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수정의 여행 in] 순백의 자작나무 숲길·칠흑 속 쏟아지는 별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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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영양(경북)=기수정 문화팀 팀장
입력 2021-07-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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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친 마음 위로하는 영양 '오지의 낮과 밤'

  • 축구장 40배 국내 최대 규모 죽파리 인공숲

  • 휴대전화도 안 터지는 산골…청정자연 만끽

  • 천문대에서 만나는 반딧불이·별자리 체험도

영양 수비면 죽파리 자작나무 숲 전경. 수령 30년 된 자작나무가 숲을 이루는 이곳은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사진=기수정 기자 ]

경북 영양에 다녀왔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그곳으로 향한 까닭은, 아마도 때묻지 않은 자연 속에서 오롯이 위안을 얻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영양의 낮과 밤은 기대 이상으로 청정했고, 풍광은 아름다웠다. 낮에는 순백의 자작나무 숲길이 뽐내는 자태가, 밤에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쏟아지는 별빛이 지친 마음을 어루만졌다. 

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 소리, 흘러내리는 물소리, 지저귀는 새소리······. 고요를 뚫고 들려오는 모든 소리에 귀를 기울였고, 마음을 뺏겼다.

오지마을에서 보낸 하루가 무척 불편하지 않았냐고 묻는 이에게 대답했다. 휴대전화의 신호조차 잡히지 않는 불편함도 감사하게 느껴졌다고. 어지러운 일상으로 돌아온 지금, 때묻지 않은 자연을 오롯이 만끽했던 그 시간이 몹시 그립다고. 
 

영양 수비면 죽파리 자작나무 숲[사진=기수정 기자]

◆영양의 낮, 순백의 길이 심신을 치유하다

얼마 전 영화 <남과 여>를 다시 봤다. 등장인물의 관계나 줄거리가 아닌, 하얀 눈이 무릎까지 차올라 걷기조차 힘든 설원과 양 옆으로 길게 늘어선 자작나무였다. 가장 순결하면서도 완벽한 '순백'의 세상에 마음을 뺏겼다. 아마도 소중한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한 서글픔 때문인 듯했다. 

수비면 죽파리에 '국내 최대 규모'로 조성된 '자작나무 숲'은 청정지역 영양을 여행 목적지로 정한 큰 이유였다. 물론 겨울이 아니라 완벽한 순백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좋았다. 하늘을 향해 곧게 선 자작나무를 본다는 생각에 가슴이 떨렸다.

조선시대 보부상들이 정착하면서 개척한 것으로 알려진 죽파리는 대나무가 많다고 해서 '죽파(竹坡)'로 이름 붙었다. 과연 검마산 아래 단 40여가구만 모여 사는 산골 마을다웠다. 세상과의 연결을 끊어내듯, 휴대전화조차 터지지 않는다. 명품 숲만 드넓게 펼쳐져 있을 뿐. 

죽파리 자작나무 숲은 인공 숲이다. 1993년, 산림청은 검마산 일대에 자작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축구장 40개에 달하는 30.6ha에 약 12만 그루의 자작나무(수령 30년생)가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 있다. 자작나무 숲길로 유명세를 얻은 강원 인제 원대리보다도 3배나 큰 규모다. 

청정 자연을 만끽하기 위해선 수고로움도 참아야 한다. 가는 길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경사가 가파르거나, 길이 험하지는 않지만 정비되지 않은 길을 한참 걸어야 한다. 마을에서도 한참 들어가야 한다. 임도를 따라 걷다가 '자작나무 숲길'이라는 이정표를 만나도 숲길 입구까지 3.2㎞는 걸어야 한다. 성인 걸음으로도 1시간은 족히 걸리는 거리다.

천천히 걸으며 우거진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한모금 천천히 들이마신다. 보약이 따로 없다. 시원하게 흘러내리는 물소리는 또 어찌나 맑고 고운지. 차로 지나쳤으면 경험하지 못했을 귀한 선물이다.

이내 휴대전화 신호가 끊긴다. 이제부터 진정한 오지다. 삶을 짓누르던 무게를 벗어던진 채 한참 걷다 보면 눈에 들어오는 자작나무 숲. 빼곡히 들어찬 순백의 세상에 취해 한참을 거닌다.

자작나무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명상하는 것, 해설사가 건네준 자작나무 껍질에 소원을 적어보는 것, 거울을 나무에 대고 다른 시각으로 숲을 바라보는 것······. 숲 안에서 이뤄지는 다양한 체험 덕에 이곳 풍경에 더욱 매료된다.
 

밤에 촬영한 영양 반딧불이 천문대[사진=영양군 제공]

◆영양의 밤, 칠흑 속에 낭만을 수놓다

영양 여행은 어둠이 깔리면 그 진가를 발휘한다.

영양의 밤이 아름다운 이유는 '인공적'인 치장이 덜한 덕이다. 인적이 드문 영양의 밤은 그야말로 '칠흑'과 같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어둠을 별과 반딧불이가 환하게 비춘다, 영롱하게 빛나는 별과 보석처럼.

생경하지만, 영양 수비면 일대는 '국제 밤하늘 보호공원'으로 지정됐다. 국제 밤하늘협회는 수하계곡 왕피천 생태경관 보전지구 일부를 포함해 반딧불이생태공원 일대 390만㎡에 달하는 곳을 보호공원으로 지정했다. 아시아 최초다. 

영양의 밤, 영양 반딧불이 천문대로 간다. 천문대는 반딧불이 생태 체험마을 특구 내 장수포천 변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서 별 생태체험관 관람과 천체 관측을 할 수 있다. 

낮에는 보조 관측실의 태양 망원경을 이용해 흑점과 홍염을, 밤에는 행성과 성운, 성단, 은하, 달을 각각 관측한다.

밤하늘의 별에 얼마나 많은 특징이 있는지, 별자리가 계절에 따라 얼마나 다양하게 변신하는지······. 전문 해설사의 신비롭고 흥미진진한 별 이야기도 펼쳐진다.

야간 관측 시간에는 어둠이 사방을 에워싼다. 이때 반짝이는 별을 눈에 오롯이 담을 수 있다. 별자리 관측은 온 가족이 흥미롭게 즐기는 소중한 체험이다. 좀 더 초롱초롱한 별을 보는 게 목적이라면 천문대 누리집에서 별빛 예보 확인과 천문대 예약은 필수다. 특히 날씨나 코로나19 상황에 따라 운영 상황은 변할 수 있으니 꼭 누리집을 통해 확인하고 방문하는 것이 좋다. 

위에는 별빛이 영양의 밤을 환하게 밝힌다면, 밑에는 청정 지역의 환경 지표 곤충인 반딧불이가 그 역할을 한다. 특히 8월에는 천문대 인근 장수포천과 반딧불이생태공원에서 늦반딧불이를 만날 수 있다. 

영양에서 많은 것을 얻었다. 은은하게 울려 퍼지던 풀벌레 소리와 싱그러운 풀 내음, 쏟아질 듯 무수히 떠있던 별들, 그리고 보석처럼 반짝이던 반딧불이의 빛······. 글을 쓰는 지금도 그날의 추억이 폐부를 적신다. 
 

자작나무 숲으로 향하는 길. 정비되지 않았지만, 길은 대체로 평탄하다. 3.2km가량 천천히 걸으면 거대한 자작나무 숲이 등장한다. [사진=기수정 기자]

 

영양 반딧불이 천문대 [사진=기수정 기자]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나온 반딧불이 무리.[사진=영양군 제공]

거울을 통해 바라보는 자작나무의 모습은 사뭇 색다른 느낌이다. [사진=기수정 기자]

영양 수비면 죽파리 자작나무 숲 전경 [사진=기수정 기자 ]

영양 수비면 죽파리 자작나무 숲 전경. 곧게 뻗은 자작나무가 어지러운 마음을 치유하는 듯하다. [사진=기수정 기자]

 

숲 해설사가 나눠주는 '거울'은 자작나무 숲을 조금 색다른 느낌으로 즐길 수 있는 도구다.[사진=기수정 기자]

 

영양 수비면 죽파리 자작나무 숲 전경[사진=기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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