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유산, 리 컬렉션]⑧‘족보’로 확인한 고갱의 그림…작품마다 이력 담긴 중요 사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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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민 기자
입력 2021-06-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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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제’로 공개된 이건희 컬렉션 고갱 작품

  • 원작 목록에 ‘센강변의 크레인’으로 실려

  • 작품 탄생부터 거쳐간 과정 상세 기록

  • 방대한 이건희 기증작품…이야기도 풍성

  • 흩어지기 전 ‘카탈로그 레조네’ 제작 시급

폴 고갱, ‘무제(센강 변의 크레인)‘, 1875, 114.5x157.5cm. [사진=국립현대미술관 제공] 

뉴욕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박사 과정을 밟던 시절, 사무엘 크레스 재단에서 지급하는 장학금(그랜트)을 받아서 일 년 정도 파리에서 연구를 수행한 적이 있다. 당시 폴 고갱이 제작한 도자나 조각 등에 관심이 생겨 연구를 진행하였는데 주변 교수님들은 그런 주제에 대해서 다소 특이하게 생각하셨다.

보통 고갱의 전성기 작품들은 그가 타이티에 가기 직전에 빈센트 반 고흐와 프랑스 남부 아를에서 함께 나란히 작업했던 시기에 한정되어 있거나 1903년 죽기 직전에 제작한 기념비 작업인 ‘우리는 어디서 왔고, 우리는 무엇이며,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등에 집중되어 있다. 유명 작품들은 오르세 미술관을 비롯해 보스턴 미술관·시카고 미술관·에르미타주 미술관 등 주요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당시 나는 유명 작가의 초기 작품들에 관심이 많았다.

이건희 컬렉션 중에 포함된 고갱 작품은 화가의 전성기 작품은 아니다. 이 회장이 모은 대부분의 작품은 유명작가의 유명작품들로 구성이 되어 있었는데 사실 고갱의 작품은 초기작이라 더 흥미로웠다. 이건희 컬렉션이 우리에게 일부 공개되면서 서구 근대미술 컬렉션도 공개됐다. 정확한 짧은 설명문(캡션)이나 자료들은 아직 공개되지 않은 상태에서, 고갱의 작품은 ‘무제(센강 풍경)’로 보도되었다.

이 작품은 고갱이 프랑스의 주식거래소에서 일하는 동안에 제작한 작품이다. 1873년 말에 경제위기가 다가오면서 프랑스의 상업갤러리였던 뒤랑-뤼엘 갤러리는 일시적으로 문을 닫았다. 1874년에는 모네·르누아르·피사로·시슬리·드가·세잔 등이 살롱전에 작품을 출품하지만 이들은 모두 거절당했다.

‘살롱’은 프랑스의 국가 주도로 열렸던 미술전람회였기 때문에 젊은 미술가들은 모두 이 ‘살롱’전에 출품해 비평가들에게서 인정을 받고 싶어 했다.

경제 위기 이후 1876년 말, 고갱도 실직 상태가 되면서 이후에는 카미유 피사로 등에게서 그림 공부를 하게 되었고 고갱은 점차 인상주의 작품들을 접하게 되었다. 사실, 초기에 고갱은 화가보다는 ‘컬렉터’에 가까웠다. 자신의 주변에 그림을 팔지 못했던 인상주의 화가들의 그림이나 조각 등을 다수 구매해 주었다.

이건희 컬렉션에 있는 고갱의 작품은 이번에 ‘무제’(1875)로 공개된 작품이다. 그동안 해외에서는 개인소장 작품으로 전해졌었다.

이 작품의 원제목은 ‘센강 변의 크레인’(Crane on the Banks of the Seine), 혹은 ‘이에나 다리와 그르넬 다리 사이에 있는 파리의 센강’(The Seine in Paris between the Pont d'Iéna and Pont de Grenelle)으로 알려진 작품이다.

이건희 컬렉션에서 고갱의 이 작품이 공개되자마자 내가 가장 먼저 찾아본 것은 내가 소장하고 있는 고갱 카탈로그 레조네였다.

카탈로그 레조네란, 작가의 생애 전체 작품을 목록화하고 여기에 이 작품의 중요한 짧은 설명과, 서명의 유무, 예술사적인 의미와 영향이 기록되어 있다. 나아가 이 작품이 전시된 기록이나 소장처의 기록 등 이 작품에 대한 모든 정보가 기록되어 있는 중요한 예술 출판물이다.

한 작품씩 기록하다 보니, 양만 해도 방대하다. 일종의 작품의 족보 같은 사료이다. 이러한 카탈로그 레조네는 미술사가들은 물론이고, 경매 회사, 수집가(컬렉터)들은 기본적으로 소장할 수밖에 없는 중요한 사료들이다.

윌덴스타인은 1964년 고갱의 카탈로그 레조네를 출판하였다. 이후 2002년 이 레조네에서 제외되거나 위작으로 밝혀진 작품들은 수정되면서 윌덴스타인 인스티튜트의 다니엘 윌덴스타인이 고갱의 회화를 다룬 카탈로그 레조네를 출판했다.

하지만, 전체를 다루지 못하고 1873년부터 1888년까지를 다루고 있다. 이후, 고갱 회화에 대한 카탈로그 레조네가 다시 출판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지금까지 마무리되지 못했다. 이건희 컬렉션의 고갱 작품은 1964년 윌덴스타인 카탈라그 레조네에서는 14번으로 기록이 남아 있고, 2002년 다니엘 윌덴스타인의 카탈로그 레조네에서는 20번으로 ‘원작’임을 알 수 있다.

이 시기에 고갱은 에밀이 태어나면서 조금 더 넓은 집을 찾아서 센강 변 옆으로 이사를 했다. 크레인을 통해서 당시 프랑스 파리가 근대화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크레인 밑으로는 공장에서 나오는 까만 연기가 푸른 하늘과 대조를 이룬다.

이건희 컬렉션의 고갱 작품은 좌측 하단에 ‘p Gauguin 75’ 사인이 있으며, 1874년과 1875년에 이와 유사한 풍경화를 여러 점 제작했다. 강변의 풀과 흙에 표현된 붓 터치를 보면 그가 인상주의 화풍에 조금 영향을 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떤 컬렉터들을 거쳐 이 작품이 이건희 컬렉션으로 들어오게 되었을까. 고갱과 부인 메테는 파리에서 생활하다 경제적 어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1884년 덴마크의 코펜하겐으로 돌아가게 된다. 고갱이 일종의 처가살이를 하게 되는 셈이었다.

당시 고갱은 새로운 예술을 이해하지 못하는 코펜하겐의 분위기에 위축되었다. 파리에서 코펜하겐으로 이사를 할 때, 메테는 고갱이 주식거래소에서 일할 때 구매했던 인상주의 작품들뿐 아니라 고갱의 초기 작품도 모두 같이 가져갔다. 이 작품 중 이건희의 고갱 작품도 포함되어 있었다.

메테 사후 이 작품은 코펜하겐의 니 칼스버그 글립토텍에서 개최된 전시에 포함되었다. 메테는 이 작품을 자신의 친척인 윌리엄 룬드에게 판매를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코펜하겐에서 뉴욕으로 이 작품이 갔다가 1980년 미국의 개인 소장가가 가지고 있는 기록으로 끝난다. 이건희 컬렉션의 고갱 작품이 언제 구매가 되었는지 그 기록을 알수 있다면 고갱의 카탈로그 레조네도 이후 수정되어야 할 것 같다.

이건희 컬렉션의 기증 작품 수가 방대하다. 작품이나 자료가 흩어지기 전에 이건희 컬렉션의 카탈로그 레조네 작성도 절실해 보인다. 이들 작품 수만큼이나 작품 개개의 이야기는 더욱 풍성하다.

◆필자 주요 이력

정연심 홍익대학교 예술학과 교수
백남준 회고전 연구원(2000)
광주비엔날레 공동 전시 기획자(2018)
<한국의 설치미술>, <1953년 이후의 한국미술: 균열, 혁신, 교류> 저자
 

[사진=정연심 홍익대 예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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