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무풍지대 속 상장·폐지 반복…투자 피해엔 '면책조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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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봄 기자
입력 2021-06-21 0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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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검증안된 코인 입맛대로 상장·폐지 결정

  • "내부 기준 미달" 두루뭉술한 이유로 면책

 

[그래픽=아주경제 미술팀 ]

거래소들의 무더기 잡코인 정리에 투자자 피해가 커지고 있는 배경에는 현 가상화폐 시장이 정부 규제가 없는 ‘무법지대’라는 점이 작용했다. 현재 거래소들은 이렇다 할 규제가 없다는 이유로 입맛대로 코인 상장과 상장폐지를 결정하고 있다. 거래소 입장에서는 사업 계획과 기술력을 검증받지 못한 코인들을 일단 상장시켜 거래량을 끌어모아 놓고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상장폐지하면 되는 셈이다. 이들은 '내부 기준 미달'이라는 두루뭉술한 이유 뒤에 숨어 각종 면책 조항을 만들어 놨으며 상장폐지에 따른 투자 피해 발생 시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 
 
◆뒤늦은 규제안에 속속 정리되는 잡코인들
거래소들의 잇따른 코인 상장폐지 결정 배경에는 금융당국의 뒤늦은 규제 영향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최근 가상화폐 사업자의 자금세탁 방지 의무 이행을 위한 내용을 담은 ‘특정금융거래정보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지난달 ‘가상자산(가상화폐) 관리 방안’을 발표하며 거래소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겠다고 밝힌 데 따른 후속 조치다. 개정 시행령은 앞으로 가상화폐 거래소는 본인 또는 특수관계인이 직접 발행한 코인의 매매, 교환 중개를 할 수 없게 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정부는 거래소를 중심으로 가상화폐 관련 규제를 진행하겠다는 지침을 밝혔는데, 업계에서는 이 같은 정부 조치에 따라 거래소들이 자체적으로 잡코인 정리에 나섰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무법지대 속에서 그간 자체 정책만으로 코인 상장과 상장폐지를 결정해오던 거래소로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이다.

특히 오는 9월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이 본격 시행됨에 따라 거래소들은 실명 확인 입출금 계좌 등 사업자 등록 요건을 갖춰야 거래소 운영이 가능하다. 이 과정에서 은행이 거래소를 평가하는데, 거래소에 상장된 코인 중 실체가 불분명한 잡코인 수가 많으면 평가에 불이익을 받을 수 있어 ‘잡코인 걸러내기’에 나섰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특금법 개정안이 입법 예고된 이후 거래소가 상장폐지를 결정한 종목에는 거래소가 직접 발행하고 상장한 셀프 상장코인이나 지분이 얽혀 있는 코인들도 다수 포함됐다. 특금법 시행을 앞두고 코인 상장 당시에는 없었던 규제안이 뒤늦게 확정·발표되면서 그 피해는 고스란히 투자자에게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내부 정책’ 뒤에 숨은 거래소··· 투자자 불안만 증폭
현재로선 무더기로 퇴출당하는 잡코인에 투자한 투자자들을 보호할 방안이 없다. 가상화폐 거래소의 투명성을 관리할 업권법이 없다 보니, 거래소가 상장 및 상장폐지와 관련한 결정을 사실상 마음대로 해도 되는 셈이다.

거래소들 역시 “내부기준에 미달해 상장폐지를 결정했다”는 표면적인 이유만 내세울 뿐, 정확한 상장폐지 사유를 밝히지 않아 투자자 불안을 키우고 있다. 거래소들은 코인 상장 및 상장폐지 여부를 결정하는 상장위원회 세부 구성 정보도 보이스피싱 위험을 이유로 밝히지 않는다.

상장 폐지에 따른 피해가 발생해도 거래소가 책임지는 일은 없다. 거래소의 세부적인 상장폐지 정책을 들여다보면, 이들은 광범위한 면책 조항을 두고 투자자 피해 발생 시 책임에서 벗어날 구멍을 모두 마련해 놨다. 일례로 업비트의 경우 ‘긴급한 상황 발생 시 사전 공지 없이 특정 가상화폐에 대해 거래지원을 종료할 수 있다’는 면책 조항은 물론 ‘부득이한 경우 거래지원이 종료된 가상화폐의 출금 지원 기간이 짧아질 수 있다’는 식으로 고객에게 책임을 전가했다.

거래소마다 투자유의 종목 지정 후 폐지까지의 정책도 모두 다르다. 업비트는 내부기준에 따라 투자유의 종목으로 지정한 뒤 통상 일주일의 기간을 거쳐 상장폐지 여부를 결정한다. 빗썸은 유의 종목 지정을 공지한 날로부터 30일간 유예기간을 두며, 코인원은 상장 유지를 위한 개선안을 제안한 뒤에도 2주간 개선되지 않으면 상장폐지를 결정한다.

업계 한 관계자는 "거래소들이 다른 업권 수준의 내규를 만들어 놓았다고는 하지만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투자 피해 발생 시 거래소가 책임져야 하는 상황을 피할 수 있게 광범위한 면책조항을 마련해둔 게 사실"이라며 "모든 투자는 자기 책임의 원칙을 따르지만 거래소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투자 피해가 발생한 경우에는 거래소도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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