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아주미디어그룹 데일리동방 직원 공개채용 2021.01.04(월) ~ 01.15(금), 18시까지 배너 닫기

[임병식 칼럼] 발렌베리 가문과 이건희 컬렉션

임병식 객원논설위원· 서울시립대학 초빙교수입력 : 2021-05-04 10:40

[임병식 위원]


제주공항에 내리자마자 찾아간 곳은 성산포 인근 ‘빛의 벙커’다. 인상파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색다른 공간이다. 벙커는 통신시설로 사용된 오래된 건물을 문화공간으로 복원했다. 실내에 들어서면 인상파 그림이 음악을 배경으로 강물처럼 흘러 다닌다. 공연장 바닥에 앉아 1시간여 감상하노라면 저절로 힐링된다. 두 번째 방문임에도 만족감은 최고다. '모네, 르누아르··· 샤갈/ 지중해의 화가들'을 주제로 한 이번 전시도 기대를 뛰어넘었다.

코로나19 이전, 해외에 나가면 예외 없이 미술관에 들렀다. 미술에 조예가 깊다기보다 그냥 좋았다. 미술관에서만 접하는 공간적 아늑함에다 정서적 위안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위대한 작품을 마주하면 흥분 상태에 빠지거나 호흡곤란, 현기증 등 이상 증세를 느끼는 ‘스탕달 신드롬’까지는 아니더라도 미술관을 다녀오면 항상 치유되는 느낌을 받는다.

이건희 컬렉션이 화제다. 삼성 일가가 기증한 미술품은 무려 2만3000점에 달한다. 국보 14점, 보물 46점, 감정가 3조원대로 추산된다. 이건희 컬렉션은 작품 수와 수준에서 압도적이다. 제주 ‘빛의 벙커’에서 만난 모네, 르누아르, 샤갈은 물론 피카소, 고갱, 달리, 그리고 이중섭, 박수근, 김환기까지 동서양 작품을 망라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기증 의도를 폄하하는 시각도 있지만 기증 사실만큼은 평가해도 좋을 듯하다.

개인 수장고에 있던 예술작품을 대중도 접할 수 있다는 건 긍정적이다. 이탈리아 피렌체를 다녀온 이들은 흔히 메디치 가문과 메세나를 입에 올린다. 이건희 컬렉션은 어떤 의도에서 결정됐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메세나 차원에서만 생각한다면 이건희 컬렉션은 고맙다. 그 사실마저 깎아내릴 일은 아니다. 상속세는 상속세대로 징수하고, 이재용 부회장 사면도 법대로 처리하면 된다. 어려운 결정에 박수를 보내는 건 합당하다.

2005년 즈음 스웨덴에서 발렌베리 재단을 취재하다 이건희 회장 이야기를 접했다. 2003년 이건희 회장이 이재용 부회장을 비롯한 주요 인사들과 발렌베리 재단을 다녀갔다는 것이다. 당시 귀국한 뒤, ‘발렌베리 재단과 삼성’이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쓰기도 했다. 칼럼은 “발렌베리 재단에서 삼성은 무엇을 배웠나. 바뀌지 않는 삼성을 볼 때 발렌베리 재단 방문은 보여주기에 지나지 않았다”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사상 최고 상속세 납부와 미술품 기증을 보면서 ‘그동안 다 계획이 있었구나’ 생각한다. 스웨덴에서 발렌베리 그룹의 시장 지배력은 한국에서의 삼성보다 훨씬 크다. 발렌베리는 ‘아스트라제네카’ 코로나19 백신으로 익숙하다. 에릭슨, ABB, SEB를 비롯한 27개 기업은 스웨덴 GDP 30% 이상을 점유한다. 또 시가 총액은 스웨덴 주식시장의 절반을 차지한다. 그런데도 스웨덴 국민들은 발렌베리 가문을 존경하고 지지한다. 스톡홀름 시청사 앞 발렌베리 동상은 이런 정서를 반영한다.

폭넓은 국민적 지지는 어디에서 비롯됐을까. 또 삼성과 발렌베리는 어떤 정서를 공유하고 있을까. 발렌베리는 1856년 창립해 올해로 165년, 5대째 오너 경영을 이어오고 있다. 쉽게 말하면 스웨덴판 재벌이다. 경영이념은 사회적 책임과 환원을 바탕에 두고 있다. 지배구조는 분산돼, 기업을 직접 지배하지 않는다. 수익이 발생하면 재단으로 모여 사회에 환원하는 구조다. 이건희 회장은 발렌베리 모델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발렌베리 가문 경영진도 2012년 한국을 방문, 삼성과 리움미술관을 돌아봤다. 이 회장은 생전에 가족과 임원들에게 기부를 독려했다. 고인이 세상을 떠난 뒤 유족들은 상속세 12조원 납세와 미술작품 2만3000점 기증을 결정했다. 상속세 납부를 위해선 대출도 받는다고 밝혔다. 발렌베리 가문에서 공유한 사회적 책임을 이제야 실행에 옮기는 건 아닌가 싶다.

삼성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하다. 삼성은 세계 1류 기업으로 성장했다. 많은 국민들은 해외에 나갈 때마다 마주치는 삼성제품에서 긍지를 느낀다고 한다. 물론 삼성은 아직 오너 일가 중심 지배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삼성 일가에 대한 사회적 시선도 곱지 않다. 무노조 경영,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산재 근로자에 대한 미흡한 처리에 기인한다.

삼성, 현대, SK, LG는 한국경제에 소중한 기둥이다. 해외에서는 1류 기업으로 인정받는데, 정작 국내에서는 부도덕한 기업으로 인식되는 현실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이건희 컬렉션을 계기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문화가 확산되길 기대해 본다. 더불어 한국사회에서 삼성 디스카운트가 개선되고 국격도 올라간다면, 이는 이건희 컬렉션이 가져온 또 다른 효과다. 부자와 기업인이 존경받는 사회는 희망이 있다.


 
임병식 객원논설위원· 서울시립대학 초빙교수  montlim@hanmail.net
제11회 헬스포럼-2021-05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네티즌 의견 0
0 / 300

실시간 급상승

9.9초 더보기
제11회 헬스포럼-2021-05

아주 글로벌