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인 올림픽이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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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철 전남대학교 연구석좌교수
입력 2021-08-04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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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철 교수]


[박상철의 100투더퓨처] 금년 여름 도쿄에서 열리고 있는 ‘2020도쿄올림픽’은 참 희한한 대회이다. 2020년 개최되었어야 할 올림픽 대회가 우여곡절 끝에 한 해 건너 뛰어 2021년 개최되는 것도 그러하거니와, 관중이 하나도 없는 오직 운동선수들만의 경연대회로 그치고 있는 것도 안타깝기 짝이 없는 일이다. 코비드19 팬데믹이라는 세기적 역병이 지구를 강타하여 부득이한 조치일 수밖에 없다고 자위할 수도 있겠지만 전 세계의 스포츠맨들이 각 분야에서 최고의 역량을 과시하면서 경쟁하는 마당에 환호와 박수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은 너무도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하여 경쟁하는 선수들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내는 데 인색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양궁을 비롯한 일부 분야에서 우리나라의 신예선수들이 탁월한 역량을 과시하여 위안으로 삼아본다.

올림픽과 같은, 체력을 경쟁하는 경기는 바로 인간 승리의 표상이다.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고 보다 나은 기록을 달성하기 위하여 피땀 흘려 노력한 결과를 가지고 한계를 넘어서려는 경쟁은 운명을 극복하는 인간의 빛나는 일이다. 이와 비슷한 스포츠 대회들이 세계 도처에서 열리고 있지만 대부분 최고 기록을 놓고 경합하기 때문에 체력이 극대화되어 있는 20대 청년들이 대회의 메달을 석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더러 30대 또는 40대가 입상하면 특별한 뉴스가 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연령에 따른 체력 차이를 인정하고 각종 경기를 연령대별로 경쟁하는 것이 보다 정당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마스터스 경기 대회’라는 이름으로 연령대별 경기 대회를 개최하였다.

마스터스 대회는 1966년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데이비드 페인이 참가 연령을 40세 이상으로 제한한 트랙과 필드 경기를 개최하면서 시작되었다. 1968년 제1회 미국 마스터스 챔피언 대회가 열렸고, 이후 미국과 캐나다가 함께 개최하였으며, 유럽과 남미로 확대되었다. 이어 1975년 토론토에서 세계 대회를 개최하였고, 1977년 세계베테랑경기연맹(World Association of Veteran Athletes)을 구성하였으며, 2001년부터 세계마스터스경기연맹(World Masters Athletics)으로 공식 명칭을 바꾸어 2년마다 세계 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대회는 35세 이상으로 출전이 제한되어 있으며, 연령은 35세부터 시작하여 5세 단위로 35세, 40세, 45세··· 95세까지 구분되어 있었는데 최근에는 100세, 105세급이 신설되었다. 각 연령별 트랙 경기로는 100m, 200m, 400m, 800m, 1500m 등의 달리기가 있고, 필드 경기로는 높이뛰기, 장대높이뛰기, 멀리뛰기, 삼단뛰기, 포환던지기, 웨이트던지기, 창던지기, 해머던지기, 원반던지기 등이 포함되어 있다.

마스터스 프로그램이 특별한 이유는 각 연령대별로 경기 기록이 경신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인간의 한계수명으로 생명의 최종순간에 있다고 간주되어온 백세인들이 100세급, 105세급에서 놀라운 기록들을 세우고 있다. 바로 백세인 올림픽대회가 열리게 된 셈이다. 100세급 100m 경기 기록은 영국의 파우자 싱이 23.4초, 105세급으로는 폴란드의 스타니슬라프 코발스키가 34.5초의 기록을 갖고 있다. 100세급의 참여도 놀랍지만 105세인도 달리기 경주에 참여한 점은 엄청난 일이 아닐 수 없다. 마라톤에서는 파우자 싱이 8시간 25분 17초의 기록으로 완주하였고, 높이뛰기 100세급에서는 미국의 도널드 펠만이 0.9m를, 삼단뛰기는 이탈리아의 주세페 오타비아니가 3.54m를, 해머던지기는 미국의 트렌트 레인이 11.32m를, 창던지기는 일본의 다카시 시모카와라가 12.42m를, 5000m 경보는 남아공의 필립 라비노비츠가 47.59분을 기록했다. 여성도 마찬가지로 100세급 100m 달리기에서는 미국의 줄리아 호킨스가 39.62초, 호주의 루스 프리스는 포환던지기에서 4.48m, 원반던지기에서 9.3m, 창던지기에서 6.43m 등의 다양한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우리나라에는 노년층의 마스터스 경기 대회가 아직 널리 알려지거나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 중장년을 대상으로 펼쳐지는 대회가 있지만 100세급 같은 초고령인의 경연은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백세인 조사 과정에서 팔굽혀펴기 100회를 거뜬히 하는 분, 날마다 지게를 메고 밭에 나가 일하는 분, 새벽마다 자전거 타고 돌며 동네일에 참견하는 분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런 분들은 제도적인 경기 시스템에 익숙지 않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지 체력적으로는 세계 마스터스 경기 대회에 참가할 만한 충분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고 본다. 적어도 ‘백세인 현상’이 세계적 흐름임에 비추어 우리나라 백세인들도 국제적 스포츠 경기에 당당하게 참여하여 장수 한국의 진면목을 과시할 날이 빨리 오기를 기대해 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가 또는 지역 사회에서 이런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적극 홍보하고 지원하는 일이 필요하다.

인구 고령화가 가속화되면서 연령차별주의(ageism)적인 사고가 트렌드화되고 노화에 따라 신체 능력이 저하되는 것을 폄하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상황에서, 마스터스 경기 대회의 개최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서로 다른 연령대와 충돌하거나 비교당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어 연령대별로 고유성과 정체성을 가지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의미는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남들과 당당하게 경쟁하기 위하여 훈련하는 면모를 보여 주는 데 있다. 나이에 상관없이 어떠한 노력도 할 수 있고 어떠한 경쟁도 가능하다는 것은 생명의 무한한 가능성과 소중함의 의미를 보다 깊게 새겨줄 수 있다. 나이 들었다는 사실이 스스로를 사회에서 소외시키거나 일 앞에서 망설이는 명분이 될 수 없음을 마스터스 경기 대회를 통해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백세인 올림픽에서 백세인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하여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는 사실은 초장수사회에 제기되고 있는 장수 위기 또는 장수 부채를 극복하는 방안이 가능할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백살이 넘어서도 경연에 참여하여 연습과 훈련을 지속하고 있다는 점은 초장수사회에 연부역강(年富力强)의 청신호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박상철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장 ▷국제백신연구소한국후원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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