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현지시간) 파이내셜타임스(FT)는 중국 당국의 전력 공급 제한 정책이 국제 공급망에 장기간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전력 부족으로 전 세계에 제품을 공급하는 중국 공장의 생산 능력이 제한되고 있기 때문이다. 해당 정책은 석탄을 주전력원으로 사용하는 중국 당국이 지난해 호주로부터의 석탄 수입을 중지한 후 전력 생산량이 부족해지자, 최근 동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20여개 성에서 시행하고 있다.
FT는 이 여파로 최근 중국 내 제조업체의 일간 생산 능력이 20~40%가량 하락했으며, 이들 기업의 생산 비용도 늘어났다고 지적했다. 비상 전력용 디젤 발전기를 도입해 약 5배의 추가 비용을 들여 전력을 사용하고, 모자란 생산량을 채우기 위해 야간 근무를 실시하거나 빠른 배송을 위해 해상 운송 대신 항공 운송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인플레이션 추가 압력과 광범위한 재고 부족으로 중국에서 생산한 물품의 해외 공급 기간(리드타임)은 길어지고 있다.
다만, 전문가들은 이번 전력 공급 제한 정책이 중국 전력시장 전면 자유화의 첫 단계라며 우려하고 있다. 전력 요금을 높여 에너지 수요를 낮추려는 당국의 목표가 향후 중국 내 제조업체들에는 생산비용 증가와 공급 물량 축소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지난 12일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NDRC)는 석탄 화력 발전으로 생산한 전력에 한해 가격 완전 자유화 방침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중국 당국은 해당 전력 요금의 상한선을 기존 10%에서 20%로 확대하고, 에너지 고(高) 소비 기업에는 요금 상한선 적용을 폐지한다.
이와 관련해 토마스 루디 베인앤드컴퍼니(Bain & Company) 에너지 분석가는 "연말까지 중국 일부 기업에서 전력 부족 사태가 다시 발생할 수 있다"면서 "전력 가격 인상으로 일부 제조업체가 생산을 중단한다면 중국의 전력 부족 사태는 완화하겠지만, 소규모 제철소와 같은 전력 소비에 비효율적인 업체가 초기 희생자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실제로도 중국의 에너지 위기 여파로 최근 각종 금속 상품의 거래 가격은 연일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전문가들의 인플레이션 전망도 더욱 악화하고 있다.
FT와 닛케이아시아는 지난 15일과 18일 각각 중국 에너지 위기에 따른 금속 가격 급등세 상황을 지적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상품 수요 급등과 각국의 탄소중립(온실가스 순배출량 0) 전환 과정에서 신재생 발전 설비에 필요한 금속 수요가 높아진 반면, 에너지 위기로 중국 내 다수의 제철소가 멈춰서며 금속 상품 공급은 줄었다는 것이다.
국제 비철금속 거래의 중심지인 런던금속거래소(LME)에서 지난 15일 구리 가격은 톤당 1만 달러(약 1188만원)를 넘어섰으며 아연 가격은 10% 이상 뛰어올라 15년 만에 최고치를, 알루미늄 가격은 2008년 국제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특히, LME의 구리 재고는 2개월 사이 27% 급감하면서 현물 가격이 향후 3개월간 선물 계약가보다 350달러나 프리미엄이 붙은 가격에 거래돼, '백워데이션'(Back-wardation·역조시장, 현물 고평가)을 형성한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닛케이아시아는 "중국은 전 세계 주요 정제 금속 수요의 3분의1을 공급하는 최대 수출국이기에, 중국의 공급 부족 상황은 원자재 상품의 국제 기준가(글로벌 벤치마크) 상승으로 이어진다"면서 일본 스미토모 상사의 혼마 다카유키 경제부장을 인용해 "지금 중국은 오히려 국내 정제 금속 공급량이 부족해 해외에서 이를 수입하고 있을 정도"라고 설명했다.
한편, 중국의 에너지 위기와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인플레이션 장기화를 우려하는 경제 전문가들도 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지난 8~12일 재계·경제학계·금융업계 전문가 6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경제 전망 설문에서 올해 12월 물가 상승률 예상치 평균은 5.25%로 집계됐다. 또한, 내년 6월과 내년 말에도 각각 3.4%와 2.6%였다. 코로나19 사태 이전 10년간 물가 상승률 평균치는 1.8%였으며, 대부분의 전문가기 내년 말까지도 물가 상황이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목표치인 2% 수준을 웃돌 것으로 본 것이다.
특히, 이들 전문가 중 절반은 향후 12∼18개월간 국제 경제를 가장 위협할 요소로 '공급망 병목 현상'을 꼽았으며, 이 중 45%가 내년 하반기에야 공급망 혼란 사태가 해소할 것으로 봤다. 앞서 지난해부터 올해 초까지 주요 위협 요소로 지목돼왔던 코로나19 유행세는 이번 조사에선 8.2%에 그쳤다.
이에 대해 다이와캐피탈아메리카의 마이클 모란 수석 경제학자는 "공급망 혼란, 노동력 부족, 초완화적 통화·재정 정책이 어우러진 '퍼펙트 스톰'(초대형 복합 위기)"이라고 진단했으며, 글로벌 회계·컨설팅 기업 KPMG의 콘스탄스 헌터 수석 경제학자는 "내년은 여러가지로 복잡한 한해가 될 수 있다. 경제 성장세가 강하더라도 기업과 소비자가 고물가 시대를 헤쳐나가기 어려울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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