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다. 가와무라 의원은 장남 가와무라 겐이치(河村建一)에게 지역구를 물려주려 했지만, 이것도 여의치 않자 장남의 비례대표 공천을 받는 선에서 만족해야 했다.
이번 중의원 선거에서 지역구에 출마한 자민당 소속 후보는 277명으로 후보를 내지 않은 12곳 중 9곳은 정권 연립관계인 공명당 후보가 나오는 곳이다. 나머지 3곳은 의원의 불상사로 탈당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오는 경우로, 당선되면 복당할 가능성이 높다. 자민당 출마자 중 2012년 제2차 아베 내각 이후 당선된, 초선에서 3선까지 의원들을 가리키는 이른바 ‘아베 키즈’가 107명에 달한다. 한 언론사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 중 당선 가능성이 높은 의원은 30%에 불과하다. 지역 기반보다는 아베의 인기를 타고 쉽게 당선됐던 이들이 아베와 자민당의 인기 하락으로 고전하게 됐다는 것이다. 자민당의 기존 의석 상실분은 주로 이들에게서 나올 전망이다.
‘아베 키즈’들은 특히 정부에 불만이 많은 도시 지역에서 고전 중인데 일본은 일반적으로 도시는 진보, 농촌은 보수 성향이 강한 편이다. 물론 이는 일반적 경향이고 선거 이슈에 따라 민심이 요동치는 것은 한국과 다를 바 없다. 2005년 당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가 주도한 우정 민영화 사업이 국회 반대에 부딪히자 중의원을 해산하고 총선거를 실시했을 때는 도쿄를 비롯한 도시 지역의 자민당 지지가 대폭 상승했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는 코로나19 대응과 경제침체 등이 주요 이슈로 등장하고 있어 자민당에 유리할 게 없어 보인다.
지역적으로 독특한 투표 경향을 보이는 곳으로는 오사카와 오키나와를 꼽을 수 있다. 오사카는 일본 제2의 도시지만, 강경 보수 정당인 일본유신회가 강하다. 이는 오사카가 정치적 보수색이 짙어서라기보다는 전통적으로 중앙에 대한 반발이 강한 오사카의 지역 심리를 일본유신회가 잘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오키나와는 도시지역이 적으면서도 진보 성향이 강한데 이는 주일미군 주둔 반대 등의 주민 정서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일본공산당이 유일한 지역구 의석을 갖고 있는 곳이 오키나와이다.
선거 때마다 나오는 단골 메뉴인 세습 정치에 대한 논란은 이번 총선에서도 피해가지 않았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1996년 이후 여덟 차례의 총선에서 세습 정치인이 당선된 확률은 80%로, 비세습 후보의 당선 확률 30%보다 월등히 높았다. 세습 정치인은 부모 또는 3촌 이내 친인척으로부터 지역구 전체 또는 일부를 물려받은 정치인을 뜻한다. 세습 후보의 70%는 자민당 소속이었다. 이들은 부모로부터 후원단체와 지명도, 자금이라는 강력한 세 가지 정치적 무기를 물려받음으로써 정치 입문과정에서부터 유리한 위치에 설 수밖에 없다. 2017년 총선에서 자민당 당선자 중 세습 후보는 83명으로 전체의 29%였다. 이들에 대해서는 정치 가문에서 자라 일찌감치 정치에 익숙하고 정책과 국회 운영에 능숙하다는 긍정적 평가도 없지 않지만, 그보다는 이들의 기득권이 다양한 인재의 정계 진입에 장벽이 되고 있다는 비판이 높다. 자민당 간사장에서 물러난 니카이가 이번 선거에서 지역구를 아들에게 물려준다는 이야기가 돌았지만, 아들 후계문제가 정리되지 않자 본인이 다시 13선에 도전하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다.
기시다 총리는 이번 총선 목표로 연립 공명당 의석까지 합쳐 과반(233명) 확보를 제시했다. 기존의 자민당 276석, 공명당 29석을 합친 305석에 비해 대폭 줄어든 것이다. 목표치를 낮춤으로써 결과에 대한 책임을 줄여보려는 의도로 읽히지만, 어쨌든 자민당 의석이 기존보다 줄어드는 것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일본 언론의 관심은 자민당이 단독 과반을 차지할 수 있을 것인지에 모아지고 있으며, 자민-공명 연합이 과반을 넘기는 것은 가능할 것이라는 게 대체적 전망이다. 자민당이 2012년 제2차 아베 내각 출범 이래 세 차례 총선에서 모두 무난히 단독 과반을 넘긴 사실을 감안하면, 자민당의 하락세는 분명해진다.
자민당의 하락세와 대조적으로 일본 야당들의 공세는 한층 치열해졌다. 입헌민주당 등 주요 5개 야당들은 이번에 전체 지역구의 75%인 217곳에서 단일후보를 냈다. 2009년 중의원 총선에서 사상 첫 정권교체를 이루었던 ‘기적’이 이번에 재현될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그 기반을 구축할 가능성마저 배제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의 에다노 유키오(枝野幸男) 대표는 이번 총선에서의 정권교체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오타니 쇼헤이(大谷翔平)의 타율 정도?”라고 받아넘겼다.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에서 투수와 타자로 겸업하면서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는 일본 야구선수 오타니의 타율은 2할5푼 정도이다.
일본 한 언론사에서 실시한 조사에서 이번 선거에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로 가장 많이 꼽힌 답변이 아베의 ‘사학 스캔들’로 나왔다. 이번 총선이 새로운 기시다 내각에 대한 평가라기보다는 기존의 ‘아베 시대’에 대한 청산 성격을 띠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예라고 할 수 있다. 코로나19 사태와 미·중 갈등 고조 등 대내외 정세 변화에 따라 앞으로 일본의 정치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지가 이번 총선에서 결정된다는 점에서 그 과정과 결과에 관심이 쏠리지 않을 수 없다.
 
조윤영 필자 주요 이력

△이화여대 북한학 석사 △일본 와세다대 국제관계학 석·박사 △뉴시스 도쿄특파원 △<北朝鮮のリアル(북한의 현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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