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처벌보단 예방에 집중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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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경 기자
입력 2021-08-28 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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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경 혁신성장기업부 기자
 

내년 1월 본격적인 시행을 앞둔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 전부터 노사 모두에게 환영받지 못하며 삐걱거리고 있다. 법안의 내용이 현장과는 상당한 괴리가 있어서다. 경영계는 경영책임자의 의무와 범위가 모호하다고 지적하고, 노동계는 핵심 조항이 모두 빠진 '반쪽짜리' 법안이라고 비판한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중대한 인명 피해를 주는 산업재해가 발생했을 시 사업주에 대한 형사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을 핵심으로 한 법안이다. 안전사고로 노동자가 사망할 경우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에게 1년 이상의 징역이나 10억원 이하의 벌금을, 법인에는 50억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또 노동자가 다치거나 질병에 걸릴 경우에는 7년 이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하지만 강도 높은 처벌 수위와 달리 법안 내용은 처벌 대상에 대해 구체적인 범위와 기준조차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실제 시행령 제정안에는 안전보건 관리체계 구축 의무에 안전보건에 관한 인력·시설·장비 등을 갖추는 데 적정한 예산을 편성하는 것은 포함됐지만, 구체적인 기준은 제시하지 않았다.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의무를 구체화한 시행령안 4조에는 의무를 규정하면서 ‘충실하게 수행’ ‘적정한 예산 편성’ 등 추상적인 형용사를 사용해 기업이 명확한 기준을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안전보건에 관한 인력의 경우 노동계가 강하게 요구해온 2인 1조 작업과 신호수 투입 등의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이외에도 과로사의 주원인인 뇌·심혈관계 질환, 직업상 암, 근골격계 질환 등이 법 적용 대상에서 모두 제외됐다. 경영계는 물론이고 노동계도 나서서 보완 입법을 요구하는 이유다.

산업재해는 매우 복합적인 요인에서 기인해 발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후 책임을 따지기보다는 사전에 안전관리에 대한 책임을 다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돼야 실질적인 효과를 나타낼 수 있다. 이미 많은 선진국에선 처벌보단 예방에 중점을 둔 법안을 실행 중이다. 유럽연합(EU)과 독일의 경우 중대재해 발생원인을 기업의 안전보건 투자재원 부족, 안전보건 역량·기술 부족, 그리고 안전보건 정보의 부족에 있다고 진단하고 제재보다는 경제적 인센티브를 함께 운영하고 있다.

'처벌'은 제재일 뿐, 그 자체가 대책이 될 수 없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충분한 시간을 갖고 의견을 모아 노동자와 기업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합리적인 법안을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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