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낭기의 관점]징벌적 손해배상, 미국 본받아야 바른 언론 만들 수 있다

김낭기 논설고문입력 : 2021-08-26 14:35
미국 대법원, "허위보도라도 언론사 악의 입증 못하면 무죄" "징벌적 손해배상 함부로 인정하면 언론은 숨 쉴 공간 잃어" 자유 언론 죽으면 권력 감시·공화국 정신 수호 불가능해져

[연합뉴스] 국민의힘 의원들이 더불어민주당의 언론중재법 개정안 강행 처리를 규탄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밀어붙이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의 근본 취지에도 어긋나고 언론의 명예훼손 책임을 엄격히 제한하는 자유 언론 정신에도 어긋난다. 나아가 헌법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의 ‘공화국’ 원리에도 위배된다.

민주당은 ‘피해 구제 강화’를 명분으로 내세운다. 그러나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의 근본 취지는 피해 구제가 아니다. 말 그대로 ‘징벌’ 즉 응징이다. 잘못된 보도로 피해를 입힌 언론사를 응징해 그 언론사뿐만 아니라 다른 언론사도 유사한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단순한 피해 구제는 징벌적 손해배상이 아니라 ‘일반적(보상적) 손해배상’이라고 한다. 피해자가 입은 실제 손해만큼 보상하는 것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은 실제 손해뿐 아니라 추가로 그 몇 배를 배상해 준다. 그 추가 배상을 통해 응징의 효과를 노린다. 원래 범법 행위에 대한 응징은 개인 간 민사소송을 통해서가 아니라 국가가 형벌권을 발동해서 하는 게 근대 법치국가의 원리다. 그런데 개인 간 모든 일을 국가가 개입해서 형사처벌하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고 꼭 좋은 일만도 아니라는 미국적 전통에서  생겨난 게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다. 형사 처벌 대신 실제 손해액보다 몇 배 큰 배상액을 물려 형사 처벌에 준하는 범죄 억제 효과를 보려는 게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의 근본 취지다.

'피해 구제' 명분 징벌적 손해배상 주장은 억지

우리나라 형법에는 명예훼손을 형사 처벌하게 돼 있다. 또 민법에는 명예훼손 등으로 손해를 끼치면 보상적 손해배상을 하게 돼 있다. 응징 측면에서나 피해 구제 측면에서나 이미 모든 장치가 마련돼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피해 구제’를 명분으로 형사 처벌에 준하는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도입한다니 억지도 이런 억지가 없다.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가장 발달한 곳이 미국이다. 미국에서는 성문법이 아니라 법원 판례를 통해 이 제도가 생겨났다. 그 유래를 살펴보면 이 제도의 근본 취지를 알 수 있다. 미국에서 징벌적 손해배상 판결이 처음 나온 것은 1791년이다. 당시 뉴저지주 법원은 ‘실제 손해액이 아니라 장래의 유사한 불법행위의 재발을 억제하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본보기가 될 정도로 고액의 배상액을 물려야 한다’고 했다. 1851년 연방대법원이 징벌적 손해배상 판결을 내리면서 이 제도는 미국에서 뿌리내리게 됐다. 연방대법원은 ‘악의적 위법행위를 한 사람은 형사 처벌과 같은 효과를 내는 제재로 응징받아야 한다’라고 했다.

그런 미국에서도 징벌적 손해배상은 일반적(보상적) 손해배상과 다르게 엄격히 취급한다. 1996년에 도입된 ‘징벌적 손해배상 모델법’에 그 내용이 잘 나와 있다. 우선 요건이 엄격하다. 단순한 위법 행위가 아니라 ‘크게 비난 받아 마땅한’ 위법 행위라야 한다. ‘악질적이거나 의식적으로’ 다른 사람의 권리 또는 이익을 침해한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또 하나는 증거의 엄격성과 입증 책임이다. 악의적이거나 의식적인 위법 행위라는 ‘명백하고 확실한 증거’를 ‘피해자’가 제시해야 한다. ‘명백하고 확실한 증거’라고 함으로써 일반적 손해배상 소송에서 요구되는 ‘우월한 증거’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증거를 요건으로 규정하고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에 이런 엄격한 요건을 요구하는 것은 이 제도가 형사 처벌에 준하는 응징을 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밀어불이는 언론중재법은 징벌적 손해배상의 요건을 ‘고의 또는 중과실’로 ‘허위·조작 보도’를 한 경우로 했다. 그러나 무엇이 ‘고의 또는 중과실’이고 ‘허위·조작’인지가 애매하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이 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고의 또는 중과실’이 아니라는 입증 책임을 언론에 지우고 있다는 점이다. 이 법은 피해자가 문제 삼으면 고의 또는 중과실로 ‘추정’하도록 하고 있다. 언론사가 고의나 중과실이 아니라는 증거를 대지 못하면 고의나 중과실로 인정되는 것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에는 ‘우월한 증거’가 아니라 ‘명백하고 확실한 증거’를 ‘피해자’가 제시하도록 한 미국과는 전혀 다르다. 

언론 제 역할 하려면  '숨 쉴 공간' 보장돼야

바로 그래서 언론중재법은 자유 언론 정신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자유 언론 정신이 무엇인지를 교과서처럼 보여주는 판결이 있다. 미국 연방대법원의 1964년 ‘뉴욕타임스 대 설리번’ 사건 판결이다. 설리번은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카운티의 경찰서장으로서 흑인 인권 시위 진압 책임을 맡고 있었다. 설리반은 뉴욕타임스가 사실과 다른 내용으로 명예를 훼손했다며 소송을 냈다. 결과는 패배였다. 연방대법원은 “공직자가 언론에 명예훼손 책임을 물으려면 언론의 ‘악의’를 입증해야 한다”고 했다. 악의란 ‘도덕적으로 나쁜’이란 뜻이 아니다. ‘진실이 아님을 뻔히 알면서 또는 진실인지 아닌지를 무모하게 무시하면서’ 보도한 경우다. ‘무모하게 무시하면서’란 진실인지 아닌지가 불확실하고 중요한 상황에서 ‘진실이 아니라도 그만이다’고 하는 ‘아니면 말고’식의 보도를 말한다. 결과적으로 허위 보도라고 하더라도 ‘악의’가 입증되지 않으면 명예훼손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게 이 판결의 취지다.

이 판결이 갖는 의미는 공직자가 언론에 함부로 명예훼손 책임을 물을 수 없도록 해서 공직자에 대한 언론의 자유로운 보도를 최대한 보장했다는 점이다. 대법원은 “공적 토론이 활발히 이뤄지려면 언론이 정부나 공직자에 대해 자유롭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며 “그러려면 언론에 ‘숨 쉴 공간’이 보장돼야 한다”고 했다. 숨 쉴 공간이란 언론 보도에서 사실과 다른 내용을 완전히 배제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언론에 너무 가혹한 책임을 물어서는 안 된다는 개념이다. 사람이 숨 쉴 공간이 없으면  질식하듯, 언론도 명예훼손 책임의 위험에 시달리면 스스로 위축되거나 자기 검열에 빠져 자유로운 보도를 할 수 없다고 했다. 숨 쉴 공간을 보장하려면 피해자에게 언론의 악의에 대한 입증 책임을 지워야 한다고 했다. 

연방대법원은 ‘악의’ 이론을 처음에는 공직자에게만 적용했다가 차차 범위를 넓혀 ‘공인’에게도 적용했다. 공인이란 영화배우, 스포츠 스타, 대기업 경영자, 중대 사건 범죄자, 기타 이런저런 일로 언론에 종종 등장하는 인물을 말한다. 그리고 마침내 1974년에는 일반 시민에게까지 확대했다. 다만 공직자나 공인의 경우보다는 좀 완화했다. 언론에 실제 손해액의 배상을 요구하는 일반적(보상적) 손해배상에서는 적용하지 않고 징벌적 손해배상을 요구할 때만 적용한 것이다. 이에 따라 일반 시민도 보상적 손해배상에서는 허위 보도라는 것만을 입증하면 됐지만, 징벌적 손해배상에서는 더 나아가 언론의 ‘악의’를 입증해야 하게 됐다.

언론중재법은 공직자와 대기업 임원 등도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게 했다가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현직 고위 공직자와 대기업 임원은 제외했다. 그러나 전직 공직자나 대기업 임원, 전현직 고위 공직자나 대기업 임원의 가족은 제외했다. 이들은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따라서 언론이 전직 대통령·청와대 비서관·장관·국회의원과 그들 가족의 비리를 보도할 때 징벌적 손해배상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스스로 위축되고 자기 검열에 빠질 수 있다. ‘숨 쉴 공간’이 사라지는 것이다. 일반 시민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전현직 공직자나 대기업 임원 비리를 보도하다가 보면 그들과 연관된 일반 시민도 보도 대상이 될 수 있다. 이 경우 그 시민이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고 이를 의식한 언론은 결국 그 공직자나 대기업 임원 관련 비리를 자유롭게 보도하지 못할 위험이 있다.

언론중재법은 이처럼 언론의 ‘숨 쉴 공간’을 뺏어간다는 점에서 자유 언론 정신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미국도 ‘뉴욕타임스 대 설리번’ 사건 판결 이전에는 언론의 명예훼손이 쉽게 인정됐다. 그러나 설리번 판결의 ‘악의’ 이론 이후에는  명예훼손 소송에서 언론이 패소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한다. 그만큼 언론의 숨 쉴 공간이 넓어진 것이다.

미국이 자유 언론을 중시하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공화국’의 정신을 지키기 위해서다. ‘공화’는 민주주의와는 다른 개념이다. 민주주의가 ‘다수의 지배’라는 지배 방식을 말한다면, 공화는 ‘공공에 관한’ ‘공적인 일에 관한’이라는 의미로서 권력이 공공의 이익 즉 국민 전체의 이익을 위해 사용되는 것을 뜻한다. 공화주의 철학을 이론적으로 정리한 사람이 <군주론>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정치가 마키아벨리다. 그는 <로마사 논고>라는 책에서 공화주의의 핵심을 권력에 대한 감시로 보았다. 아무리 민주주의라도 권력을 감시하지 않으면 권력자가 권력을 사유화해 부패에 빠지게 되고 이는 공화주의에 반한다고 했다.

 언론 죽으면 권력 비리·부패 막을 수 없어

마키아벨리는 권력 감시를 위한 방식으로 세 가지를 제시했다. 권력 분할 및 상호 견제, 시민의 자유, 법치주의다. 권력 분할 및 상호 견제란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삼권(입법, 행정,사법권) 분립’을 말한다. 법치주의는 정부 또는 권력자가 권력을 행사할 때는 법의 제한 아래에서 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시민의 자유란 정부나 권력자를 비판할 수 있는 자유를 말한다. 마키아벨리는 시민의 자유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자유가 집회와 토론의 자유라고 했다. 시민들이 권력을 비판하려면 자유롭게 모이고 공적 사안에 대해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마키아벨리가 말한 공화주의 원리를 세계 최초로 헌법에 구현한 나라다. 헌법에 입법, 행정, 사법권을 규정하고 이들이 서로 견제하는 체제를 만들었다. 또한 ‘표현의 자유’를 수정헌법 제1조에 규정하고 어떤 경우에도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는 법을 만들지 못하게 했다. 표현의 자유의 핵심이 언론의 자유다. 미국 헌법은 또한 ‘적법 절차’ 규정을 만들어 정부의 모든 권력 행사는 적법 절차를 따르도록 의무화했다. 법치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였다.

지금 한국은 3권 분립이 붕괴돼 있다. 의회에서는 다수당의 입법 독재가 횡행한다. 국회와 행정부를 견제해야 할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정권과 이념이 맞는 ‘코드 인사’로 그 독립성과 공정성을 불신받고 있다. 권력의 비리와 부패를 감시해야 할 검찰은 한때 반짝했다가 다시 정권 하수인으로 전락했다. 이제 남은 것은 언론뿐이다. 언론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 권력 감시다. 언론은 공화주의를 지키는 핵심 제도다. 그런데 그 언론마저 숨 쉴 공간을 주지 않고 옥죄고 있다. 언론이 죽으면 권력 비리와 부패에 대한 감시는 불가능하다. ‘민주’는 될지 몰라도 ‘공화’는 멀어진다. 그 피해는 나라와 국민에게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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