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美 반도체 기밀 요청에 일언반구 못하는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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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지 기자
입력 2021-10-0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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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이 (미국 정부의 요구에) 개별로 대응하는 것은 사실상 어려운 일이다. 설문에 답하려면 법률적 검토도 필요한 상황이다.”

국내 반도체 업계 한 관계자의 말이다. 미국 상무부가 글로벌 반도체 공급난 원인 파악을 이유로 전 세계 반도체 기업들에 정보 공개를 요구하고 나선 지 보름가량이 지났다. 국내 기업들은 이 같은 미국 정부의 요구에 곤혹스러운 상황이다.

기업들이 개별적으로 미국 정부의 요구에 대응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게 사실상 업계 시각이다. 일부 기업들은 영업비밀 등에 있어 치명적인 영향이 불가피해 법률적 검토까지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들이 법률적 검토까지 필요한 주요 요인에는 고객사와의 계약이 있다. 해당 설문에 응할 경우 영업비밀 공개 등으로 고객사와의 계약을 위반하는 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설문에 응하지 않으면 미국 정부의 ‘별도 조치’를 받을 수 있어 어떤 결정도 쉽게 내릴 수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인 것이다.

지난달 미국 정부는 45일 내로 반도체 재고와 주문, 판매 등 공급망 정보를 담은 설문지를 ‘자발적으로’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물론 국내 반도체 부품 관련 일부 기업들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진다. 기업들은 내달 8일까지 설문에 응해야 한다. 다만 이와 함께 정보를 제출하지 않으면 별도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도 밝혔다.

이런 상황과 달리 우리 정부의 대응은 너무 소극적이라는 지적이 연일 터져 나온다. 우리 정부의 대처가 너무 미온적이라고 뜻이다. 반도체는 최근 각국 정부가 나서서 챙길 만큼 국가 경쟁력을 결정하는 핵심 산업 중 하나로 꼽힌다. 미국 정부가 이번 설문에 나선 것도 이러한 흐름의 일환이다.

그러나 지난 5일에서야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양자 회담을 하고, “요청 자료 범위가 방대하고 영업비밀도 다수 포함돼 국내의 우려가 큰 상황”이라고 처음 미국 측에 입장을 전달했다. 설문 기한까지 약 한 달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서다.

이미 세계 1위 파운드리(위탁생산) 업체인 대만 TSMC는 발 빠르게 미국 정부에 자료 제출을 거부하는 입장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기업들도 좀 더 신속한 대응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일단 우리 정부는 미국 측과 지난 5월 한미정상회담 이후 구축된 양측간 반도체 협력 파트너십을 토대로 다양한 채널을 통해 협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또한 이달 중순 예정된 제1차 대외경제안보전략회의에서 이 문제에 대해 중점적으로 논의한다는 계획이다. 이번 회의에서는 말뿐만이 아닌 정부의 실질적인 대응책이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 향후 정부의 귀추가 주목된다.
 

[산업부 김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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